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는 숨겨진 적이 없었다: 노예제 보상금 명부가 검색 가능해지기까지 180년

2026. 8. 28. 07:41·오늘의 특집

장부는 숨겨진 적이 없었다: 노예제 보상금 명부가 검색 가능해지기까지 180년

2013년 초, 영국 신문 지면에 표가 하나 실렸다. 왼쪽 칸에 사람 이름, 오른쪽 칸에 금액. 그 명단에는 당시 총리의 조상도, 널리 읽히는 소설가의 증조부도 있었다. 표의 출처는 새로 발굴된 비밀문서가 아니었다. 런던 큐(Kew)의 국립문서보관소에 180년 가까이 그대로 놓여 있던 대장(臺帳) 뭉치였다.

8월 28일 오늘의 역사에서 1833년 노예제 폐지법의 보상 조항을 짚었다. 2,000만 파운드가 해방된 사람들이 아니라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갔고, 그 재원으로 빌린 돈이 21세기까지 국채로 남아 있었다는 대목이다. 그 글이 다루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그 돈을 누가 얼마나 받았는지는 처음부터 이름 단위로 기록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그 명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180년 동안 사실상 아무도 읽지 못했으며, 읽히기 시작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라간다.

 

2,000만 파운드는 한 번에 나가지 않았다

법이 재가를 받았다고 돈이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의회는 노예보상위원회(Slave Compensation Commission)를 두어 누가 얼마를 받을지 심사하게 했다. 위원회가 남긴 서류는 지금 국립문서보관소의 T71 계열에 있다. 1812년부터 1851년까지의 문서로, 청구 등록부와 반대청구, 다툼이 붙은 건의 재정(裁定), 평가인 보고서, 지급 증서가 함께 묶여 있다.

런던 큐의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노예보상위원회 기록(T71)이 이곳에 있다. 사진: Christopher Hilton, CC BY-SA 2.0, 위키미디어 커먼즈

금액은 일률이 아니었다. 위원회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값을 매겼고, 그 기준은 성별·연령·노동의 종류·숙련도였다. 여기에 식민지별 생산성이 곱해졌다. 근거로 쓴 것은 1822년부터 1830년까지의 경매 평균 매매가다.

그 결과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1인당 배정액이 크게 갈렸다. 식민지 간 배분에서 확인되는 값은 이렇다.

식민지 1인당 배정액
희망봉 73파운드 9실링 11펜스
모리셔스 69파운드 14실링 3펜스
버진아일랜드 31파운드 16실링 1¾펜스

영국령 기아나는 자메이카보다 높게 평가됐다. 사탕수수 농장의 수익성 차이가 그대로 값의 차이로 옮겨 온 것이다.

절차는 단순한 지급이 아니었다. 농장은 대개 저당이 잡혀 있었고, 돈이 나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저당권자들이 반대청구를 걸었다. 다툼의 대부분은 담보의 우선순위와 미지급 매매대금을 둘러싼 것이었다. 런던의 상인 회사와 은행들은 소유주로서만이 아니라 저당권자이자 대리 수령인으로서 이 절차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 장부는 소유의 기록인 동시에 채권의 기록이다. 청구서에 이름이 올랐다고 농장을 운영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고, 농장을 운영했다고 돈을 받았다는 뜻도 아니다.

 

돈을 조달한 쪽

정부에 2,000만 파운드가 현금으로 있었을 리 없다. 조달 방식은 두 갈래였다.

1835년 8월, 시티의 금융 신디케이트가 1,500만 파운드어치 증권 세 종류를 인수했다. 이 신디케이트를 이끈 사람이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와 그의 처남 모지스 몬테피오리다. 당대에는 이것을 '서인도 차관(West India Loan)'이라 불렀다. 남은 500만 파운드는 현금이 아니라 국채로 직접 지급됐다.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1835년 서인도 차관 인수 신디케이트를 이끈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위키미디어 커먼즈)

지급 실무는 국가부채감소위원(Commissioners for the Reduction of the National Debt)이 재무부 지시를 받아 처리했다. 이들은 서인도 보상 계정에서 현금을 내주거나, 그 금액을 3.5% 국채 연금으로 바꿔 줄 수 있었다.

여기서 부작용이 하나 생긴다. 보상금의 약 4분의 1이 3.5% 연금 형태로 나갔는데, 받은 쪽이 이를 빠르게 팔아 치웠고 상당액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1830년대 중반 영국이 겪은 금융 불안에 이 매도 물량이 얹혔다.

재정의 기준이 된 명부는 1834년 8월 1일 시점의 소유주 조사였다. 그 명부를 놓고 4만 건이 넘는 재정이 내려졌다.

 

이름이 붙은 금액

명부에서 큰 항목만 뽑으면 이렇다.

수령인 주된 지역 대상 인원 보상금
찰스 맥가렐 영국령 기아나 2,489명 129,464파운드 (1835~37년 누적)
존 글래드스턴 자메이카·영국령 기아나 9개 농장 2,508명 106,769파운드
제임스 블레어 영국령 기아나 1,508명 또는 1,598명 83,530파운드
존 오스틴 — 415명 20,511파운드
찰스 블레어 — 218명 4,442파운드
제임스 더프 — 202명 4,101파운드

존 글래드스턴은 훗날 총리가 되는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의 아버지다. 찰스 블레어는 소설가 조지 오웰의 증조부이고, 제임스 더프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조상이다. 명부에서 이름이 확인된 인물의 후손 중에는 그레이엄 그린,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계보도 있다.

존 글래드스턴

존 글래드스턴. 9개 농장의 2,508명에 대해 10만 6,769파운드를 받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누가 가장 많이 받았나"에 자료마다 답이 다른 것은 세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임스 블레어는 단일 청구 건으로는 최대 금액을 받았고, 맥가렐과 글래드스턴은 여러 건을 합쳐 그보다 큰 액수를 받았다. 대상 인원도 블레어의 경우 1,508명과 1,598명으로 자료가 갈린다.

현재가치 환산은 더 조심해야 한다. 글래드스턴의 10만 6,769파운드는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2021년 약 1,030만 파운드지만, 임금 수준을 기준으로 삼으면 약 8,300만 파운드가 된다. 여덟 배 차이다. 환산 방식을 밝히지 않은 "오늘날 ○○억 원" 표현은 그래서 정보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큰 금액은 명부에서 예외다. 브리스틀에 살던 과부 도러시 리틀은 자메이카의 13명에 대해 297파운드를 받았다. 장부의 대부분은 이런 항목으로 채워져 있다.

규모를 정리하면 이렇다. UCL 연구진의 정리에 따르면 청구는 약 4만 건이고 여기 연결된 개인은 약 4만 7,000명이며, '청구인 약 4만 6,000명'이라는 집계도 함께 쓰인다. 2013년 보도에 나온 '약 3,000 가문'은 전체 수령인이 아니라 영국에 거주하던 소유주 수로, 세는 대상 자체가 다르다. 이들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 두 가지가 특히 통념과 어긋난다. 청구인의 약 40%가 여성이었고, 2,000만 파운드의 약 절반이 식민지가 아니라 영국에 남았다.

 

180년 동안 열려 있던 문서고

여기서 이 이야기의 반전이 나온다. 이 기록은 기밀이었던 적이 없다.

T71은 공문서로 보존됐고, 1837~38년에는 의회 보고서로 청구 내역이 인쇄되기까지 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열람할 수 있었다.

문제는 형식이었다. 수만 건의 손글씨 대장에서 특정 인물을 찾으려면, 그 사람이 어느 식민지의 몇 번 청구에 들어 있는지를 미리 알아야 했다. 알아야 찾을 수 있고 찾아야 알 수 있는 구조에서 명부는 사실상 닫혀 있었다.

UCL 포티코

런던대학교 UCL. 2009년 이곳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보상 기록을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옮겼다. 사진: LordHarris,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

2009년 UCL에서 캐서린 홀, 니컬러스 드레이퍼, 키스 매클렐런드가 이 대장을 통째로 데이터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1단계(2009~2012)는 경제사회연구회(ESRC)가, 2단계(2013~2015)는 ESRC와 예술인문연구회(AHRC)가 지원했다. 2단계의 과제는 1763년부터 183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소유 구조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2010년에는 이 작업을 이어갈 연구 센터가 UCL에 세워졌고, 하버드 허친스 센터가 협력 기관으로 붙었다.

2013년, 데이터베이스가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이름으로, 지역으로, 금액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됐다.

바뀐 것은 사료가 아니다. 색인이다. 그런데 그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2015년 BBC가 이 연구를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는 영국 아카데미상과 왕립역사학회 공공역사상을 받았다. 센터는 2020년 매슈 J. 스미스가 소장을 맡은 뒤 방향을 한 번 더 틀었다. 2021년부터는 소유했던 사람이 아니라 노예가 됐던 사람들 쪽으로 기록을 복원하는 작업이 중심에 놓였다.

 

검색창이 만든 사과들

명부가 검색 가능해진 뒤 벌어진 일은 대체로 같은 형태였다. 어떤 기관이 자기 창립자나 초기 자본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결과를 공개했다.

시점 주체 내용
2018-02-09 영국 재무부 트위터에 "1833년 영국은 2,000만 파운드, 국가 예산의 40%를 노예 해방에 썼고 그 빚을 2015년에야 다 갚았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튿날 삭제됐다
2020-06 잉글랜드은행 과거 총재들의 노예제 연루에 사과하고 관련 초상화·흉상의 전시를 중단했다
2020-06-18 로이즈 오브 런던 / 그린킹 창립 회원 사이먼 프레이저(도미니카, 162명 이상)와 창업자 벤저민 그린(231명 이상)이 보상금 수령자였다는 기록에 근거해 사과하고 기금을 약속했다
2023-01 잉글랜드 국교회 커미셔너 전신 기금인 '앤 여왕의 하사금'이 남해회사에 투자한 이력을 확인하고 9년간 1억 파운드 기금을 발표했다. 2024년 독립 감독기구는 이 규모를 10배로 올리라고 권고했다
2023-03-28 스콧 트러스트 (가디언 소유) 위탁 연구로 창업자 존 에드워드 테일러의 연루를 확인하고 사과, 10년간 1,000만 파운드 규모 사업과 연재 'Cotton Capital'을 시작했다
2023-08-25 글래드스턴 가문 찰스 글래드스턴 등 여섯 명이 가이아나 조지타운을 찾아 사과하고, 가이아나대학교의 이주·디아스포라 연구센터에 10만 파운드를 약속했다

2018년 재무부 게시물은 이 목록에서 성격이 다르다. 나머지가 자기 이름을 검색한 결과였다면, 이것은 같은 사실을 자랑으로 읽은 사례였다. "지금 살아 있는 영국 시민이 노예제를 끝내는 비용을 함께 냈다"는 문장이 문제가 됐다. 그 돈이 누구에게 갔는지가 이미 검색 가능해진 뒤였기 때문이다. 게시물은 하룻밤 만에 내려갔지만, 카리브 국가들의 배상 논의에서는 오히려 자주 인용되는 자료가 됐다.

사과가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2023년 조지타운 현장에는 사과로는 부족하다는 시위가 있었고, 가이아나의 이르판 알리 대통령은 사과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장부의 반대쪽

이 명부에는 4만 건이 넘는 청구가 올라 있다. 그리고 그 청구서마다 사람이 세어져 있다. 해방된 약 80만 명은 이 장부에서 수령인이 아니라 항목이다.

1833년 노예제 폐지법 소식을 전해 듣는 서인도제도의 사람들

1833년 노예제 폐지법 통과 소식이 서인도제도 농장에 전해지는 장면을 그린 당대 판화. (위키미디어 커먼즈)

법이 시행된 1834년 8월 1일, 여섯 살 미만 아동은 즉시 해방됐다. 나머지는 '견습(apprenticeship)' 신분이 되어 옛 소유주 밑에서 주당 40시간 안팎을 무보수로 더 일해야 했다. 기한은 농업 노동자가 1840년, 그 외가 1838년이었고, 서인도제도에서는 1838년 8월 1일에 앞당겨 끝났다.

카리콤 배상위원회 의장 힐러리 베클스는 이 4년치 무보수 노동의 값을 약 2,700만 파운드로 계산하고, 해방된 사람들이 자기 자유의 비용 중 절반 이상을 스스로 냈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배상 논의 한쪽의 추산이지 확정된 회계가 아니다. 다만 견습제가 별도의 이전(移轉)이었다는 점 자체는 다투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흔히 인용되는 다른 쪽 숫자, "영국 납세자가 2015년까지 갚았다"는 문장은 어떨까. 1835년에 빌린 돈은 이후 여러 차례 재편돼 1927년 4% 통합공채에 흡수됐고, 그 공채가 2015년 상환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사이가 비어 있다는 점이다. 재무부는 투자자들이 언제 상환이나 전환을 택했는지, 1927년 시점에 1833년 원차입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니 그 문장은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확정할 수 없다.

확정할 수 있는 쪽은 반대편이다. 그쪽에는 이름과 지역과 인원과 금액이 적혀 있다. 1833년에 이미 다 적어 두었고, 아무도 감춘 적이 없다. 다만 180년 동안 아무도 검색할 수 없었을 뿐이다.

역사가 드러나는 방식이 늘 발굴은 아니다. 때로는 이미 펼쳐져 있던 문서에 색인을 붙이는 일이다.

 


자료 출처
- 보상금 대출과 2015년 상환: Full Fact — The government loan to pay slave owners compensation
- 위원회·평가 기준·명부 규모: UCL Legacies of British Slavery — Project context · History Workshop — The Legacies of British Slave-Ownership
- 차관 인수 구조와 지급 실무: Wikipedia — Slave Compensation Act 1837 · Bank of England — The collection of slavery compensation, 1835–43 · Tax Justice Network — Britain's Slave Owner Compensation Loan
- 수령인 개별 금액: The Independent — Britain's colonial shame (재수록본) · Wikipedia — Charles McGarel · History of Parliament — BLAIR, James
- UCL 프로젝트와 센터: Wikipedia — Centre for the Study of the Legacies of British Slavery · Historic England — Legacies of the Slave Trade
- 기관별 사과: Bank of England — Statement on historical links to the slave trade · ITV News — Greene King and Lloyd's apologise · The Guardian — Scott Trust apologises · Al Jazeera — Family of former British PM apologises
- 견습제와 배상 논의: CARICOM Reparations — Hilary Beckles addresses Britain's Parliament · PortCities Bristol — Apprenticeship

태그: 오늘의특집, 노예제폐지법, 보상금, 영국사, 국립문서보관소, 존글래드스턴, 배상,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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