팔 수 없는 물건을 훔치는 이유: '절규'가 두 번 돌아오는 데 든 값
2006년 8월 31일 오후, 오슬로 경찰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수사를 이끈 이베르 스텐스루드(Iver Stensrud)의 발표는 짧았다. "오늘 오후 성공적인 경찰 작전으로 그림들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기자들이 물은 것은 하나였다. 어떻게 찾았습니까. 경찰은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하지 않았다.
8월 31일 오늘의 역사에서 2004년에 사라진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가 2년 만에 돌아왔고, 경찰이 회수 경위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짧게 다뤘다. 이 글은 그 침묵의 자리를 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훔친 순간부터 팔 수 없는 물건이 된다. 그런데도 훔친다. 그리고 대개 돌아온다. 이 세 문장 사이에 있는 것이 도난 미술품의 경제학이고, 경찰이 입을 다무는 이유도 거기 있다.
훔친 순간 값이 사라지는 물건
2012년 5월 2일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절규'가 팔렸다. 낙찰가는 수수료를 포함해 1억 1,992만 2,500달러, 당시 미술품 경매 최고가였다. 산 사람은 금융인 리언 블랙(Leon Black)이다.
이 그림은 1895년 파스텔 판이다. '절규'는 한 점이 아니다. 뭉크는 같은 구도를 네 점 남겼고 석판화도 찍었다. 그중 개인 소장이던 이 한 점만 시장에 나왔고, 그 한 번의 거래가 나머지 세 점의 값을 세상에 알려 줬다.
문제는 도난품이 이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술 시장에는 도난품 대조 장치가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아트 로스 레지스터(Art Loss Register)는 세계 최대의 민간 도난 미술품 데이터베이스로, 약 70만 건을 등록해 두고 국제 미술·보석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을 해마다 50만 점 넘게 대조한다. 유명한 작품일수록 등록도 확실하고 도판도 널려 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사라진 명작은 유명세가 그대로 족쇄가 된다. 경매에 내놓을 수 없고, 딜러가 받아 주지 않고, 벽에 걸어 자랑할 수도 없다. 2004년 사건 당시 미술상 프랑크 지로(Franck Giraud)는 1억 달러가 넘는 값이 매겨진 그림이라도 되파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2년 5월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2만 달러에 낙찰된 1895년 파스텔 판. 네 점 가운데 유일하게 개인 소장이던 판본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러면 훔친 쪽은 무엇을 얻는가. 미술 범죄를 연구한 사람들이 정리한 경로는 대략 넷이다.
| 경로 | 실제로 손에 쥐는 값 | 성립 조건 | 약점 |
|---|---|---|---|
| 지하 시장에 되팔기 | 합법 경매가의 약 10%(범죄자와 딜러 사이 첫 거래) | 장물을 받아 줄 중개인 | 거래할 때마다 신원이 노출된다 |
| 소유자·보험사에 몸값 요구 | 협상하기 나름 | 소유자가 지불할 의사 | 돈을 받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
| 조직 내부의 담보·화폐 | 현금이 아니라 '값이 있다고 합의된 물건' | 조직 안의 신용 | 팔 수 없으므로 계속 떠안는다 |
| 형량·처우 협상 카드 | 현금이 아닌 감형·편의 | 이미 붙잡힌 뒤 | 수사기관의 재량에 달려 있다 |
첫 거래에서 10%밖에 못 받는 이유는 사는 쪽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조슈아 크넬먼(Joshua Knelman)의 정리에 따르면 그림이 두세 번 손을 바꾸고 나면 값이 올라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훔친 물건인 줄 몰랐다"는 주장이 통하기 시작하고, 그만큼 위험이 싸지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자 안야 숏랜드(Anja Shortland)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도난 미술품의 값이 가장 커지는 순간은 팔릴 때가 아니라, 그것을 내놓아 형을 깎을 수 있을 때다. 조직범죄 집단이 값나가는 물건을 몇 점 남겨 두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회수율은 낮다. FBI는 도난 미술품 가운데 되찾는 것이 10%가 되지 않는다고 밝혀 왔고, 더 낮게 2~6%로 잡는 추정도 있다. 자료마다 갈리지만 방향은 같다. 한 번 사라지면 대개 돌아오지 않는다.
그 낮은 확률 안에 '절규'는 두 번 들어갔다.
1994년: 몸값 100만 달러가 거절당한 뒤
1994년 2월 12일 이른 아침, 두 사람이 사다리를 놓고 오슬로 국립미술관 2층 창을 깨고 들어가 1893년 판 '절규'를 떼어 갔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시간은 1분이 되지 않았다. 자리에는 쪽지가 남았다. "허술한 경비에 감사드립니다."
daily에서 다룬 대목은 여기까지다. 그다음이 이 글의 이야기다.
3월, 도난범 쪽에서 미화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 미술관은 거절했다. 앞 표의 두 번째 경로가 이 시점에 닫혔다. 남은 것은 첫 번째 경로, 즉 파는 일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알려진 그림 하나를 사겠다고 나설 사람이 없다.
노르웨이 경찰은 그 빈자리에 사람을 만들어 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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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절규' 1893년 판이 사라진 오슬로 국립미술관. 사진: Bjørn Erik Pedersen,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
오슬로 경찰청장 레이프 리에르(Leif Lier)가 영국 런던경찰청의 잠입수사 조직 SO10에 협조를 요청했다. 투입된 인물이 미술·골동품 전담반의 찰스 힐(Charles Hill)이다.
힐이 만든 신분은 '게티에서 온 남자'였다. 미국 J. 폴 게티 미술관이 노르웨이 회화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 유럽 담당이라는 설정이었다. 이름은 크리스 로버츠(Chris Roberts). 게티 미술관과 FBI가 이 설정에 협조해 뒷받침을 만들어 줬다.
접촉은 오슬로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힐은 도난범과 연결된 미술상, 그리고 절도에 가담한 인물을 만나 대금을 합의했다. 액수는 자료마다 갈린다. 미화 53만 달러로 적은 보도가 있고 영화 50만 파운드로 적은 기록이 있다. 어느 쪽이든 정상 시장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앞 표에서 본 '10% 규칙'이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1994년 5월 7일, 그림은 오슬로피오르 연안 오스고르스트란(Åsgårdstrand)의 별장 지하실에서 나왔다. 도난 84일 만이었다.
힐은 그 자리에서 진품 여부를 확인했다. 근거는 감정서가 아니라 흠집이었다. 뭉크가 작업하다 촛농을 떨어뜨려 판지에 하얀 얼룩이 남아 있었고, 힐은 그 자국을 알고 있었다.
회수는 성공했고, 판결은 뒤집혔다
1996년 1월, 네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주범 팔 엥에르(Pål Enger)에게 내려진 형은 징역 6년 3개월이었다.
그런데 1997년 항소심에서 판결이 흔들렸다. 쟁점은 그림도 증거도 아닌 수사 방법 자체였다.
영국 수사관들은 위장 신분으로 노르웨이에 입국했다. 노르웨이 법이 허용하지 않는 일이었다. 법원은 그 절차 위반을 이유로 힐과 동료의 증언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유죄 판결을 받은 네 명 가운데 세 명이 풀려났다. 엥에르의 유죄만 유지됐다.
그림을 되찾은 방법이, 그 그림을 훔친 사람들을 풀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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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사라졌다가 84일 만에 돌아온 1893년 판 '절규'.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위키미디어 커먼즈)
엥에르에게 이 그림이 처음은 아니었다. 1988년 2월 23일, 그는 뭉크 미술관 창으로 들어가 '사랑과 고통(Love and Pain)'을 떼어 갔다. 그 그림은 같은 해 안에 돌아왔는데, 회수 경위가 특이하다. 훔친 쪽이 경찰에 연락한 것이다. 그는 이 건으로 3년을 복역했다.
세 번의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방금 본 표의 약점 항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팔 수 없는 물건은 시간이 갈수록 위험만 커지는 짐이 된다. 1988년에는 훔친 쪽이 그 사실을 먼저 인정했고, 1994년에는 팔려고 내놓다가 위장 수사관을 만났다.
엥에르는 뒤에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축구 선수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범죄자였다고. 2012년 인터뷰에서는 '절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자기 덕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2024년 6월 29일 오슬로에서 쉰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조용한 절도가 백주의 강도가 된 자리
1994년 이후 유럽 미술관들이 돈을 쓴 곳은 야간 침입 방어였다. 창문, 잠금장치, 경보, 순찰. 그러자 남은 시간대는 하나뿐이었다.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이다.
2004년 8월 22일 일요일 오전, 관람객이 있는 뭉크 미술관에서 '절규' 1910년 템페라 판과 '마돈나'가 벽에서 뜯겨 나갔다. 걸린 시간은 몇 분이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뒤에 이렇게 정리했다. "정교한 범죄가 아니었다."
정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긴 문을 여는 기술 대신 사람들이 물러서는 몇 분을 이용한 것이고, 이것이 1994년과 2004년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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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퇴옌에 있던 뭉크 미술관. 2004년 도난 뒤 약 4,000만 크로네를 들여 보안을 다시 짰다. 사진: Frode Inge Helland, CC BY 2.5, 위키미디어 커먼즈
두 번째 차이는 돈의 구조다. 뭉크 미술관의 두 그림은 보험에 들어 있지 않았다. 오슬로시 소유의 소장품이었고, 값을 매기기 어려운 작품에 전면 보험을 드는 공공 미술관은 흔치 않다.
그래서 2006년 5월 재판이 낸 숫자가 눈에 띈다. 유죄를 받은 세 명 가운데 두 명에게 오슬로시에 7억 5,000만 크로네를 배상하라는 명령이 함께 떨어졌다. 이 금액은 두 그림의 추정가로 산정된 것이다. 보험이 없었던 자리를 민사 배상 명령이 대신 메운 셈인데, 개인이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장부 위에서만 성립하는 값이다.
세 번째 차이는 동기다. 재판에서 검찰은 이 도난이 그림을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 수사의 눈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다른 사건은 넉 달 전인 2004년 4월 5일 스타방에르에서 벌어진 대형 현금 강도다. 피해액은 약 5,600만 크로네였고 경찰관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다비드 토스카(David Toska)는 2005년 4월 스페인 말라가에서 붙잡혀 이듬해 3월 징역 19년을 선고받았다.
⚠️ 다만 '절규' 도난이 이 강도 사건의 연막이었다는 것은 검찰의 주장이고, 법원이 확정한 사실이 아니다. 이 글도 그 층위로만 적는다.
주장이 맞든 아니든, 여기서 도난 미술품의 또 다른 쓰임이 드러난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값을 한다는 것이다. 수사 자원을 끌어가는 것만으로도 값이 되고, 조직 안에서 무언가를 대신하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회수의 값 — 200만 크로네와 M&M 200만 개
2004년 도난 직후 오슬로시는 현상금을 걸었다. 200만 크로네, 당시 환율로 약 29만 4,000달러다.
이 돈은 지급되지 않았다. 2006년 회수 뒤 당국은 보상금이 나간 일이 없다고 밝혔다. 그림은 노르웨이 국내에 있었고, 경찰은 자체 작전으로 확보했다고만 했다.
그사이 훨씬 기이한 제안이 하나 있었다. 2006년 8월 하순, 초콜릿 회사 마스(Mars)가 다크 초콜릿 M&M 출시 광고에 '절규'를 패러디한 그림을 쓰면서 작품을 찾아 주면 M&M 200만 개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봉지로 4만 개, 소매가로 약 2만 2,000달러어치다. 광고가 나가고 며칠 뒤 경찰이 그림을 회수했다.
마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다만 초콜릿을 받아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고, 후속 보도에 따르면 그 값에 해당하는 금액이 뭉크 미술관으로 갔다. 액수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마스 보도자료의 소매가 기준으로는 약 2만 2,000달러, 다른 보도에서는 약 14만 크로네(약 2만 6,000달러)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두 점을 되찾은 대가로 공식 지급된 것이, 초콜릿 값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오간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기록이 끊긴다.
- 경찰은 회수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스텐스루드는 "성공적인 경찰 작전"이라고만 했다
- 노르웨이 법무장관은 그림을 돌려받는 대가로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 노르웨이 언론은 수감 중이던 인물이 그림의 소재에 관한 정보를 넘겼고 그 대가로 수감 처우나 형량에서 이익을 봤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 경찰은 이 보도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공식 기록에 남은 것은 지급되지 않은 현상금 하나와, 초콜릿 값 하나뿐이다.
| 1994년 국립미술관 | 2004년 뭉크 미술관 | |
|---|---|---|
| 대상 | '절규' 1893년 판 | '절규' 1910년 템페라 판, '마돈나' |
| 시각 | 2월 12일 이른 아침(폐관 중) | 8월 22일 오전(개관 중) |
| 방법 | 사다리로 2층 창 — 1분 미만 | 관람객이 있는 전시실에서 그대로 |
| 몸값 요구 | 있음 — 100만 달러, 미술관이 거절 | 공개된 요구 없음 |
| 회수까지 | 84일 | 2년 9일 |
| 회수 방법 | 위장 수사(공개됨) | 비공개 |
| 실제 지급된 돈 | 없음(합의 대금은 위장) | 없음(현상금 미지급, 초콜릿 값만) |
| 형사 결과 | 4명 유죄 → 항소심에서 3명 석방 | 3명 유죄(4~8년), 2명에 7억 5,000만 크로네 배상 |
돌아온 그림과 돌아오지 않은 그림
되찾은 뒤 뭉크 미술관이 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daily에서 다룬 대로 손상된 상태 그대로 닷새 동안 공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전에 이미 끝내 둔 공사다.
미술관은 도난 열 달 만인 2005년 6월 17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약 4,000만 크로네(미화 약 620만 달러)를 들여 공항식 금속탐지기와 수하물 검색기를 놓고 주요 작품에 방탄유리를 씌웠다. 노르웨이 언론이 붙인 별명은 '뭉크 요새'였다. 그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점에 벽부터 고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림에 이런 결말이 오는 것은 아니다.
1990년 3월 18일 새벽,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열세 점이 사라졌다. 페르메이르의 '합주', 렘브란트 두 점, 드가 소묘 다섯 점, 마네, 중국 청동기가 포함돼 있었다. FBI는 1990년에 피해액을 2억 달러로 잡았다가 2000년에 5억 달러로 올렸다. 미술관 도난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 일이 벌어졌다.
- 공소시효 5년이 1995년에 만료됐다. 훔친 사람을 절도로 기소할 수 없다
- 현상금은 100만 달러에서 1997년 500만 달러, 2017년 1,000만 달러로 올랐다. 사설 기관이 내건 미술품 현상금으로는 최대다
- 창립자 유언에 따라 소장품 배치를 바꿀 수 없어, 빈 액자가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세 점 가운데 한 점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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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도난 이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그대로 걸려 있는 빈 액자. 미국 연방수사국 촬영. (위키미디어 커먼즈)
노르웨이의 세 건과 보스턴의 한 건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인다.
| 사건 | 도난 | 회수 | 걸린 시간 | 회수를 만든 것 |
|---|---|---|---|---|
| 뭉크 '사랑과 고통'(뭉크 미술관) | 1988-02-23 | 같은 해 | 몇 달 | 훔친 쪽이 경찰에 연락 |
| '절규' 1893년 판(국립미술관) | 1994-02-12 | 1994-05-07 | 84일 | 위장 수사관이 만든 가짜 구매자 |
| '절규' 1910년 판·'마돈나'(뭉크 미술관) | 2004-08-22 | 2006-08-31 | 2년 9일 | 비공개 — 정보 제공 정황 |
| 가드너 미술관 13점 | 1990-03-18 | 없음 | 36년째 | — |
앞의 세 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시점에 그림이 훔친 쪽에게 짐이 됐고, 그 짐을 내려놓는 편이 이익인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1988년에는 스스로 전화를 걸었고, 1994년에는 팔 자리를 찾다가 수사기관이 만든 자리에 들어갔고, 2004년 건은 다른 사건의 수사가 그림 위를 지나가면서 정보가 흘러나왔다.
가드너 미술관에는 그 순간이 오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의 압박이 사라졌고, 돌려주고 받을 것은 현상금뿐인데 그 돈을 익명으로 받아 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 되돌려 줄 유인이 양쪽 모두에서 사라진 것이다.
여기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팔 수 없는 그림을 왜 훔치는가.
답은 도난 미술품의 값이 시장에서 정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값을 정하는 것은 사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되찾고 싶어 하는 쪽의 절박함이다. 몸값이든 감형이든 수사 자원이든, 그 그림 없이는 곤란해지는 누군가가 있는 한 값은 성립한다. 그래서 미술관 도난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협상은 경매장이 아니라 수사기관과 교도소 사이에서 벌어진다.
경찰이 회수 경위를 밝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어떻게 돌려받았는지를 공개하는 것은 다음 사람에게 값을 알려 주는 일이다.
엥에르는 '절규'가 유명해진 것이 자기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림의 명성이 도난 때문에 커졌다는 주장은 그가 처음 한 것도 아니고 검증하기도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그 명성 때문에 그는 그림을 팔 수 없었다. 두 번의 도난에서 아무도 그림값을 받지 못했고, 그림은 두 번 다 벽으로 돌아왔다.
자료 출처
- '절규'의 두 차례 도난과 회수: Wikipedia — The Scream · The Washington Post — Stolen 'Scream' Painting Recovered After 2-Year Search · CBC — Munch paintings recovered 2 years after bold theft · Al Jazeera — Three found guilty over Scream theft
- 1994년 위장 수사: SpyScape — The Scream Heist & Scotland Yard's Artful Recovery · Wikipedia — Charley Hill (detective) · FutureLearn — Stealing The Scream: 1994 theft
- 팔 엥에르: Wikipedia — Pål Enger · AP / Sun Journal — Pal Enger, Norwegian art thief behind famed 1994 heist of Munch's 'The Scream,' dies at 57 · Wikipedia — Love and Pain (Munch)
- 도난 미술품 시장: Slate — How will thieves sell their stolen Picassos and Monets? · The Conversation — Selling stolen art is tricky, so why even bother heisting it? · Art Loss Register · FBI — Art Crime
- 거래 의혹과 부인, M&M 보상: CBC — Norway denies deal in return of Munch paintings · Scoop — M&M'S to Honor Two Million M&M Reward For 'The Scream' · Siobhan O'Shea — The Scream, the ad campaign, and the 2 Million M&M's
- 보안 개편과 배경: SecurityInfoWatch / AP — Munch Museum Reopens with Security Upgrade after 'Scream' Theft · Smithsonian Magazine — The Mysterious Motives Behind the Theft of 'The Scream' · Wikipedia — David Toska
- 가드너 미술관: Wikipedia —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theft
태그: 오늘의특집, 뭉크절규, 미술품도난, 미술범죄, 가드너미술관, 아트로스레지스터, 팔엥에르, 뭉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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