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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스토리픽(History-Pick)</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link>
    <description>날짜 하나로 세상을 읽는다.  오늘 만나보는 역사 이야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6 Sep 2026 14:04: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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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히스토리픽</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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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히스토리픽(History-Pick)</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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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지도에는 있고 조약에는 없다: 날짜변경선을 옮긴 여섯 번의 결정</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6</link>
      <description>&lt;h2 id=&quot;지도에는-있고-조약에는-없다-날짜변경선을-옮긴-여섯-번의-결정&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지도에는 있고 조약에는 없다: 날짜변경선을 옮긴 여섯 번의 결정&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22년 7월, 대서양의 카보베르데에 배 한 척이 물을 실으러 들어왔다. 3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빅토리아호였다. 배에서는 그날이 7월 9일 수요일이었는데, 육지 사람들은 7월 10일 목요일이라고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55&quot;&gt;9월 6일 오늘의 역사&lt;/a&gt;에서 이 장면을 다뤘다. 항해일지에 착오는 없었다. 서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해가 뜨는 횟수를 한 번 덜 겪게 되고, 그래서 정확하게 센 날짜가 육지의 달력과 하루 어긋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lt;b&gt;어긋남의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어디서 날짜를 바꿔야 하는지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lt;/b&gt; 그 자리를 정하는 데 인류는 그 뒤로도 오래 걸렸고, 사실은 지금도 정해 놓지 않았다. 이 글은 날짜변경선이라는 선이 조약 한 줄 없이 굳어 온 경로와, 그 선을 실제로 옮긴 여섯 번의 결정을 따라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200년-앞서-나와-있던-답&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200년 앞서 나와 있던 답&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120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28Trp/dJMcafH2PgF/PCU9kXK284ZyzcBMGJJ0k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28Trp/dJMcafH2PgF/PCU9kXK284ZyzcBMGJJ0k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28Trp/dJMcafH2PgF/PCU9kXK284ZyzcBMGJJ0k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28Trp%2FdJMcafH2PgF%2FPCU9kXK284ZyzcBMGJJ0k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1201&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120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니콜 오렘의 『구체론』과 그가 프랑스어로 옮긴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이 함께 묶인 필사본.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피가페타의 보고가 놀라움을 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현상 자체는 그 전에 이미 계산되어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이른 기록은 시리아 하마의 군주이자 지리학자였던 &lt;b&gt;아부 알피다(Abu'l-Fida, 1273~1331)&lt;/b&gt;의 지리서 『타크윔 알불단』 서론에 있다. 그는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여행자를 상정하고, &lt;b&gt;서쪽으로 간 사람은 하루를 덜 세고 동쪽으로 간 사람은 하루를 더 세게 된다&lt;/b&gt;고 적었다. 이유도 정확했다 &amp;mdash; 서쪽으로 가는 사람은 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방향과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세대 뒤 프랑스의 철학자 &lt;b&gt;니콜 오렘(Nicole Oresme, 약 1323~1382)&lt;/b&gt;은 이것을 여러 저작에서 되풀이해 다뤘다. 『구체론(Traiti&amp;eacute; de l'espere)』에서는 장(Jehan)과 피에르(Pierre)라는 두 사람을 세워 하루에 경도 30도씩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돌게 했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인물&lt;/th&gt;
&lt;th&gt;이동 방향&lt;/th&gt;
&lt;th&gt;한 바퀴를 도는 동안 센 날 수&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장(Jehan)&lt;/td&gt;
&lt;td&gt;서쪽&lt;/td&gt;
&lt;td&gt;11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제자리의 관찰자&lt;/td&gt;
&lt;td&gt;&amp;mdash;&lt;/td&gt;
&lt;td&gt;12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피에르(Pierre)&lt;/td&gt;
&lt;td&gt;동쪽&lt;/td&gt;
&lt;td&gt;13일&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숫자놀이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저작 『구체에 관한 문제들(Quaestiones supra speram)』에서 오렘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같은 방식으로 걷게 한 뒤, &lt;b&gt;&quot;날의 이름이 바뀌는 자리를 어딘가에 정해 두어야 한다&quot;&lt;/b&gt;고 썼다. 날짜변경선이라는 개념이 문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대목으로 꼽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러니까 개념은 마젤란 함대보다 150년 이상 앞서 있었다.&lt;/b&gt; 없던 것은 이론이 아니라 그 자리를 정할 이유였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본 사람이 없는 동안에는 아무도 이 문제로 곤란을 겪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22년에 곤란이 생겼다. 카보베르데의 보고는 곧 유럽으로 전해졌다. 궁정 연대기 작가 &lt;b&gt;페드로 마르티르 데 앙기에라(1457~1526)&lt;/b&gt;가 바야돌리드에서 생존자들을 면담해 기록으로 남겼고(『신세계기』, 1530년 간행), 신성로마황제 궁정에 나가 있던 베네치아 대사이자 학자 &lt;b&gt;가스파로 콘타리니(1483~1542)&lt;/b&gt;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올바른 설명을 내놓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교회에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날짜가 하루 어긋난 채 3년을 보냈다면 부활절과 축일을 엉뚱한 날에 지킨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달력의 오차가 종교 일정과 얽히는 구조는 60년 뒤 그레고리력 개정에서 되풀이된다 &amp;mdash; 그 이야기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8&quot;&gt;열흘이 사라진 해&lt;/a&gt;에 따로 적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스페인의-날짜를-그대로-들고-있던-섬&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스페인의 날짜를 그대로 들고 있던 섬&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e/El_teniente_general_Narciso_Claver%C3%ADa_y_Zald%C3%BAa%2C_conde_de_Manila_%28Museo_del_Prado%29.jpg/960px-El_teniente_general_Narciso_Claver%C3%ADa_y_Zald%C3%BAa%2C_conde_de_Manila_%28Museo_del_Prado%29.jpg&quot; alt=&quot;나르시소 클라베리아 이 살두아의 초상&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44년 필리핀의 날짜를 하루 앞당긴 총독 나르시소 클라베리아 이 살두아(1795~1851). 프라도 미술관 소장 초상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원인이 밝혀졌다고 해서 현장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오래 어긋난 채로 남아 있던 곳이 필리핀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스페인 배들은 아메리카를 거쳐 서쪽으로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에 닿았다. &lt;b&gt;그러면서 날짜에 하루를 더하지 않았다.&lt;/b&gt; 1565년부터 250년간 이어진 마닐라-아카풀코 갈레온 항로가 그 관행을 굳혔다. 마닐라와 멕시코가 같은 날짜를 쓰는 편이 회계와 행정에 편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과적으로 필리핀은 &lt;b&gt;지도상으로는 아시아에 있으면서 달력은 아메리카 쪽을 쓰는 섬&lt;/b&gt;이 됐다. 이웃한 중국&amp;middot;말레이 지역보다 하루가 늦었다. 이 상태가 마젤란 함대의 도착 이후 300년 넘게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세기 후반부터 사정이 바뀐다. 1765년 부엔콘세호가 희망봉을 돌아 마닐라에 닿으면서 아메리카를 거치지 않는 항로가 열렸고, 아카풀코를 오가던 갈레온 무역은 1815년에 끝났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은 뒤 마닐라의 교역 상대는 중국&amp;middot;말레이반도&amp;middot;네덜란드령 동인도&amp;middot;호주 쪽으로 옮겨 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날짜를 아메리카에 맞춰 둘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lt;/b&gt; 하루 늦은 달력은 이제 불편하기만 한 유산이었다. 마닐라의 상인이 광저우와 계약 날짜를 맞추려면 매번 하루를 계산해 넣어야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44년 8월 16일, 총독 &lt;b&gt;나르시소 클라베리아 이 살두아&lt;/b&gt;가 마닐라 대주교 호세 세기와 상의한 뒤 포고를 냈다. 그해 12월 30일 월요일 다음 날을 1845년 1월 1일 수요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844년 12월 31일 화요일은 필리핀에 존재하지 않았다.&lt;/b&gt; 그렇게 하루를 지우고 아시아의 날짜에 합류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닐라에서 함께 통치되던 마리아나&amp;middot;캐롤라인&amp;middot;마셜&amp;middot;팔라우도 같은 날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확인해 주는 문서는 남아 있지 않다. 19세기 지도들이 날짜변경선을 이 섬들까지 감싸 크게 서쪽으로 부풀려 그려 놓은 것이 정황 증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작 세계가 이 변경을 알아차리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lt;b&gt;선을 관리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lt;/b&gt; 각국 지도 제작자들은 한동안 필리핀을 옛 자리에 그려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금요일-다음-날이-다시-금요일이었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금요일 다음 날이 다시 금요일이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를 갈아탄 사례 가운데 계산이 가장 복잡한 쪽은 알래스카다. 여기서는 두 가지 조정이 한꺼번에 일어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러시아령 아메리카는 &lt;b&gt;날짜변경선의 아시아 쪽&lt;/b&gt;에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이어진 러시아 영토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lt;b&gt;율리우스력&lt;/b&gt;을 쓰고 있었고, 이 무렵 그레고리력과의 차이는 12일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67년 미국이 이 땅을 사들이면서 둘 다 바꿔야 했다. 달력은 그레고리력으로, 날짜는 아메리카 쪽으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포고의 내용은 이랬다. &lt;b&gt;금요일 10월 6일(율리우스력) 다음 날을 금요일 10월 18일(그레고리력)로 한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는 12일이 건너뛰었는데 요일은 그대로 금요일이다. 두 조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조정 항목&lt;/th&gt;
&lt;th&gt;방향&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율리우스력 &amp;rarr; 그레고리력&lt;/td&gt;
&lt;td&gt;날짜 +12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다음 날로 넘어감&lt;/td&gt;
&lt;td&gt;날짜 +1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날짜변경선이 베링해협 쪽으로 이동&lt;/td&gt;
&lt;td&gt;날짜 &amp;minus;1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합계&lt;/b&gt;&lt;/td&gt;
&lt;td&gt;&lt;b&gt;10월 6일 &amp;rarr; 10월 18일, 요일은 금요일 반복&lt;/b&gt;&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금요일이 이틀 연달아 온 사례로는 사실상 유일하다.&lt;/b&gt; 시트카에서 이양식이 열린 그 금요일, 곧 1867년 10월 18일은 지금도 알래스카 데이로 지켜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7월-4일을-두-번-지낸-왕국&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7월 4일을 두 번 지낸 왕국&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a/Malietoa_Laupepa%2C_1890s%2C_by_John_Davis.jpg/960px-Malietoa_Laupepa%2C_1890s%2C_by_John_Davis.jpg&quot; alt=&quot;말리에토아 라우페파&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90년대의 사모아 왕 말리에토아 라우페파. 1892년 그의 포고로 사모아는 7월 4일을 두 번 지냈다. 촬영: John Davis.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필리핀이 아시아 쪽으로 넘어간 지 48년 뒤, 남태평양에서는 반대 방향의 이동이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모아는 지리적으로 날짜변경선의 서쪽, 곧 아시아&amp;middot;오세아니아 쪽에 있었다. 그런데 이 섬의 주된 거래 상대는 캘리포니아였다. 코프라와 물자를 실어 나르던 &lt;b&gt;미국 상인들이 왕에게 '아메리카의 날짜'를 쓰자고 청했다.&lt;/b&gt; 샌프란시스코와 날짜가 같아야 계약과 선적 일정이 맞는다는 논리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92년 6월 16일 『사모안 타임스』에 &lt;b&gt;말리에토아 라우페파&lt;/b&gt; 왕의 포고가 실렸다. 그해 7월 4일 월요일을 두 번 지낸다는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하루를 지우는 대신 하루를 되풀이하는 조치였고, 그 주는 여드레가 됐다.&lt;/b&gt; 하필 되풀이된 날이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는 점은 이 결정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시 사모아에 머물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어머니 마거릿 이저벨라 스티븐슨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lt;b&gt;&quot;이번 주에는 월요일을 두 번 지키라는 명이 내렸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조치로 날짜변경선은 사모아의 서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119년을 머물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1892년 시점의 사모아는 아직 하나였다. &lt;b&gt;제도가 갈라진 것은 그 뒤다&lt;/b&gt; &amp;mdash; 1899년 12월 2일 조인되고 이듬해 2월 발효된 3국 조약으로 서경 171도를 기준으로 서쪽(사바이이&amp;middot;우폴루)은 독일령, 동쪽(투투일라&amp;middot;마누아)은 미국령으로 나뉘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양쪽 모두 1892년에 채택한 아메리카의 날짜를 그대로 이어 썼다.&lt;/b&gt; 정치적으로 갈렸어도 달력은 같았다는 뜻이다. 두 사모아 사이에 하루 차이가 생긴 것은 서쪽만 움직인 2011년부터다. 뒤에 나오는 표의 '24시간 차'는 그 결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선을-긋지-않은-회의&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선을 긋지 않은 회의&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4/International_Date_Line_MKL_Bd._4_1890_%28132198745%29.jpg/960px-International_Date_Line_MKL_Bd._4_1890_%28132198745%29.jpg&quot; alt=&quot;1890년 마이어 백과사전에 실린 날짜변경선 지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90년 독일 마이어 백과사전에 실린 지도. 표제는 「요일과 날짜의 분계선」이다. 필리핀이 이미 아시아 쪽으로 넘어간 뒤인데도 선의 경로는 자료마다 제각각이던 시기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짚어야 한다. &lt;b&gt;&quot;날짜변경선은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에서 정해졌다&quot;&lt;/b&gt;는 서술이 자료 곳곳에 보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84년 10월 워싱턴에 스물다섯 나라의 대표가 모였다. 회의의 목적은 이름 그대로 &lt;b&gt;본초자오선과 만국일(universal day)을 정하는 것&lt;/b&gt;이었고, 10월 22일 채택된 결의는 다음과 같았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모든 나라가 하나의 본초자오선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lt;/li&gt;
&lt;li&gt;그 기준은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으로 한다&lt;/li&gt;
&lt;li&gt;만국일은 본초자오선의 평균 자정에 시작하는 평균태양일로 하고, 0시부터 24시까지 센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날짜변경선의 경로는 안건에 오르지 않았다.&lt;/b&gt; 그리니치를 고르면 그 반대편인 180도 자오선이 대부분 바다를 지난다는 점이 '편리하다'고 언급됐을 뿐, 그 선이 육지나 군도를 지날 때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시간대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는 &lt;b&gt;표준시간대 설정이 자기 소관 밖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lt;/b&gt; 다루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lt;b&gt;이 결의들은 권고였다.&lt;/b&gt; 조약이 아니었으므로 구속력이 없었고, 실행은 각국 정부의 몫으로 남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오늘날의 상황은 이렇게 정리된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항목&lt;/th&gt;
&lt;th&gt;근거&lt;/th&gt;
&lt;th&gt;정하는 주체&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본초자오선(그리니치)&lt;/td&gt;
&lt;td&gt;1884년 회의 결의 &amp;rarr; 각국 채택&lt;/td&gt;
&lt;td&gt;국제 합의&lt;/td&gt;
&lt;/tr&gt;
&lt;tr&gt;
&lt;td&gt;표준시간대&lt;/td&gt;
&lt;td&gt;국내법&lt;/td&gt;
&lt;td&gt;각국&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날짜변경선의 경로&lt;/b&gt;&lt;/td&gt;
&lt;td&gt;&lt;b&gt;없음&lt;/b&gt;&lt;/td&gt;
&lt;td&gt;&lt;b&gt;각국이 자기 영해&amp;middot;영토에서 정한 결과의 총합&lt;/b&gt;&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날짜변경선은 국제법으로 정의된 선이 아니다.&lt;/b&gt; 지도에 그려지는 그 선은, 나라마다 자기 표준시를 어느 쪽으로 잡았는지를 이어 붙인 결과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국 해군천문대는 이 점을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lt;b&gt;날짜변경선은 편의로 인정되어 온 것일 뿐 국제법상 효력을 갖지 않으며&lt;/b&gt;, 그 위치를 옮긴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이해관계가 있는 정부였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관리하는 기관이 없다는 사실은 지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필리핀이 자리를 옮긴 뒤에도 수십 년간 각국 지도의 선은 제각각이었고, 지금도 옛 경로를 그린 지도가 유통된다. &lt;b&gt;틀렸다고 지적해 줄 발행 주체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나라가 시간대를 바꾸면 선도 따라 움직인다. 실제로 그런 일이 세 번 더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지금도-움직이는-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지금도 움직이는 선&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0/Kiritimati-EO.jpg/960px-Kiritimati-EO.jpg&quot; alt=&quot;우주에서 본 키리티마티(크리스마스섬)&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키리바시의 키리티마티(크리스마스섬). 1995년 이후 지구에서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다. 촬영: NASA.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93년 &amp;mdash; 마셜 제도 콰절레인.&lt;/b&gt; 이 환초에는 미군 시설이 있었고, 1969년 운용 편의를 위해 하와이와 같은 날짜(UTC&amp;minus;12)를 쓰게 됐다. 문제는 같은 나라의 다른 환초들이 UTC+12를 쓴다는 점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 날짜가 하루 어긋난 채 24년이 흘렀다. 1993년 8월 21일 토요일을 건너뛰면서 콰절레인은 나머지 마셜 제도와 날짜를 맞췄다. 주민들은 그 밤에 2마일 달리기 대회를 열었다. 금요일 자정 직전에 출발했으니, &lt;b&gt;달력에 없는 토요일을 통째로 달린 셈&lt;/b&gt;이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95년 &amp;mdash; 키리바시.&lt;/b&gt; 이 나라는 길버트&amp;middot;피닉스&amp;middot;라인 세 제도가 태평양에 500만 제곱킬로미터로 흩어져 있고, 날짜변경선이 그 한가운데를 지났다. 동서 양쪽이 함께 업무를 볼 수 있는 날이 &lt;b&gt;일주일에 나흘뿐&lt;/b&gt;이었다. 테부로로 티토 대통령은 1995년 1월 1일부터 날짜변경선이 공화국의 동쪽 경계를 따라 지나가는 것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동부 주민들에게는 1994년 12월 30일 금요일 다음 날이 1995년 1월 1일 일요일이었다. 부수 효과가 하나 따라왔다 &amp;mdash; 라인 제도가 UTC+14가 되면서 키리바시는 2000년 1월 1일을 지구에서 가장 먼저 맞는 나라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2011년 &amp;mdash; 사모아와 토켈라우.&lt;/b&gt; 119년 전 미국 상인들의 청으로 옮겨 갔던 선이 되돌아왔다. 이번 상대는 호주와 뉴질랜드였다. 두 나라와 하루가 어긋나 있으면 사모아의 금요일이 상대의 토요일이 되어 주당 실제 거래일이 줄어든다는 것이 투일라에파 사일렐레 말리엘레가오이 총리의 설명이었다.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다음 날은 12월 31일 토요일이었고, &lt;b&gt;그해 사모아에 12월 30일은 없었다.&lt;/b&gt; 처음에는 반대하던 야당도 표결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토켈라우는 사모아와 날짜를 맞춰 두어야 했으므로 함께 넘어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섯 번의 조치를 한자리에 놓으면 규칙이 보인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연도&lt;/th&gt;
&lt;th&gt;지역&lt;/th&gt;
&lt;th&gt;조치&lt;/th&gt;
&lt;th&gt;옮겨 간 쪽&lt;/th&gt;
&lt;th&gt;이유&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1844&lt;/td&gt;
&lt;td&gt;필리핀&lt;/td&gt;
&lt;td&gt;12월 31일 삭제&lt;/td&gt;
&lt;td&gt;아메리카 &amp;rarr; 아시아&lt;/td&gt;
&lt;td&gt;아시아 교역&lt;/td&gt;
&lt;/tr&gt;
&lt;tr&gt;
&lt;td&gt;1867&lt;/td&gt;
&lt;td&gt;알래스카&lt;/td&gt;
&lt;td&gt;금요일을 두 번&lt;/td&gt;
&lt;td&gt;아시아 &amp;rarr; 아메리카&lt;/td&gt;
&lt;td&gt;미국 편입&lt;/td&gt;
&lt;/tr&gt;
&lt;tr&gt;
&lt;td&gt;1892&lt;/td&gt;
&lt;td&gt;사모아&lt;/td&gt;
&lt;td&gt;7월 4일을 두 번&lt;/td&gt;
&lt;td&gt;아시아 &amp;rarr; 아메리카&lt;/td&gt;
&lt;td&gt;캘리포니아 교역&lt;/td&gt;
&lt;/tr&gt;
&lt;tr&gt;
&lt;td&gt;1993&lt;/td&gt;
&lt;td&gt;콰절레인&lt;/td&gt;
&lt;td&gt;8월 21일 삭제&lt;/td&gt;
&lt;td&gt;아메리카 &amp;rarr; 아시아&lt;/td&gt;
&lt;td&gt;국내 날짜 통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1995&lt;/td&gt;
&lt;td&gt;키리바시 동부&lt;/td&gt;
&lt;td&gt;12월 31일 삭제&lt;/td&gt;
&lt;td&gt;아메리카 &amp;rarr; 아시아&lt;/td&gt;
&lt;td&gt;국내 날짜 통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2011&lt;/td&gt;
&lt;td&gt;사모아&amp;middot;토켈라우&lt;/td&gt;
&lt;td&gt;12월 30일 삭제&lt;/td&gt;
&lt;td&gt;아메리카 &amp;rarr; 아시아&lt;/td&gt;
&lt;td&gt;호주&amp;middot;뉴질랜드 교역&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여섯 건 모두 천문학이 아니라 거래 상대가 이유다.&lt;/b&gt; 어느 쪽 나라와 같은 요일에 사무실을 열 것인가 &amp;mdash; 그것이 선의 위치를 정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나라가 온 국민의 날짜를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점에서 이 조치들은 국가 단위 동시 전환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도로 통행 방향이나 통화를 온 나라가 같은 시각에 갈아치우는 일과 설계 문제가 같다는 이야기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50&quot;&gt;절반만 바꾸면 더 위험하다&lt;/a&gt;에 적어 두었다. 날짜 전환이 그중 가장 단순한 축에 드는 것은 &lt;b&gt;되돌아갈 절반이 아예 없기 때문&lt;/b&gt;이다. 달력을 반만 바꾼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결과 오늘날 선의 양쪽은 이렇게 벌어져 있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지역&lt;/th&gt;
&lt;th&gt;표준시&lt;/th&gt;
&lt;th&gt;비고&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키리바시 라인 제도&lt;/td&gt;
&lt;td&gt;UTC+14&lt;/td&gt;
&lt;td&gt;지구에서 날짜가 가장 먼저 시작된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사모아&amp;middot;토켈라우&lt;/td&gt;
&lt;td&gt;UTC+13&lt;/td&gt;
&lt;td&gt;2011년에 옮겨 온 자리&lt;/td&gt;
&lt;/tr&gt;
&lt;tr&gt;
&lt;td&gt;뉴질랜드&lt;/td&gt;
&lt;td&gt;UTC+12&lt;/td&gt;
&lt;td&gt;&amp;nbsp;&lt;/td&gt;
&lt;/tr&gt;
&lt;tr&gt;
&lt;td&gt;미국령 사모아&lt;/td&gt;
&lt;td&gt;UTC&amp;minus;11&lt;/td&gt;
&lt;td&gt;사모아와 24시간 차&lt;/td&gt;
&lt;/tr&gt;
&lt;tr&gt;
&lt;td&gt;베이커&amp;middot;하울랜드섬(무인)&lt;/td&gt;
&lt;td&gt;UTC&amp;minus;12&lt;/td&gt;
&lt;td&gt;라인 제도와 26시간 차&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모아와 미국령 사모아는 배로 몇 시간 거리인데 달력의 날짜가 다르다. 라인 제도와 베이커섬은 1,00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시각이 &lt;b&gt;26시간&lt;/b&gt; 어긋난다. 하루가 24시간이니, 이 둘 사이에는 이론상 지구 어디에도 없는 시차가 존재하는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22년 카보베르데에서 확인된 것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날 드러난 것은 &lt;b&gt;날짜라는 것이 관측이 아니라 약속이라는 사실&lt;/b&gt;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고, 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약속은 조약 대신 각국의 사정으로 갱신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날짜변경선 통사: &lt;a href=&quot;https://webspace.science.uu.nl/~gent0113/idl/idl.htm&quot;&gt;R.H. van Gent &amp;mdash;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Date Line&lt;/a&gt; (Utrecht University)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Date_Line&quot;&gt;Wikipedia &amp;mdash; International Date Line&lt;/a&gt;&lt;br /&gt;- 1522년의 발견과 그 이전의 예측: &lt;a href=&quot;https://webspace.science.uu.nl/~gent0113/idl/idl_discovery.htm&quot;&gt;van Gent &amp;mdash; Discovery of the IDL&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ebspace.science.uu.nl/~gent0113/idl/idl_early.htm&quot;&gt;van Gent &amp;mdash; Early histor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agellan_expedition&quot;&gt;Wikipedia &amp;mdash; Magellan expediti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icole_Oresme&quot;&gt;Wikipedia &amp;mdash; Nicole Oresm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Abu'l-Fida&quot;&gt;Wikipedia &amp;mdash; Abu'l-Fida&lt;/a&gt;&lt;br /&gt;- 필리핀 1844: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arciso_Claver%C3%ADa_y_Zald%C3%BAa&quot;&gt;Wikipedia &amp;mdash; Narciso Claver&amp;iacute;a y Zald&amp;uacute;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in-1844-the-philippines-skipped-a-day-and-it-took-decades-for-the-rest-of-the-world-to-notice&quot;&gt;Atlas Obscura &amp;mdash; In 1844, the Philippines Skipped a D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slate.com/human-interest/2016/02/in-1844-the-philippines-skipped-a-day-and-it-took-decades-for-the-rest-of-the-world-to-notice.html&quot;&gt;Slat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oikofuge.com/territories-that-crossed-the-dateline-1/&quot;&gt;The Oikofuge &amp;mdash; Territories That Crossed The Date Line: Up To 1900&lt;/a&gt;&lt;br /&gt;- 알래스카 1867&amp;middot;사모아 1892: &lt;a href=&quot;https://webspace.science.uu.nl/~gent0113/idl/idl_alaska_samoa.htm&quot;&gt;van Gent &amp;mdash; Alaska/Samoa adjustmen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Alaska_Day&quot;&gt;Wikipedia &amp;mdash; Alaska Day&lt;/a&gt;&lt;br /&gt;-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와 선의 법적 지위: &lt;a href=&quot;https://www.gutenberg.org/files/17759/17759-h/17759-h.htm&quot;&gt;의사록 원문(Project Gutenberg)&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royalobservatorygreenwich.org/articles.php?article=1240&quot;&gt;Royal Observatory Greenwich &amp;mdash; The adoption of a Prime Meridia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Meridian_Conference&quot;&gt;Wikipedia &amp;mdash; International Meridian Conferenc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aa.usno.navy.mil/faq/international_date&quot;&gt;US Naval Observatory &amp;mdash; The International Date Line&lt;/a&gt;&lt;br /&gt;- 사모아 제도의 분할: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ripartite_Convention&quot;&gt;Wikipedia &amp;mdash; Tripartite Conventi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reaty_of_Cession_of_Tutuila&quot;&gt;Wikipedia &amp;mdash; Treaty of Cession of Tutuila&lt;/a&gt;&lt;br /&gt;- 1993&amp;middot;1995&amp;middot;2011년의 조정: &lt;a href=&quot;https://webspace.science.uu.nl/~gent0113/idl/idl_recent.htm&quot;&gt;van Gent &amp;mdash; Kiribati/Samoa adjustment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ime_in_the_Marshall_Islands&quot;&gt;Wikipedia &amp;mdash; Time in the Marshall Island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ljazeera.com/news/2011/12/30/pacific-islands-lose-a-day-in-dateline-warp&quot;&gt;Al Jazeera &amp;mdash; Pacific islands lose a day in dateline warp&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imeanddate.com/news/time/tokelau-dateline.html&quot;&gt;timeanddate &amp;mdash; Tokelau's dateline chang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russel.com/kir/dateline.htm&quot;&gt;Millenium: Date Line Politics&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특집, 날짜변경선, 마젤란원정, 필리핀1844, 알래스카매입, 사모아, 키리바시, 국제자오선회의&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특집</category>
      <category>국제자오선회의</category>
      <category>날짜변경선</category>
      <category>마젤란원정</category>
      <category>사모아</category>
      <category>알래스카매입</category>
      <category>오늘의특집</category>
      <category>키리바시</category>
      <category>필리핀1844</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historypick.tistory.com/56</guid>
      <comments>https://historypick.tistory.com/56#entry56comment</comments>
      <pubDate>Sun, 6 Sep 2026 07:41: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9월 6일 오늘의 역사: 하루가 모자란 항해일지, 2,131경기를 이어 붙인 사람</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5</link>
      <description>&lt;h2 id=&quot;9월-6일-오늘의-역사-하루가-모자란-항해일지-2131경기를-이어-붙인-사람&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9월 6일 오늘의 역사: 하루가 모자란 항해일지, 2,131경기를 이어 붙인 사람&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22년 스페인에 닿은 배의 항해일지는 육지의 달력보다 하루 뒤처져 있었다. 1995년 볼티모어에서는 한 선수가 5회 초 스리아웃과 함께 56년 된 기록을 넘어섰다. 소련에서 훔쳐 온 전투기와 효모를 사러 가던 길에 표를 던진 노인까지, 9월 6일의 다섯 장면이다.&lt;/p&gt;
&lt;h2 id=&quot;①-1995--5회-초-스리아웃과-함께-깨진-기록&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① 1995 &amp;mdash; 5회 초 스리아웃과 함께 깨진 기록&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57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v69M0/dJMcaiSghIS/ma3sdcijNQk9ap1xK4DoI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v69M0/dJMcaiSghIS/ma3sdcijNQk9ap1xK4DoI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v69M0/dJMcaiSghIS/ma3sdcijNQk9ap1xK4DoI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v69M0%2FdJMcaiSghIS%2Fma3sdcijNQk9ap1xK4DoI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573&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57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96년 8월 캠든야즈. 타석에 칼 립켄 주니어, 대기 타석에 에디 머리가 있고 뒤편에 B&amp;amp;O 창고가 보인다. 상대는 1년 전 기록 경신 때와 같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였다. 사진: Jerry Reuss, CC BY-SA 2.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95년 9월 6일 밤, 볼티모어 캠든야즈에 4만 6,272명이 들어찼다. 매진이었다. 관중석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이 앉아 있었고, ESPN이 전국에 중계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날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유격수 &lt;b&gt;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lt;/b&gt;가 2,131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뉴욕 양키스의 &lt;b&gt;루 게릭(Lou Gehrig)&lt;/b&gt;이 1925년 6월 1일부터 1939년 4월 30일까지 쌓은 2,130경기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56년 동안 아무도 근처에 가지 못한 숫자였다.&lt;/b&gt; 게릭은 1939년 5월 2일 스스로 감독에게 결장을 청했고, 곧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진단을 받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기록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lt;b&gt;깨지는 순간이 어떤 동작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라는 것이다.&lt;/b&gt; 야구 규칙상 경기가 공식 기록으로 성립하려면 5회를 채워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립켄의 2,131번째 경기는 &lt;b&gt;5회 초 세 번째 아웃이 잡히는 순간&lt;/b&gt; 공식화됐다. 그 아웃카운트가 올라가자 외야 너머 B&amp;amp;O 철도 창고 벽에 걸려 있던 숫자 현수막이 2,130에서 &lt;b&gt;2,131&lt;/b&gt;로 바뀌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립켄 본인은 경기가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전에 &quot;경기 중단은 안 된다&quot;는 뜻을 분명히 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동료들이 그 뜻을 무시했다.&lt;/b&gt; 보비 보니야와 라파엘 팔메이로가 더그아웃에서 그를 그라운드로 밀어냈고, 립켄은 담장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며 관중과 손을 맞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경기는 그렇게 22분간 멈춰 있었다.&lt;/b&gt; 5회 중간의 이 공백은 그해 미국 스포츠에서 가장 길게 이어진 박수로 기록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야구로만 봐도 좋은 밤이었다. 립켄은 4회에 숀 보스키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고, 전날 게릭과 타이를 이룬 2,130번째 경기에서도 홈런을 쳤다. 오리올스가 4대 2로 이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시점도 사정이 있었다. &lt;b&gt;1994년 선수 파업으로 월드시리즈가 취소된 뒤 야구는 관중을 잃은 상태였다.&lt;/b&gt; 이날 밤은 그 관계를 되돌린 장면으로 자주 인용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립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연속 출장은 &lt;b&gt;2,632경기&lt;/b&gt;까지 늘어났고, 1998년 9월 20일 그가 스스로 라인업에서 빠지면서 끝났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②-1976--하코다테에-내린-소련-전투기&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② 1976 &amp;mdash; 하코다테에 내린 소련 전투기&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5/Soviet_MiG-25_Foxbat-E.jpg/960px-Soviet_MiG-25_Foxbat-E.jpg&quot; alt=&quot;MiG-25 요격기&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MiG-25 요격기. 서방이 붙인 별칭은 '폭스배트'였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76년 9월 6일 아침, 소련 방공군 중위 &lt;b&gt;빅토르 벨렌코(Viktor Belenko)&lt;/b&gt;가 편대 훈련 비행을 위해 이륙했다. 기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190km 떨어진 추구예프카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는 편대에서 이탈해 기수를 일본 쪽으로 돌렸다.&lt;/b&gt;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해면 가까이 내려간 뒤 저공으로 홋카이도를 향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본 방공 레이더가 미확인 기체를 포착하고 F-4를 발진시켰지만 구름 속에서 놓쳤다. 벨렌코는 자위대 지토세 기지를 찾다가 연료가 바닥나자 민간 공항인 하코다테로 향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착륙에 성공했을 때 남은 연료는 약 30초분이었다.&lt;/b&gt; 그러나 활주로가 짧았다. 그는 감속 낙하산을 펴고 제동을 걸었고, 그 힘에 앞바퀴 타이어가 터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체는 활주로 끝을 &lt;b&gt;240m 지나쳐&lt;/b&gt; 착륙 유도용 안테나를 부수고 잔디밭에 멈춰 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곧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lt;b&gt;벨렌코는 권총을 꺼내 공중에 쏘아 접근을 막았다.&lt;/b&gt; 그가 원한 것은 기체가 그대로 보존된 채 미국 측에 넘어가는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방이 이 순간을 기다린 데는 이유가 있다. &lt;b&gt;MiG-25는 당시 서방이 가장 두려워한 기체였다.&lt;/b&gt; 1967년 공개된 뒤 마하 3급 속도와 압도적 상승력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이에 맞설 전투기 개발을 서둘렀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F-15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체는 곧바로 이바라키현 햐쿠리 기지로 옮겨졌다. &lt;b&gt;9월 25일부터 일본과 미국 기술진이 부분 해체에 들어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뜯어본 결과는 예상과 딴판이었다. &lt;b&gt;기체의 약 80%가 티타늄이 아니라 니켈강이었다.&lt;/b&gt; 열에는 강했지만 그만큼 무거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자장비에는 트랜지스터 대신 &lt;b&gt;진공관 계열 부품이 들어 있었다.&lt;/b&gt; 서방이 십수 년 전에 넘어선 기술이었다. 다만 이는 낙후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해석이 함께 나왔다 &amp;mdash; 진공관은 핵폭발 시 발생하는 전자기 충격에 강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능의 실체도 드러났다. &lt;b&gt;이 기체는 높이 올라가 아주 빠르게 직선으로 날아가 미사일을 쏘고 돌아오는 용도였다.&lt;/b&gt; 급격한 기동은 어려웠고, 최고 속도 역시 엔진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애초에 MiG-25가 겨눈 표적은 미국의 초음속 폭격기 XB-70 발키리였다. &lt;b&gt;그런데 그 폭격기는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취소됐다.&lt;/b&gt; 상대가 사라진 뒤에도 요격기만 남아 서방의 계산을 부풀린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체는 &lt;b&gt;11월 15일 상자 40여 개에 담겨 소련으로 돌아갔다.&lt;/b&gt; 소련은 부품 20여 점이 빠졌다고 항의했고, 일본은 공항 시설 파손과 운송 비용으로 4만 달러를 청구했다. 이 청구서가 지급됐다는 기록은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벨렌코는 미국에서 망명을 인정받고 시민권을 얻었다. 이후 항공 분야 자문과 강연으로 살았고, &lt;b&gt;2023년 9월 24일 일리노이주의 한 요양시설에서 76세로 세상을 떠났다.&lt;/b&gt; 부고가 알려진 것은 두 달 뒤였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③-1870--효모를-사러-가던-길에&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③ 1870 &amp;mdash; 효모를 사러 가던 길에&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3/Woman_suffrage_in_Wyoming_Territory._-_Scene_at_the_polls_in_Cheyenne_-_from_a_photo._by_Kirkland._LCCN92516129.jpg/960px-Woman_suffrage_in_Wyoming_Territory._-_Scene_at_the_polls_in_Cheyenne_-_from_a_photo._by_Kirkland._LCCN92516129.jpg&quot; alt=&quot;와이오밍 준주의 투표소 풍경을 그린 1888년 판화&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와이오밍 준주의 투표소를 그린 1888년 판화. 샤이엔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69년 12월 10일, 와이오밍 준주 의회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이름은 「와이오밍 준주의 여성에게 선거권과 공직 취임권을 부여하는 법」이었다. 주지사 &lt;b&gt;존 A. 캠벨(John A. Campbell)&lt;/b&gt;이 서명하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이 법으로 명시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의회는 전원 남성이었다. &lt;b&gt;동기는 이상보다 계산에 가까웠다.&lt;/b&gt; 당시 와이오밍은 남성 인구가 여성의 몇 배에 이르는 철도 개척지였고, 준주는 이 조치가 불러올 화제성과 이주 유인을 기대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유가 어떠했든 법은 만들어졌다. 그 법으로 치러진 첫 선거일이 &lt;b&gt;1870년 9월 6일&lt;/b&gt;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 아침 라라미의 투표소에 &lt;b&gt;루이자 앤 스웨인(Louisa Ann Swain)&lt;/b&gt;이 나타났다. 일흔 살 안팎의 여성이었고, 인디애나에서 가족을 따라 이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양동이를 들고 빵집에 &lt;b&gt;효모를 사러 가던 길&lt;/b&gt;이었다. 투표소를 지나다 들어가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효모 양동이가 실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lt;/b&gt; 라라미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숄을 두르고 투표용지와 양동이를 든 모습이지만, 이 일화 자체를 후대의 각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다만 그가 그날 투표했다는 사실만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록에는 시간 경쟁도 남아 있다. 샤이엔에서는 오거스타 C. 하우가 같은 날 투표했는데, &lt;b&gt;스웨인이 30분 빨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quot;1807년 이후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투표한 첫 여성&quot;이라는 수식이 붙는 이유는 그 이전에 예외가 있었기 때문이다. &lt;b&gt;뉴저지주는 한동안 재산 요건을 갖춘 여성의 투표를 허용하다가 1807년에 이를 막았다.&lt;/b&gt; 그 뒤 63년 만에 다시 열린 문이 라라미의 투표소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은 곧 닫힐 뻔했다. &lt;b&gt;1871년 준주 의회가 1869년 법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lt;/b&gt; 캠벨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했고, 하원은 3분의 2로 재의결에 성공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남은 것은 상원 격인 평의회였다.&lt;/b&gt; 여기서 재의결에 필요한 표가 &lt;b&gt;한 표 모자랐다.&lt;/b&gt; 와이오밍의 여성 참정권은 그렇게 한 표 차이로 살아남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국 전체가 이 자리에 도달하는 데는 다시 50년이 걸렸다. 수정헌법 제19조가 발효된 것은 1920년이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④-1803--원자에-무게를-매긴-공책&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④ 1803 &amp;mdash; 원자에 무게를 매긴 공책&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1/Dalton%27s_symbols_of_the_elements._1806_Wellcome_M0004592.jpg/960px-Dalton%27s_symbols_of_the_elements._1806_Wellcome_M0004592.jpg&quot; alt=&quot;돌턴이 고안한 원소 기호표&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존 돌턴이 고안한 원소 기호. 원 안에 점&amp;middot;선&amp;middot;글자를 넣어 원소를 구분했다. 사진: 웰컴 컬렉션(Wellcome Collection), CC BY 4.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존 돌턴(John Dalton)&lt;/b&gt;은 맨체스터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기상을 관측하던 퀘이커교도였다. 색을 남들과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스스로 분석해 발표한 적이 있어, 적록색각이상을 뜻하는 '돌터니즘'이라는 말이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02년부터 1804년까지 쓴 그의 실험 공책에는 날짜가 붙은 항목들이 이어진다. 그중 &lt;b&gt;1803년 9월 6일 항목&lt;/b&gt;에 지금까지 알려진 &lt;b&gt;최초의 원자량 목록&lt;/b&gt;이 적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목록의 방식은 단순하다. &lt;b&gt;가장 가벼운 수소를 1로 놓고, 다른 물질의 입자가 그것의 몇 배인지를 적었다.&lt;/b&gt; 물과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이 그 표에 들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흘 앞선 9월 3일 항목에는 「물체의 궁극 입자와 그 결합에 관한 관찰」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lt;b&gt;원 안에 점과 선을 넣은 그의 원소 기호가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lt;/b&gt; 기호가 먼저, 무게가 사흘 뒤인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돌턴은 이 내용을 &lt;b&gt;1803년 10월 21일 맨체스터 문학철학회에서 발표했고&lt;/b&gt;, 1808년 『화학철학의 새 체계』에서 원소 36종의 기호와 함께 정리해 내놓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숫자 자체는 여러 개가 틀렸다. &lt;b&gt;그가 물을 수소 하나와 산소 하나의 결합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lt;/b&gt; 원소가 결합할 때는 가장 단순한 비를 따를 것이라는 원칙에서 나온 판단이었고, 그 결과 산소의 상대값은 지금 알려진 값보다 훨씬 작게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호도 오래가지 못했다. 스웨덴의 &lt;b&gt;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J&amp;ouml;ns Jacob Berzelius)&lt;/b&gt;가 원소 이름의 머리글자를 쓰는 방식을 내놓았고, 오늘날 H&amp;middot;O&amp;middot;C로 쓰는 표기가 거기서 이어진다. &lt;b&gt;돌턴은 이 방식을 끝까지 못마땅해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럼에도 9월 6일의 공책 한 쪽이 남긴 것은 분명하다. &lt;b&gt;원소를 이름이 아니라 숫자로 다룰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lt;/b&gt; 화학이 서술에서 계산으로 넘어가는 문턱이 여기에 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⑤-1522--하루가-모자란-항해일지&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⑤ 1522 &amp;mdash; 하루가 모자란 항해일지&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b/Detail_from_a_map_of_Ortelius_-_Magellan%27s_ship_Victoria.png/960px-Detail_from_a_map_of_Ortelius_-_Magellan%27s_ship_Victoria.png&quot; alt=&quot;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에 그려진 빅토리아호&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589년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태평양 지도에 그려진 빅토리아호.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19년 9월 20일, 스페인 산루카르데바라메다 항에서 배 다섯 척이 떠났다. 사람은 약 270명, 목적지는 향신료의 산지 몰루카 제도였고, 지휘는 포르투갈 출신의 &lt;b&gt;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lt;/b&gt;이 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년 뒤인 &lt;b&gt;1522년 9월 6일, 같은 항구로 배 한 척이 들어왔다.&lt;/b&gt; 빅토리아호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갑판에 서 있던 사람은 18명이었다.&lt;/b&gt; 티도레에서 함께 탄 몰루카인 세 명이 더 있었다. 마젤란은 1521년 4월 필리핀 막탄에서 이미 목숨을 잃었고, 지휘는 바스크 출신 &lt;b&gt;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Juan Sebasti&amp;aacute;n Elcano)&lt;/b&gt;에게 넘어가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배 다섯 척 가운데 돌아온 것은 이 한 척뿐이다. 그런데도 원정은 회계상 성공으로 기록됐다. &lt;b&gt;선창에 실린 향신료 26톤, 정향 381자루를 팔아 원정 전체의 비용을 메우고도 남았기 때문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보다 두 달 앞선 7월, 이들은 대서양의 카보베르데에 들러 식량을 구했다. 그 자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현지 사람들이 말한 날짜가 배의 항해일지보다 하루 앞서 있었다.&lt;/b&gt; 배에서는 7월 9일이었는데, 육지에서는 7월 10일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록에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수행원 &lt;b&gt;안토니오 피가페타(Antonio Pigafetta)&lt;/b&gt;는 항해 내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일지를 썼고, 그 점을 스스로 확인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원인은 방향이었다.&lt;/b&gt; 서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해가 뜨는 횟수를 한 번 덜 겪게 된다. 배 위에서 센 날짜는 정확했지만, 그 정확함이 육지의 달력과 하루 어긋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다만 &lt;b&gt;한 바퀴를 돌면 날짜가 어긋난다는 것을 실제로 겪어 본 사람은 이들이 처음이었다.&lt;/b&gt; 이 보고는 곧 유럽 학자들과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축일을 하루 어긋난 날에 지켰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어긋남을 제도로 정리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300여 년 뒤 필리핀이 달력에서 하루를 통째로 지워 날짜를 맞춘 이야기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14&quot;&gt;8월 16일 오늘의 역사&lt;/a&gt;에 단신으로 적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엘카노에게는 문장이 내려졌다. 위쪽에 지구본이 얹히고 그 둘레에 한 문장이 새겨졌다. &lt;b&gt;&quot;Primus circumdedisti me&quot; &amp;mdash; 그대가 처음으로 나를 돌았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h3 id=&quot;오늘의-단신&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오늘의 단신&lt;/h3&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2022&lt;/b&gt;: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리즈 트러스(Liz Truss)가 뒤를 잇는다 &amp;mdash; 두 사람은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각각 알현했다. 이것이 여왕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고, 이틀 뒤 여왕은 같은 성에서 세상을 떠났다&lt;/li&gt;
&lt;li&gt;&lt;b&gt;2018&lt;/b&gt;: 인도 대법원이 성인 간 합의에 의한 동성 성행위를 처벌해 온 형법 377조를 위헌으로 판단한다 &amp;mdash; 1861년 영국 식민 통치기에 도입된 조항이었다&lt;/li&gt;
&lt;li&gt;&lt;b&gt;2013&lt;/b&gt;: NASA의 달 탐사선 LADEE가 발사된다 &amp;mdash; 밤 11시 27분 버지니아 월러프스 발사장에서 올라간 미노타우로스 V의 첫 비행이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조한 로켓이 달 탐사선을 실은 사례다&lt;/li&gt;
&lt;li&gt;&lt;b&gt;1997&lt;/b&gt;: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장례식이 런던에서 열린다 &amp;mdash;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구 행렬이 지나는 길에 늘어섰고, 전 세계 25억 명가량이 중계를 지켜본 것으로 집계됐다&lt;/li&gt;
&lt;li&gt;&lt;b&gt;1991&lt;/b&gt;: 소련이 에스토니아&amp;middot;라트비아&amp;middot;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승인한다 &amp;mdash; 같은 날 러시아 의회는 레닌그라드의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개명은 10월 1일부터 효력을 가졌다&lt;/li&gt;
&lt;li&gt;&lt;b&gt;1968&lt;/b&gt;: 스와질란드가 영국에서 독립한다 &amp;mdash; 2018년 독립 50주년에 국왕 음스와티 3세가 국호를 에스와티니로 바꿨다. 영어권에서 스위스(Switzerland)와 혼동된다는 이유가 함께 언급됐다&lt;/li&gt;
&lt;li&gt;&lt;b&gt;1962&lt;/b&gt;: 고고학자 피터 마스든이 런던 템스강 블랙프라이어스에서 2세기 로마 시대 선박을 발견한다 &amp;mdash; 길이 16~17m에 용골 없이 넓은 바닥판을 댄 구조였고, 켄트산 건축용 석재 26톤을 싣고 있었다. 돛대 받침에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동전 한 닢이 나왔다. 항해의 안전을 빌어 놓아둔 것으로 해석된다&lt;/li&gt;
&lt;li&gt;&lt;b&gt;1946&lt;/b&gt;: 미 국무장관 제임스 F. 번스(James F. Byrnes)가 슈투트가르트에서 패전국 독일의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amp;mdash; 독일을 농업국으로 되돌린다는 전후 초기 구상을 뒤집은 연설로, 뒷날 '희망의 연설'로 불렸다&lt;/li&gt;
&lt;li&gt;&lt;b&gt;1885&lt;/b&gt;: 동루멜리아가 불가리아와의 통합을 선포한다 &amp;mdash; 1878년 베를린 조약으로 갈라졌던 두 지역이 다시 합쳐진 날이며, 불가리아는 지금도 이날을 통합기념일로 지킨다&lt;/li&gt;
&lt;li&gt;&lt;b&gt;1620&lt;/b&gt;: 메이플라워호가 잉글랜드 플리머스를 떠난다 &amp;mdash; 승객은 102명이었다. 당시 잉글랜드가 쓰던 율리우스력으로 9월 6일이고, 오늘날의 그레고리력으로는 9월 16일에 해당한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사건 데이터: &lt;a href=&quot;https://api.wikimedia.org/feed/v1/wikipedia/en/onthisday/events/09/06&quot;&gt;Wikimedia On This Day API&lt;/a&gt; &amp;middot;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lt;br /&gt;- 립켄 2,131경기: &lt;a href=&quot;https://sabr.org/gamesproj/game/september-6-1995-cal-ripken-surpasses-lou-gehrigs-unbreakable-record-with-2131st-consecutive-game/&quot;&gt;SABR &amp;mdash; September 6, 1995: Cal Ripken surpasses Lou Gehrig's 'unbreakable' record&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mlb.com/news/featured/cal-ripken-jr-streak-oral-history&quot;&gt;MLB.com &amp;mdash; An oral history of Cal Ripken Jr.'s streak&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ashingtonpost.com/history/2025/09/06/cal-ripken-baseball-record-straight-games/&quot;&gt;The Washington Post &amp;mdash; Cal Ripken Jr. broke baseball's 'unbreakable' record 30 years ag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baseballhall.org/discover-more/stories/inside-pitch/lou-gehrig-plays-his-2000th-consecutive-appearance&quot;&gt;Baseball Hall of Fame &amp;mdash; Lou Gehrig&lt;/a&gt;&lt;br /&gt;- 벨렌코 망명: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efection_of_Viktor_Belenko&quot;&gt;Wikipedia &amp;mdash; Defection of Viktor Belenk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theaviationist.com/2016/09/06/the-story-of-the-soviet-pilot-who-defected-to-japan-with-a-secretive-mig-25-foxbat-otd-in-1976/&quot;&gt;The Aviationist &amp;mdash; The Story Of The Soviet Pilot Who Defected To Japan With A Secretive MiG-25 Foxba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rynet.com/mig-25/&quot;&gt;HistoryNet &amp;mdash; The MiG-25 Terrified the West Until a Defector Exposed Its True Natur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rferl.org/a/russia-pilot-belenko-japan-mig25-defector-dies/32693702.html&quot;&gt;RFE/RL &amp;mdash; Viktor Belenko, Soviet Defector Who Hijacked MiG-25 To Japan In 1976, Dies In U.S.&lt;/a&gt;&lt;br /&gt;- 루이자 스웨인의 투표: &lt;a href=&quot;https://www.wyohistory.org/encyclopedia/who-cast-first-vote&quot;&gt;WyoHistory &amp;mdash; Who Cast the First Vot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yohistory.org/encyclopedia/right-choice-wrong-reasons-wyoming-women-win-right-vote&quot;&gt;WyoHistory &amp;mdash; Right Choice, Wrong Reasons: Wyoming Women Win the Right to Vot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omenshistory.org/education-resources/biographies/louisa-ann-swain&quot;&gt;National Women's History Museum &amp;mdash; Louisa Ann Swai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yoachs.com/a-variety-of-other-topics/2019/12/8/1869-wyoming-suffrage-act-almost-repealed-in-1871&quot;&gt;Albany County Historical Society &amp;mdash; 1869 Wyoming Suffrage Act Almost Repealed in 1871&lt;/a&gt;&lt;br /&gt;- 돌턴의 공책: &lt;a href=&quot;https://www.compoundchem.com/2016/09/06/dalton/&quot;&gt;Compound Interest &amp;mdash; John Dalton's Birthday and His Chemical Symbol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chemteam.info/AtomicStructure/Dalton.html&quot;&gt;ChemTeam &amp;mdash; Atomic Structure: Dalt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John_Dalton&quot;&gt;Wikipedia &amp;mdash; John Dalton&lt;/a&gt;&lt;br /&gt;- 빅토리아호 귀항: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agellan_expedition&quot;&gt;Wikipedia &amp;mdash; Magellan expediti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history-magazine/article/this-man-was-actually-first-to-sail-around-the-world&quot;&gt;National Geographic &amp;mdash; Magellan got the credit, but this man was first to sail around the world&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lindahall.org/about/news/scientist-of-the-day/juan-elcano/&quot;&gt;Linda Hall Library &amp;mdash; Juan Elcano&lt;/a&gt;&lt;br /&gt;- 단신 보강: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Blackfriars_shipwrecks&quot;&gt;Wikipedia &amp;mdash; Blackfriars shipwreck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asa.gov/missions/ladee/ladees-minotaur-v-rocket-typen/&quot;&gt;NASA &amp;mdash; LADEE's Minotaur V Rock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ayflower&quot;&gt;Wikipedia &amp;mdash; Mayflower&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역사, 9월6일, 칼립켄, MiG25망명, 루이자스웨인, 존돌턴, 마젤란빅토리아호, 날짜변경선&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역사</category>
      <category>9월6일</category>
      <category>MiG25망명</category>
      <category>날짜변경선</category>
      <category>루이자스웨인</category>
      <category>마젤란빅토리아호</category>
      <category>오늘의역사</category>
      <category>존돌턴</category>
      <category>칼립켄</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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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6 Sep 2026 07:30: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연회는 원인이 아니었다: 푸케를 무너뜨린 준비의 시간표</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4</link>
      <description>&lt;h2 id=&quot;연회는-원인이-아니었다-푸케를-무너뜨린-준비의-시간표&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연회는 원인이 아니었다: 푸케를 무너뜨린 준비의 시간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61년 9월 5일 오전, 낭트에서 어전회의가 끝났다. 회의장을 나서던 프랑스 재무총감 니콜라 푸케를 총사대장 달타냥이 대성당 앞 광장에서 붙잡았다. 19일 전, 그는 자기 성에 왕을 초대해 프랑스가 본 적 없는 연회를 열었다. 그래서 오래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amp;mdash; 연회가 지나쳤고, 왕이 질투했고, 3주 뒤 그는 끝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53&quot;&gt;9월 5일 오늘의 역사&lt;/a&gt;에서는 그 체포의 하루와 3년 뒤의 판결까지를 다뤘다. 여기서부터는 그 앞뒤의 이야기다. 연회와 체포 사이의 19일은 이야기로는 완벽하지만, 남아 있는 문서는 다른 순서를 가리킨다. 결정은 연회보다 먼저 있었고, 방패는 연회보다 먼저 치워졌으며, 자리를 대체할 제도는 체포 이레 만에 나왔다. 그런데도 400년 가까이 살아남은 것은 문서 쪽이 아니라 이야기 쪽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19일이라는-눈금&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9일이라는 눈금&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578&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qHY2M/dJMb99OolIM/OcTxR5IH94kdGuZ9TK758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qHY2M/dJMb99OolIM/OcTxR5IH94kdGuZ9TK758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qHY2M/dJMb99OolIM/OcTxR5IH94kdGuZ9TK758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qHY2M%2FdJMb99OolIM%2FOcTxR5IH94kdGuZ9TK758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578&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578&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정원 쪽에서 본 보르비콩트 성의 남쪽 파사드. 1661년 8월 17일 저녁, 왕과 궁정이 이 앞에 도착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통설에 가장 좋은 문장을 준 사람은 볼테르다. 1751년 『루이 14세의 시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lt;b&gt;&quot;8월 17일 저녁 여섯 시에 푸케는 프랑스의 왕이었고, 새벽 두 시에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장 하나에 사건의 전부가 들어 있다. 시각이 있고, 반전이 있고, 원인과 결과가 여섯 시간 안에 붙어 있다. 이보다 잘 기억되는 형태의 역사 서술은 드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의 사실 관계 자체는 어긋난 데가 없다. 왕과 모후, 그리고 궁정 사람들이 보르비콩트에 도착했고, 분수와 불꽃놀이가 있었고, 몰리에르의 「레 파쉬외」가 처음 무대에 올랐다. 참석 인원은 자료마다 크게 갈려 여기 숫자를 적지 않는다. 왕이 모후에게 &quot;이 사람들이 삼킨 것을 토해 내게 하지 않겠소?&quot;라고 말했다는 대목도 오래 인용되지만, 이것은 당대 회의록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일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제는 산수다. 8월 17일에서 9월 5일까지는 &lt;b&gt;19일&lt;/b&gt;이다. 흔히 '3주 뒤'로 적히지만 3주가 채 되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일 안에 무엇이 가능한지 따져 보면 통설의 부담이 드러난다. 이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그 19일 안에서 왕의 결심, 법률적 준비, 체포 장소와 인원의 배치, 그리고 재무총감이라는 자리 자체를 대체할 방안까지가 모두 만들어져야 한다. 17세기 궁정의 이동 속도로는 무리한 일정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실제로 남아 있는 문서들은 이 일정표를 뒤로 밀어 놓는다. 연회는 그 일정표 위의 한 점이었고, 시작점이 아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방패는-연회-엿새-전에-사라졌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방패는 연회 엿새 전에 사라졌다&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8/Lefebvre_-_Jean-Baptiste_Colbert.jpg/500px-Lefebvre_-_Jean-Baptiste_Colbert.jpg&quot; alt=&quot;클로드 르페브르가 그린 장바티스트 콜베르의 초상&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클로드 르페브르가 그린 장바티스트 콜베르. 마자랭의 재산을 관리하던 그는 푸케의 회계를 왕에게 넘기는 자리에 있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출발점은 1661년 3월 9일이다. 이날 재상 쥘 마자랭이 죽었다. 스물두 살의 루이 14세는 새 재상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선언은 곧 재정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자랭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던 장바티스트 콜베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재무총감의 회계를 왕에게 넘기는 통로가 됐고, 연구자들은 왕과 콜베르가 푸케 제거를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을 &lt;b&gt;그해 5~6월&lt;/b&gt;로 잡는다. 낭트에서 붙잡는다는 계획 자체가 6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적는 자료도 있다. 연회는 8월 17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준비의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관할이었다. 푸케는 재무총감인 동시에 &lt;b&gt;파리 고등법원 검찰총장(procureur g&amp;eacute;n&amp;eacute;ral)&lt;/b&gt; 이었다. 이 관직을 가진 사람은 원칙적으로 파리 고등법원에서만 재판받는다. 그리고 그 법원에 푸케의 영향력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관직이 있는 한, 어떤 혐의를 모아도 그를 재판할 마땅한 법정이 없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 관직이 1661년 8월 중순에 팔렸다.&lt;/b&gt; 매각일을 8월 11일로 적는 자료와 12일로 적는 자료가 갈린다. 산 사람은 아실 드 아를레였고, 값은 140만 리브르로 전해지며 푸케는 그중 100만 리브르를 국고에 넣었다. 왕에 대한 충성의 표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느 날짜를 택하든 결과는 같다. &lt;b&gt;연회 엿새 전에 그의 방패는 이미 없었다.&lt;/b&gt; 후대의 사료 정리는 이 매각을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유도된 것으로 본다 &amp;mdash; 왕과 콜베르 쪽이 여러 경로로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시기에 혐의의 다른 축도 쌓이고 있었다. 푸케는 1658년 브르타뉴 앞바다의 벨일섬을 140만 리브르에 사서 요새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왕에게 올라간 밀정 보고는 그곳에 병력 200명과 대포 400문, 군함 서너 척, 그리고 6,000명분의 탄약이 있다고 적었다. 수치의 층위가 정보 보고인 만큼 그대로 실제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왕이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는 분명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까지가 연회 이전의 상태다. 정리하면 이렇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1661년&lt;/th&gt;
&lt;th&gt;일어난 일&lt;/th&gt;
&lt;th&gt;성격&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3월 9일&lt;/td&gt;
&lt;td&gt;마자랭 사망, 왕이 친정 선언&lt;/td&gt;
&lt;td&gt;조건 변화&lt;/td&gt;
&lt;/tr&gt;
&lt;tr&gt;
&lt;td&gt;5~6월&lt;/td&gt;
&lt;td&gt;왕과 콜베르가 제거 준비 착수&lt;/td&gt;
&lt;td&gt;결정&lt;/td&gt;
&lt;/tr&gt;
&lt;tr&gt;
&lt;td&gt;6월 중순&lt;/td&gt;
&lt;td&gt;낭트에서 체포한다는 계획&lt;/td&gt;
&lt;td&gt;실행 설계&lt;/td&gt;
&lt;/tr&gt;
&lt;tr&gt;
&lt;td&gt;8월 11~12일&lt;/td&gt;
&lt;td&gt;검찰총장직 매각 &amp;rarr; 면책 소멸&lt;/td&gt;
&lt;td&gt;법적 정지 작업&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8월 17일&lt;/b&gt;&lt;/td&gt;
&lt;td&gt;&lt;b&gt;보르비콩트 연회&lt;/b&gt;&lt;/td&gt;
&lt;td&gt;&amp;mdash;&lt;/td&gt;
&lt;/tr&gt;
&lt;tr&gt;
&lt;td&gt;9월 5일&lt;/td&gt;
&lt;td&gt;낭트에서 체포&lt;/td&gt;
&lt;td&gt;실행&lt;/td&gt;
&lt;/tr&gt;
&lt;tr&gt;
&lt;td&gt;9월 12일&lt;/td&gt;
&lt;td&gt;재무총감직 폐지&lt;/td&gt;
&lt;td&gt;제도 대체&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표에서 연회가 놓인 자리를 보면 통설의 구조가 어디서 어긋나는지 바로 보인다. 원인이라면 맨 위에 있어야 할 항목이 중간에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낭트에서-실행된-절차&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낭트에서 실행된 절차&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체포 장소로 낭트가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해 9월 브르타뉴 삼부회가 낭트에서 열렸고, 왕과 궁정 전체가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일정상 자연스러웠다. 동시에 낭트는 푸케의 힘이 가장 두터운 지역이기도 했다 &amp;mdash; 벨일이 그 앞바다에 있었다. 그를 그 지역에서 떼어 놓으려면 그 지역에서 붙잡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왕은 사전 준비를 감췄다. 자료가 전하는 바로는, 루이 14세는 달타냥을 부르면서 총사대에 관심이 있는 척 다른 구실을 붙여 밀실로 들이고 거기서 임무를 알린 뒤 비밀 엄수를 명했다. 궁정에 푸케의 정보원이 있다는 전제 아래 움직인 것이다. 모후 안 도트리슈를 설득하는 일도 남아 있었다. 그는 발드그라스 수도원 공사비를 푸케에게서 받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9월 5일 아침의 순서도 남아 있다. 어전회의가 11시 무렵 끝난 뒤 왕은 푸케를 잠시 붙들어 두고 바깥의 준비 상태를 확인한 다음 내보냈다. 달타냥 쪽은 최종 확인을 기다리느라 잠시 지체했고, 그사이 푸케의 마차가 먼저 떠나 대성당 앞 생피에르 광장에서 따라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가 그 자리에서 한 말은 여러 자료가 비슷하게 전한다. &lt;b&gt;&quot;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 왕국에서 누구보다 왕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 왕은 모후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quot;마침내 오늘 아침, 재무총감이 여느 때처럼 나와 일하러 왔기에&amp;hellip;&quot; 체포를 직접 설계하고 그 결과를 그날 안에 보고한 사람의 문장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는 앙제의 성으로 옮겨졌고, 이후 여러 성을 거쳐 1663년 바스티유에 들어간다. 같은 시기에 그의 서류들이 압수됐다. 파리 근교 생망데 저택에서는 &lt;b&gt;거울 뒤에 숨겨져 있던 문서 한 벌&lt;/b&gt;이 나왔다. 1657년에 쓰고 1659년에 고친 것으로, 자신이 체포될 경우 어느 귀족과 어느 요새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적어 둔 계획이었다. 푸케는 재판에서 그것을 한때의 어리석음이라고 했지만, 이 문서 때문에 그의 혐의는 회계 문제에서 국가에 대한 죄로 옮겨 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이 사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날짜가 온다. &lt;b&gt;체포 이레 뒤인 9월 12일, 재무총감이라는 자리 자체가 폐지됐다.&lt;/b&gt; 1561년부터 이어져 온 관직이 그날로 없어지고 왕립재정평의회가 그 일을 맡았으며, 그 실무를 콜베르가 총괄했다. 그는 1665년 재무총괄관이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주일 만에 제도 하나를 설계해 갈아 끼울 수는 없다. 이 날짜가 알려 주는 것은 단순하다 &amp;mdash; 왕은 한 사람을 치우려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를 없애려던 것이었고, 그 계획은 8월 17일 저녁에 시작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3년을-끈-재판-그리고-값을-치른-판사&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3년을 끈 재판, 그리고 값을 치른 판사&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6/Le_Chancelier_S%C3%A9guier_-_Charles_Le_Brun_-_Mus%C3%A9e_du_Louvre_Peintures_RF_1942_3.jpg/960px-Le_Chancelier_S%C3%A9guier_-_Charles_Le_Brun_-_Mus%C3%A9e_du_Louvre_Peintures_RF_1942_3.jpg&quot; alt=&quot;샤를 르 브룅이 그린 대법관 피에르 세기에&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샤를 르 브룅이 그린 대법관 피에르 세기에. 특별재판소를 이끈 사람이자,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오랜 후원자였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61년 11월, 왕은 특별재판소(Chambre de justice)를 세운다. 명목은 1635년 이후의 재정 비리 전반을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재판장은 대법관 피에르 세기에가 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법정이 겨눈 것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기구가 재정 청부업자(트레탕)들에게 매길 세액을 함께 산정했고, 도르메송의 일지에도 &quot;푸케 시절 재정에 종사한 자들에 대한 과세 명세&quot;가 함께 묶여 있다. 연구자들은 이 재판을 재정가 전반에 보내는 신호로도 읽는다 &amp;mdash; 앞으로 왕의 돈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통보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법정의 성격은 이름에 다 들어 있다. 파리 고등법원이 아니라 이 사건을 위해 새로 만든 기구였고, 재판관과 검사와 재판장을 고르는 일이 피고의 몰락을 원하는 쪽 손에 있었다. 푸케는 세기에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다. 심리는 1662년 3월 3일에 열려 이튿날 신문이 시작됐고, 그해 10월 18일부터는 서면으로만 진행됐다. 프랑스 법무부는 이 절차를 두고 &lt;b&gt;&quot;벙어리를 재판하듯&quot;&lt;/b&gt; 진행됐다고 적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혐의는 둘이었다. 공금 횡령과 국가에 대한 죄. 뒤쪽은 벨일 요새화와 생망데 계획서에서 나왔다. 둘 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 쪽은 열 권이 넘는 변론서를 냈다. 회계 항목을 하나씩 반박하는 동시에, 당시 재정 관행 자체를 문제 삼았다. 이 대목은 오늘날 연구자들이 여전히 다투는 지점이기도 하다. 재판에서 제시된 수령액 수치들은 크게 보이지만, 당시 재무총감은 국왕의 이름으로 빌리고 자기 재산을 담보로 넣고 자기 돈을 왕에게 빌려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amp;mdash; 체포 시점에 푸케는 왕실을 대신해 800만 리브르, 개인 명의로 400만 리브르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계산이 있다. 국가의 회계와 개인의 회계가 분리되지 않은 제도에서 무엇을 횡령이라고 부를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뱅상 J. 피츠의 2015년 연구(존스홉킨스대 출판부)와 시몬 베르티에르의 2013년 저작 이후에도 결론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재판 중 가장 널리 인용되는 장면은 세기에와의 응수다. 세기에가 국가에 대한 죄를 거론하자, 푸케는 그 죄가 무엇인지를 되짚었다 &amp;mdash; 요직에 있으면서 군주의 비밀을 쥔 사람이 갑자기 그 적의 평의회 우두머리가 되고, 자기가 지키는 도시의 문을 적군에게 열어 주고 진짜 주군에게는 닫는 일이라고. 프롱드 시기 세기에 본인의 행적을 그대로 가리킨 말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64년 11월 14일, 서면 절차가 끝나고 푸케가 병기창에 마련된 법정에 나왔다. 피고가 앉는 낮은 의자(셀레트)에 대해 그는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관할을 다투었고, 결국 앉되 그것이 특권의 포기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재판의 눈금&lt;/th&gt;
&lt;th&gt;날짜&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특별재판소 설치&lt;/td&gt;
&lt;td&gt;1661년 11월&lt;/td&gt;
&lt;/tr&gt;
&lt;tr&gt;
&lt;td&gt;심리 개시 &amp;middot; 신문 시작&lt;/td&gt;
&lt;td&gt;1662년 3월 3일 &amp;middot; 4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서면 절차 전환&lt;/td&gt;
&lt;td&gt;1662년 10월 18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피고 법정 출석(셀레트)&lt;/td&gt;
&lt;td&gt;1664년 11월 14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표결&lt;/td&gt;
&lt;td&gt;1664년 12월 20일&lt;/td&gt;
&lt;/tr&gt;
&lt;tr&gt;
&lt;td&gt;표 분포&lt;/td&gt;
&lt;td&gt;추방 13 &amp;middot; 사형 9 (재판관 22명)&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표결 결과는 왕이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사형은 소수였고, 다수는 추방과 재산 몰수였다. 선고일을 12월 20일로 적는 자료가 가장 많지만 21일이나 22일로 적는 자료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왕이 판결을 고친다. 루이 14세는 추방을 종신형으로 바꿨다. 국왕의 사면권이 형을 덜어 주는 데 쓰이던 관례를 정확히 반대로 쓴 것이고, 프랑스 법제사에서 이 조치가 예외로 남은 이유도 그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이 재판에는 값을 치른 사람이 있다. 보고관 올리비에 르페브르 도르메송은 추방에 표를 던졌다. 그가 왕의 사람들에게 &quot;법원은 판결을 내리지 봉사를 하지 않는다&quot;고 답했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이는 후대에 붙은 일화 층위다. 확인되는 것은 그 뒤의 처분이다 &amp;mdash; 그는 1664년 피카르디 지사직을 잃었고, 약속돼 있던 아버지의 국참사관직 승계도 받지 못했다. 그 자리는 사형에 표를 던진 퐁세에게 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록을 남긴 것도 그였다. 1661년부터 1665년까지 특별재판소에서 벌어진 일을 적은 그의 『일지』는 이 재판의 1차 사료로 남아 있다. 판정 권한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36&quot;&gt;아무도 권한을 준 적이 없다&lt;/a&gt;에서 다른 소재로 다룬 적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문서의-빈칸에서-자란-이야기&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서의 빈칸에서 자란 이야기&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b/L%27HOMME_AU_MASQUE_DE_FER%2C_G.27780.jpg/960px-L%27HOMME_AU_MASQUE_DE_FER%2C_G.27780.jpg&quot; alt=&quot;18세기에 나온 채색 판화 「철가면의 사나이」&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세기에 나온 채색 판화 「철가면의 사나이」. 판화 아래 설명문은 그 죄수가 루이 14세의 서자 베르망두아 백작이라고 적고 있다 &amp;mdash; 여러 설 가운데 하나다. 파리 미술관연합 카르나발레 미술관 소장, CC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는 알프스 기슭 피네롤로 요새로 옮겨져 1680년 3월 23일 그곳에서 죽었다. 체포에서 죽음까지 19년이다. 그리고 이 19년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 하나와 겹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서로 확인되는 사실만 먼저 정리하면 이렇다. 1669년 7월 28일 '외스타슈 도제'라는 이름으로 한 남자가 체포됐다. 그는 34년 동안 네 곳의 감옥에서 같은 간수 베니뉴 도베르뉴 드 생마르의 관리 아래 있었고, 1703년 11월 19일 바스티유에서 죽어 '마르시올리'라는 이름으로 묻혔다. &lt;b&gt;그리고 1675년부터 1680년까지 그는 피네롤로에서 푸케의 시중을 들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시중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를 알려 준다. 그가 귀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남아 있는 것은 1678년 11월 23일 루부아가 푸케에게 보낸 편지다. 도제가 피네롤로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국방을 맡은 대신이 수감자에게 다른 수감자의 입을 확인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서가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전부 빈칸이었고, 그 빈칸이 채워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볼테르가 1771년 『백과전서에 관한 질문』에서 그 죄수를 루이 14세의 사생 형이라고 적었다.&lt;/b&gt; 그는 그 죄수를 만난 적이 없다. 바스티유에 두 차례 갇혀 있는 동안 직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재료였다. 가면도 그의 손을 거치며 바뀌었다 &amp;mdash; 남아 있는 기록의 가면은 검은 벨벳이었고, 그것도 1687년 이후 이송할 때만 씌웠다. 쇠로 만든 가면은 볼테르의 문장에서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알렉상드르 뒤마가 1850년 『브라줄론 자작』에서 그를 왕의 쌍둥이 형제로 만들었다.&lt;/b&gt; 그 전인 1840년 『유명한 범죄들』에서 그는 이미 여러 설을 정리해 둔 상태였다. 위 판화가 적고 있는 '베르망두아 백작' 설도 그 무렵 돌던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 본인이 철가면이었다는 설도 있다. 1680년의 죽음이 위장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록이 곧바로 부정한다. 푸케의 죽음은 기록돼 있고, 도제는 그 뒤로 23년을 더 살았으며, 당대의 서신은 두 사람을 뚜렷이 구분해 부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이야기가-이긴-이유-그리고-남은-것&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야기가 이긴 이유, 그리고 남은 것&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a/Visite_de_Louis_XIV_%C3%A0_la_Manufacture_des_Gobelins%2C_le_15-10-1667_-_C_Le_Brun_%281%29.JPG/960px-Visite_de_Louis_XIV_%C3%A0_la_Manufacture_des_Gobelins%2C_le_15-10-1667_-_C_Le_Brun_%281%29.JPG&quot; alt=&quot;「1667년 10월 15일 루이 14세의 고블랭 제작소 방문」 태피스트리&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샤를 르 브룅의 밑그림으로 짠 「1667년 10월 15일 루이 14세의 고블랭 제작소 방문」. 이 제작소의 전신은 푸케가 보르비콩트를 꾸미려고 세운 맹시 공방이었다. 사진: Jean-Pol GRANDMONT, CC BY 4.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연회 탓'이라는 이야기는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세 세대에 걸쳐 굳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 세대는 동시대인이다. &lt;b&gt;장 드 라 퐁텐이 몰락 직후 「보의 님프들에게 바치는 애가」를 썼다.&lt;/b&gt; 왕에게 사면을 청하는 시였고, 그 안에서 보르비콩트는 잃어버린 낙원의 자리에 놓인다. 세비녜 부인은 재판 전 과정을 편지로 기록했다 &amp;mdash; 근대 초 사법 절차를 이만큼 자세히 적은 문학 기록이 드물어서, 이 편지들은 오늘날 사료로 읽힌다. 폴 펠리송은 옥중의 후원자를 위해 변론문을 써서 돌렸다. 이 세대가 남긴 것은 '억울한 후원자'라는 정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번째 세대가 볼테르다. 1751년의 한 문장이 그 정서에 시각을 붙였다. 저녁 여섯 시와 새벽 두 시, 그리고 그 사이의 여섯 시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 번째 세대가 뒤마다. 1850년의 소설이 그 문장을 장면으로 만들어 전 세계 독자에게 옮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이야기가 이긴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형태에 있다. &lt;b&gt;하나의 저녁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lt;/b&gt; 반대편에는 마자랭의 죽음, 회계 서류의 이관, 관직 매각, 관할의 이동, 특별재판소의 설계 같은 것들이 놓여 있는데, 여기에는 장면이 없다. 넉 달에 걸친 행정 절차는 그림이 되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은 것들을 따라가면 그 넉 달이 무엇을 겨눴는지가 오히려 선명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성의 물건들이 먼저 움직였다. 태피스트리 120점과 조각상, 그리고 정원의 오렌지나무들이 몰수되거나 매입돼 베르사유와 루브르로 옮겨졌다. &lt;b&gt;푸케가 성을 꾸미려고 1658년에 세운 맹시의 태피스트리 공방은 1662년에 통째로 파리 고블랭 지구로 옮겨졌고&lt;/b&gt;, 거기서 왕실 가구 제작소가 됐다. 그 책임자가 샤를 르 브룅이다. 보르비콩트를 만든 세 사람 &amp;mdash; 르 보, 르 브룅, 르 노트르 &amp;mdash; 이 그대로 왕의 일을 맡게 된 경위는 daily에서 짧게 다뤘지만, 실제로 옮겨 간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공방과 장비와 직공까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작 성 자체는 몰수되지 않았다. 1673년 채권자들이 우선채무 125만 리브르를 10년에 걸쳐 갚는 조건으로 푸케 부인에게 남겼고, 그는 그곳에 물러나 살았다. 남편과 아들이 죽은 뒤인 1705년, 성은 빌라르 원수에게 팔렸다. 그는 사기 전에 성을 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목록을 다시 보면 1661년 8월 17일 저녁이 어떤 날이었는지 달리 읽힌다. 그날 왕은 화가 나서 무언가를 결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해 둔 일이 무엇을 가져오게 될지를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lt;b&gt;연회는 원인이 아니라 목록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인물&amp;middot;사건 개요: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icolas_Fouquet&quot;&gt;Wikipedia &amp;mdash; Nicolas Fouqu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fr.wikipedia.org/wiki/Nicolas_Fouquet&quot;&gt;Wikip&amp;eacute;dia &amp;mdash; Nicolas Fouqu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Nicolas-Fouquet&quot;&gt;Britannica &amp;mdash; Nicolas Fouquet&lt;/a&gt;&lt;br /&gt;- 재판: &lt;a href=&quot;https://www.justice.gouv.fr/actualites/actualite/proces-nicolas-fouquet&quot;&gt;Minist&amp;egrave;re de la justice &amp;mdash; Le proc&amp;egrave;s de Nicolas Fouqu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ssentiels.bnf.fr/fr/extrait/fa815bbe-5046-471d-86b3-19b607e5dd31-sur-proces-nicolas-fouquet&quot;&gt;BnF Essentiels &amp;mdash; Sur le proc&amp;egrave;s de Nicolas Fouqu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vexilla-galliae.fr/civilisation/histoire/le-proces-de-fouquet-inique-ou-juste-partie-1-un-proces-motive-par-un-abus-de-pouvoir/&quot;&gt;Vexilla Galliae &amp;mdash; Le proc&amp;egrave;s de Fouquet : inique ou juste ?&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h.net/book_reviews/embezzlement-and-high-treason-in-louis-xivs-france-the-trial-of-nicolas-fouquet/&quot;&gt;EH.net 서평 &amp;mdash; Vincent J. Pitts, &lt;i&gt;Embezzlement and High Treason in Louis XIV's France&lt;/i&gt; (Johns Hopkins UP, 2015)&lt;/a&gt;&lt;br /&gt;- 체포: &lt;a href=&quot;https://www.herodote.net/5_septembre_1661-evenement-16610905.php&quot;&gt;Herodote.net &amp;mdash; 5 septembre 1661&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ire-pour-tous.fr/histoire-de-france/4004-larrestation-de-fouquet--5-septembre-1661.html&quot;&gt;Histoire pour tous &amp;mdash; L'arrestation de Fouquet&lt;/a&gt;&lt;br /&gt;- 관직&amp;middot;제도: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Superintendent_of_Finances&quot;&gt;Wikipedia &amp;mdash; Superintendent of Finance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ontroller-General_of_Finances&quot;&gt;Wikipedia &amp;mdash; Controller-General of Finances&lt;/a&gt;&lt;br /&gt;- 철가면: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an_in_the_Iron_Mask&quot;&gt;Wikipedia &amp;mdash; Man in the Iron Mask&lt;/a&gt;&lt;br /&gt;- 보르비콩트&amp;middot;고블랭: &lt;a href=&quot;https://vaux-le-vicomte.com/en/decouvrir/the-history/nicolas-fouquet/&quot;&gt;Ch&amp;acirc;teau de Vaux-le-Vicomt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Vaux-le-Vicomte&quot;&gt;Wikipedia &amp;mdash; Vaux-le-Vicomt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metmuseum.org/essays/european-tapestry-production-and-patronage-1600-1800&quot;&gt;The Met &amp;mdash; European Tapestry Production and Patronage, 1600&amp;ndash;1800&lt;/a&gt;&lt;br /&gt;- 도르메송: &lt;a href=&quot;https://fr.wikipedia.org/wiki/Olivier_Lef%C3%A8vre_d'Ormesson&quot;&gt;Wikip&amp;eacute;dia &amp;mdash; Olivier Lef&amp;egrave;vre d'Ormesson&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특집, 니콜라푸케, 루이14세, 보르비콩트, 콜베르, 철가면, 프랑스사, 통설의형성&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특집</category>
      <category>니콜라푸케</category>
      <category>루이14세</category>
      <category>보르비콩트</category>
      <category>오늘의특집</category>
      <category>철가면</category>
      <category>콜베르</category>
      <category>통설의형성</category>
      <category>프랑스사</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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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5 Sep 2026 07:41: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9월 5일 오늘의 역사: 연료 3.4초를 남기고 떠난 탐사선, 이틀 동안 아무도 듣지 않은 폭로</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3</link>
      <description>&lt;h2 id=&quot;9월-5일-오늘의-역사-연료-34초를-남기고-떠난-탐사선-이틀-동안-아무도-듣지-않은-폭로&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9월 5일 오늘의 역사: 연료 3.4초를 남기고 떠난 탐사선, 이틀 동안 아무도 듣지 않은 폭로&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77년 9월 5일 발사된 로켓은 연료를 3.4초분 남기고 멎었다. 같은 날 오타와에서는 서류 109장을 셔츠에 숨겨 나온 남자가 이틀 동안 문전박대를 당했다. 악대가 없어 출발하지 못한 행진과 차르가 수염에 매긴 세금까지, 9월 5일의 다섯 장면이다.&lt;/p&gt;
&lt;h2 id=&quot;①-1977--연료-34초를-남기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① 1977 &amp;mdash; 연료 3.4초를 남기고&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1095&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rBaLQ/dJMcaa7Oac8/itVmzokLW9zdBGMJbS4XC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rBaLQ/dJMcaa7Oac8/itVmzokLW9zdBGMJbS4XC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rBaLQ/dJMcaa7Oac8/itVmzokLW9zdBGMJbS4XC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BaLQ%2FdJMcaa7Oac8%2FitVmzokLW9zdBGMJbS4XC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1095&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1095&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77년 9월 5일 오전 8시 56분, 41번 발사대를 떠나는 보이저 1호. NASA 사진 KSC-77P-232.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77년 9월 5일 오전 8시 56분(미 동부 시간), 케이프커내버럴 41번 발사대에서 타이탄 IIIE-센타우르 로켓이 올라갔다. 실린 것은 보이저 1호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올라가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lt;/b&gt; 타이탄의 2단 엔진이 예정보다 약 2초 일찍 멎은 것이다. 추진 제어계통의 밸브 피드백 이상이 원인으로 지목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부족분은 위쪽에 얹힌 센타우르 상단이 메워야 했다. 센타우르의 탑재 컴퓨터가 속도 부족을 감지하고 계획보다 훨씬 긴 연소를 명령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 보충 연소에 약 1,200파운드(540kg)의 추진제가 추가로 들어갔다.&lt;/b&gt; 원래대로였다면 쓰지 않았을 양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연소가 끝났을 때 센타우르에 남아 있던 추진제는 &lt;b&gt;3.4초분&lt;/b&gt;이었다. 자료에 따라 &quot;4초 미만&quot;으로 적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여유라고 부르기 어려운 숫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날 발사는 &lt;b&gt;타이탄 IIIE-센타우르의 마지막 비행&lt;/b&gt;이기도 했다. 이 조합은 통산 일곱 번 날았고, 마지막 한 번을 가장 아슬아슬하게 끝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보이저 1호는 16일 먼저 떠난 2호를 그해 &lt;b&gt;12월 15일 소행성대에서 추월했다.&lt;/b&gt; 이름과 발사 순서가 어긋난 사정, 두 탐사선의 궤도가 달랐던 이유는 2호 발사일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amp;mdash;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21&quot;&gt;형보다 먼저 떠난 동생&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9년이 지난 지금, 이 탐사선은 또 하나의 눈금을 앞두고 있다. NASA는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lt;b&gt;1광일&lt;/b&gt;, 곧 빛이 하루 동안 가는 거리에 도달하는 시각을 초 단위로 계산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2026년 11월 18일 오전 2시 16분 7초(태평양 시간), 거리 160억 9,479만 9,096마일.&lt;/b&gt; 약 259억 km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지점을 지나면 지상에서 보낸 명령이 탐사선에 닿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월요일 아침에 보낸 신호의 답을 수요일 아침에 받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만든 물건이 이 거리에 닿는 것은 처음이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②-1945--이틀-동안-아무도-듣지-않았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② 1945 &amp;mdash; 이틀 동안 아무도 듣지 않았다&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a/Igor_Gouzenko_1946.jpg/960px-Igor_Gouzenko_1946.jpg&quot; alt=&quot;1946년의 이고르 구젠코&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46년의 이고르 구젠코. 캐나다 도서관&amp;middot;문서보관소 소장 사진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45년 9월 5일 저녁, 오타와의 소련 대사관에서 스물여섯 살의 직원 한 명이 퇴근했다. 암호 담당 서기 &lt;b&gt;이고르 구젠코(Igor Gouzenko)&lt;/b&gt;, 소련 군정보기관 GRU의 중위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는 서류 109장을 몸에 지니고 나왔다.&lt;/b&gt; 암호책과 해독 자료, 그리고 캐나다&amp;middot;영국&amp;middot;미국에 퍼져 있던 소련 첩보망의 명단이 거기 들어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도쿄만에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이 열린 지 사흘 뒤였다. 전쟁은 막 끝나 있었고, 소련은 여전히 연합국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문제는 그 서류를 받아 줄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lt;/b&gt; 구젠코는 먼저 신문사 오타와 저널로 갔다. 야간 편집자는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음은 법무부였다. 응대할 사람이 없었고, 법무장관 면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lt;b&gt;꼬박 이틀 동안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기관이 하나도 없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9월 6일 저녁, 그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서머싯가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한 이웃이 오타와 시경에 신고했고, 다른 이웃이 세 사람을 자기 집에 재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날 밤 소련 대사관 직원들이 구젠코의 아파트에 들어갔다.&lt;/b&gt; 서류를 찾으러 온 것이었고, 출동한 경찰이 그 자리에서 이들을 붙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침입이 결정적이었다. 구젠코의 말을 반신반의하던 캐나다 기마경찰이 그때부터 그와 가족을 보호 조치에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수사는 이듬해에 공개됐다. &lt;b&gt;1946년 2월 5일 대법관 로버트 타슈로와 로이 켈록이 이끄는 왕립조사위원회가 설치됐고&lt;/b&gt;, 2월 15일 13명이 체포됐다. 3월에 추가 체포가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종적으로 &lt;b&gt;21명이 체포돼 11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lt;/b&gt; 그중에는 현직 하원의원 프레드 로즈(Fred Rose)가 있었다. 그는 6년을 선고받고 4년 반을 복역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영국 쪽에서도 한 명이 걸렸다. 핵물리학자 &lt;b&gt;앨런 넌 메이(Alan Nunn May)&lt;/b&gt;는 1946년 5월 1일 중노동 10년을 선고받고 6년 반을 살았다. 문서가 가리킨 표적 중 하나가 원자탄 정보였다는 뜻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구젠코 본인은 '조지 브라운'이라는 새 이름을 받아 온타리오에서 여덟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lt;b&gt;공개 석상에 나설 때는 얼굴을 가리는 두건을 썼다.&lt;/b&gt; 1966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는 1982년 6월 25일 미시소가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무덤에 이름이 새겨진 것은 20년 뒤인 2002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후 질서가 아직 이름을 갖기 전이었다. &lt;b&gt;동맹국끼리 서로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문서 증거가 처음 공개된 사건이라, 많은 역사서가 냉전의 출발점을 이날에 둔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③-1882--악대가-없어-시작하지-못한-행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③ 1882 &amp;mdash; 악대가 없어 시작하지 못한 행진&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5/First_United_States_Labor_Day_Parade%2C_September_5%2C_1882_in_New_York_City.jpg/960px-First_United_States_Labor_Day_Parade%2C_September_5%2C_1882_in_New_York_City.jpg&quot; alt=&quot;1882년 9월 5일 뉴욕의 첫 노동절 행진을 그린 삽화&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82년 9월 5일 뉴욕의 첫 노동절 행진. 프랭크 레슬리스 일러스트레이티드 뉴스페이퍼 삽화.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82년 9월 5일 아침, 뉴욕 시청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중앙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이 부른 행진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모인 사람은 있는데 악대가 없었다.&lt;/b&gt; 음악 없이 맨 앞에 서려는 조합이 없어 대열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때 뉴저지에서 온 무리가 상황을 풀었다. &lt;b&gt;뉴어크 보석세공노조 2지부 조합원 200명이 악대를 데리고 도착한 것이다.&lt;/b&gt; 그들이 길버트와 설리번의 오페라 「페이션스」에 나오는 곡을 연주하며 앞장서자 대열이 그 뒤로 붙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행진은 그렇게 시작됐다. 흰 앞치마를 두른 벽돌공, '빅 식스'라 불리던 식자공 700명, 시가 제조공과 제화공, 피아노 제작공이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현수막의 문구는 직설적이었다. &lt;b&gt;&quot;돈의 독점은 안 된다&quot;, &quot;노동이 이 공화국을 세웠으니 노동이 다스릴 것이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참가자 수는 신문마다 달라 1만에서 2만 명 사이로 전해진다. 정확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날이 유급 휴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lt;b&gt;행진에 나온 사람들은 하루치 일당을 포기하고 나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대열은 유니언스퀘어를 돌아 지금의 브라이언트파크 쪽으로 향했고, 이후 콜럼버스가 92번가에서 피크닉이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신문의 평가는 갈렸다. 트리뷴은 이 행진을 선동가들의 정치놀음으로 보고 &lt;b&gt;&quot;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이토록 값싸게 취급받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딱한 일&quot;&lt;/b&gt;이라고 적었다. 타임스는 대열이 질서정연했다며 &lt;b&gt;&quot;대다수가 시가를 피웠다&quot;&lt;/b&gt;고 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작 이날을 국가의 달력에 올린 것은 12년 뒤의 일이다. &lt;b&gt;1894년 6월 28일,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9월 첫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하는 법에 서명했다.&lt;/b&gt; 철도 파업이 한창 진압되던 시기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가 '9월 첫 월요일'로 고정되면서, 노동절은 그 뒤로 9월 5일에 오지 않는 해가 훨씬 많아졌다. 시작한 날짜를 기념일에서 지운 셈이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④-1698--수염에-값을-매기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④ 1698 &amp;mdash; 수염에 값을 매기다&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9/Beard_tax_token_badge.jpg/960px-Beard_tax_token_badge.jpg&quot; alt=&quot;표트르 1세 시대의 수염 표 토큰&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수염세를 냈다는 증표로 발급된 '수염 표'. 사진: Ijon, CC BY-SA 4.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98년 8월, 러시아의 차르 &lt;b&gt;표트르 1세(Peter I)&lt;/b&gt;가 1년 반에 걸친 서유럽 순방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신분을 감춘 채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일까지 해 본 여정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귀국을 환영하러 모인 귀족들 앞에서 그는 예상 밖의 행동을 했다. &lt;b&gt;면도칼을 꺼내 들고 손수 그들의 수염을 깎기 시작한 것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교회는 수염을 미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남자의 수염은 신이 준 모습이라는 것이 오랜 통념이었으므로, 이 조치는 옷차림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해 9월 5일, 차르는 수염을 기르려는 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명령을 내렸다.&lt;/b&gt; 당시 러시아가 쓰던 율리우스력 날짜다. 금지가 아니라 과세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기르고 싶으면 값을 치르라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705년에 정비된 세율은 신분에 따라 갈렸다. &lt;b&gt;궁정&amp;middot;군&amp;middot;관청에 속한 사람은 연 60루블, 부유한 상인은 100루블, 그 밖의 상인과 도시민은 60루블, 모스크바 주민은 30루블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농민에게는 다른 방식이 적용됐다. 시골에서는 얼마든지 길러도 되지만, &lt;b&gt;도시의 성문을 드나들 때마다 2데니가(반코페이카 두 닢)를 냈다.&lt;/b&gt; 성직자는 면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돈을 낸 사람에게는 &lt;b&gt;'수염 표'(бородовой знак)&lt;/b&gt;라 불리는 금속 토큰이 발급됐다. 1705년판 앞면에는 &quot;돈을 받았음&quot;이라고 찍혔고, 뒷면에는 연도가 들어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724년부터 나온 마름모꼴 토큰에는 앞면에 &quot;수염세를 받았음&quot;, 테두리에 한 문장이 더 새겨졌다. &lt;b&gt;&quot;수염은 쓸데없는 짐이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표를 지니지 않은 채 수염을 기르고 있으면 &lt;b&gt;경찰이 그 자리에서 강제로 깎을 권한이 있었다.&lt;/b&gt; 토큰은 벌금 딱지가 아니라 신분증에 가까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재정 정책으로 보면 성적은 초라했다. &lt;b&gt;1705년부터 1708년까지 이 세금으로 들어온 돈은 연평균 3,588루블에 그쳤다.&lt;/b&gt; 국가 재정에서 의미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금의 목적이 애초에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lt;b&gt;표트르가 원한 것은 세수가 아니라 거리에서 보이는 얼굴이 바뀌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는 효과가 있었다.&lt;/b&gt; 특정 행동에 값을 매겨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은 뒷날 여러 나라의 조세 설계에 되풀이해 등장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수염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74년 뒤다. &lt;b&gt;1772년 예카테리나 2세가 이 세금을 폐지했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⑤-1661--왕의-생일에-체포된-재무총감&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⑤ 1661 &amp;mdash; 왕의 생일에 체포된 재무총감&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f/Portrait_Nicolas_Fouquet_par_Charles_Le_Brun_%28cropped%29.jpg/960px-Portrait_Nicolas_Fouquet_par_Charles_Le_Brun_%28cropped%29.jpg&quot; alt=&quot;샤를 르 브룅이 그린 니콜라 푸케의 초상&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샤를 르 브룅이 그린 니콜라 푸케의 초상. 이 화가는 푸케가 몰락한 뒤 왕의 화가가 된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프랑스의 재무총감 &lt;b&gt;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lt;/b&gt;의 문장에는 다람쥐가 그려져 있었다. 지방 방언에서 그의 성이 다람쥐를 뜻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장 아래에는 라틴어 좌우명이 붙었다. &lt;b&gt;&quot;Quo non ascendet?&quot; &amp;mdash; 그가 오르지 못할 곳이 어디인가.&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61년 8월 17일, 그는 자신이 지은 보르비콩트 성에 스물두 살의 루이 14세와 궁정을 초대했다. 금과 은으로 된 식기, 분수와 불꽃놀이, 발레가 준비됐고 &lt;b&gt;몰리에르(Moli&amp;egrave;re)의 「레 파쉬외」가 이날 처음 무대에 올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연회가 왕의 질투를 사서 푸케가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진다. &lt;b&gt;다만 기록은 다른 순서를 가리킨다.&lt;/b&gt; 루이 14세와 콜베르가 그를 제거하기로 준비를 시작한 것은 연회보다 앞선 그해 5~6월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주 뒤인 &lt;b&gt;9월 5일, 낭트에서 열린 어전회의가 끝났다.&lt;/b&gt; 회의장을 나서는 푸케를 총사대장 샤를 드 바츠 드 카스텔모르, 곧 &lt;b&gt;달타냥(d'Artagnan)&lt;/b&gt;이 붙잡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는 자신이 여전히 왕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날은 &lt;b&gt;루이 14세의 스물세 번째 생일&lt;/b&gt;이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재판은 3년을 끌었다. 푸케는 스스로를 변호했고, &lt;b&gt;1664년 12월 20일 재판관 22명 가운데 13명이 추방형, 9명이 사형에 표를 던졌다.&lt;/b&gt; 다수 의견은 추방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여기서 왕이 판결을 고쳤다.&lt;/b&gt; 루이 14세는 추방형을 종신형으로 바꿨다. 국왕의 사면권이 형을 가볍게 하는 데 쓰이던 관례를 뒤집어, 법정보다 무거운 형을 얹은 것이다. 추방하면 그가 국외에서 재정 기밀을 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푸케는 알프스 기슭 피네롤로 요새에 갇혀 1680년 3월 23일 그곳에서 숨졌다. 체포에서 죽음까지 19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남은 것은 성이었다. &lt;b&gt;보르비콩트를 만든 세 사람 &amp;mdash;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화가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 정원사 앙드레 르 노트르(Andr&amp;eacute; Le N&amp;ocirc;tre) &amp;mdash; 는 그대로 왕에게 넘어갔다.&lt;/b&gt; 이들이 다음에 맡은 일이 베르사유 궁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절 맨 위에 걸린 푸케의 초상을 그린 사람이 바로 르 브룅이다.&lt;br /&gt;&lt;br /&gt;&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h3 id=&quot;오늘의-단신&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오늘의 단신&lt;/h3&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1984&lt;/b&gt;: 스페이스셔틀 디스커버리가 첫 비행을 마치고 착륙한다 &amp;mdash; STS-41-D 임무였다. 이 비행은 발사 준비 단계에서 두 차례 중단됐고, 그중 6월 26일의 중단은 주엔진에 불이 붙은 뒤 발사대 위에서 정지시킨 셔틀 계획 최초의 사례였다&lt;/li&gt;
&lt;li&gt;&lt;b&gt;1981&lt;/b&gt;: 영국 그린햄 커먼에 여성 평화 캠프가 들어선다 &amp;mdash; '지구 생명을 위한 여성들'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36명이 8월 27일 카디프를 출발해 열흘을 걸어 도착했다. 미군 순항미사일 배치에 반대한 이 캠프는 2000년까지 이어졌다&lt;/li&gt;
&lt;li&gt;&lt;b&gt;1980&lt;/b&gt;: 스위스 고트하르트 도로터널이 개통한다 &amp;mdash; 괴셰넨과 아이롤로를 잇는 16.9km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도로터널이었다. 이 기록은 2000년 노르웨이 래르달 터널(24.5km)에 넘어갔다&lt;/li&gt;
&lt;li&gt;&lt;b&gt;1978&lt;/b&gt;: 캠프데이비드 회담이 시작된다 &amp;mdash;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가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협상에 들어갔다. 열사흘에 걸친 협상 끝에 9월 17일 합의문이 나왔다&lt;/li&gt;
&lt;li&gt;&lt;b&gt;1960&lt;/b&gt;: 열여덟 살의 캐시어스 클레이가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딴다 &amp;mdash; 그해 10월 프로로 전향했고, 4년 뒤 세계 챔피언이 되면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로 이름을 바꾼다&lt;/li&gt;
&lt;li&gt;&lt;b&gt;1960&lt;/b&gt;: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L&amp;eacute;opold S&amp;eacute;dar Senghor)가 세네갈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amp;mdash; 아프리카 문화의 자긍을 내세운 '네그리튀드' 운동을 이끈 시인이며, 1980년 임기 중 스스로 물러나 198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됐다&lt;/li&gt;
&lt;li&gt;&lt;b&gt;1905&lt;/b&gt;: 러일전쟁을 끝낸 포츠머스 조약이 조인된다 &amp;mdash; 미국 뉴햄프셔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중재로 타결됐고, 그는 이 공로로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조약에서 러시아는 일본이 한국에서 갖는 우월적 지위를 인정했다. 배상금 조항이 빠진 데 반발해 같은 날 도쿄 히비야공원에서는 대규모 항의 소요가 벌어졌다&lt;/li&gt;
&lt;li&gt;&lt;b&gt;1774&lt;/b&gt;: 제1차 대륙회의가 필라델피아 카펜터스홀에서 열린다 &amp;mdash; 조지아를 뺀 12개 식민지 대표가 모였다. 독립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직 아니었고, 영국 의회의 강압 법령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의제였다&lt;/li&gt;
&lt;li&gt;&lt;b&gt;1234&lt;/b&gt;: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교령집을 반포한다 &amp;mdash; 도미니코회 수사 라이몬두스 데 페냐포르트가 4년에 걸쳐 정리한 『리베르 엑스트라』다. 교황은 이 책을 볼로냐와 파리 대학에 보내 이것만 가르치도록 했고, 1917년 첫 교회법전이 나오기까지 683년 동안 효력을 유지했다&lt;/li&gt;
&lt;li&gt;&lt;b&gt;917&lt;/b&gt;: 유엔(劉龑)이 판위에서 황제를 칭한다 &amp;mdash; 지금의 광저우다. 처음 내건 국호는 '대월'이었으나 이듬해 '한'으로 바꿨고, 뒷날 이 나라를 남한이라 부르게 된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사건 데이터: &lt;a href=&quot;https://api.wikimedia.org/feed/v1/wikipedia/en/onthisday/events/09/05&quot;&gt;Wikimedia On This Day API&lt;/a&gt; &amp;middot;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lt;br /&gt;- 보이저 1호: &lt;a href=&quot;https://www.space.com/17466-voyager-1-spacecraft-solar-system-35th-anniversary.html&quot;&gt;Space.com &amp;mdash; Voyager 1 Probe's Trek to Interstellar Space Almost Never Wa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science.nasa.gov/mission/voyager/voyager-1/&quot;&gt;NASA Science &amp;mdash; Voyager 1&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heregister.com/2025/09/07/48_years_voyager_1/&quot;&gt;The Register &amp;mdash; 48 years ago, Voyager 1 left Earth&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arthsky.org/space/voyager-1-1-light-day-from-earth-november-17-18-2026/&quot;&gt;EarthSky &amp;mdash; Voyager 1 to reach 1 light-day from Earth&lt;/a&gt;&lt;br /&gt;- 구젠코 사건: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Igor_Gouzenko&quot;&gt;Wikipedia &amp;mdash; Igor Gouzenk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igor-sergeievich-gouzenko&quot;&gt;The Canadian Encyclopedia &amp;mdash; Igor Gouzenk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ricalsocietyottawa.ca/publications/ottawa-stories/personalities-from-the-very-famous-to-the-lesser-known/the-gouzenko-affair&quot;&gt;Historical Society of Ottawa &amp;mdash; The Gouzenko Affai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collectionscanada.gc.ca/obj/008001/f2/cold-e.pdf&quot;&gt;Library and Archives Canada &amp;mdash; The Gouzenko Affair and the Cold War&lt;/a&gt;&lt;br /&gt;- 첫 노동절: &lt;a href=&quot;https://www.boweryboyshistory.com/2022/09/historic-or-disappointing-how-new-york.html&quot;&gt;The Bowery Boys &amp;mdash; How New York newspapers covered the first Labor D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untappedcities.com/2023/09/04/labor-day-created-new-york-city/&quot;&gt;Untapped New York &amp;mdash; How Labor Day Was Created in New York Cit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ps.gov/places/union-square.htm&quot;&gt;NPS &amp;mdash; Union Squar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ry.com/articles/labor-day-pullman-railway-strike-origins&quot;&gt;HISTORY &amp;mdash; How a Deadly Railroad Strike Led to the Labor Day Holiday&lt;/a&gt;&lt;br /&gt;- 수염세: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Beard_tax&quot;&gt;Wikipedia &amp;mdash; Beard tax&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why-tsar-peter-great-established-beard-tax-180964693/&quot;&gt;Smithsonian Magazine &amp;mdash; Why Peter the Great Established a Beard Tax&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americanhistory.si.edu/explore/stories/no-shave-november-could-cost-you&quot;&gt;Smithsonian NMAH &amp;mdash; No Shave November could cost you&lt;/a&gt;&lt;br /&gt;- 푸케 체포: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icolas_Fouquet&quot;&gt;Wikipedia &amp;mdash; Nicolas Fouque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vaux-le-vicomte.com/en/decouvrir/the-history/nicolas-fouquet/&quot;&gt;Ch&amp;acirc;teau de Vaux-le-Vicomte &amp;mdash; Nicolas Fouquet&lt;/a&gt;&lt;br /&gt;- 단신 보강: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reenham_Common_Women%27s_Peace_Camp&quot;&gt;Wikipedia &amp;mdash; Greenham Common Women's Peace Camp&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heodorerooseveltcenter.org/encyclopedia/foreign-affairs/treaty-of-portsmouth/&quot;&gt;Theodore Roosevelt Center &amp;mdash; Treaty of Portsmouth&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ibiya_incendiary_incident&quot;&gt;Wikipedia &amp;mdash; Hibiya incendiary inciden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ecretals_of_Gregory_IX&quot;&gt;Wikipedia &amp;mdash; Decretals of Gregory IX&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Liu_Yan_(emperor)&quot;&gt;Wikipedia &amp;mdash; Liu Yan&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역사, 9월5일, 보이저1호, 구젠코사건, 노동절기원, 표트르대제수염세, 니콜라푸케, 냉전의시작&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역사</category>
      <category>9월5일</category>
      <category>구젠코사건</category>
      <category>냉전의시작</category>
      <category>노동절기원</category>
      <category>니콜라푸케</category>
      <category>보이저1호</category>
      <category>오늘의역사</category>
      <category>표트르대제수염세</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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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5 Sep 2026 07:30: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뜻이 생기면 이름을 잃는다: 상표가 너무 유명해졌을 때 벌어지는 일</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2</link>
      <description>&lt;h2 id=&quot;뜻이-생기면-이름을-잃는다-상표가-너무-유명해졌을-때-벌어지는-일&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뜻이 생기면 이름을 잃는다: 상표가 너무 유명해졌을 때 벌어지는 일&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88년 9월 4일, 뉴욕 로체스터의 조지 이스트먼이 특허 한 건과 상표 한 건을 같은 날 받았다. 상표 쪽에 적힌 단어는 어느 언어에도 없는 다섯 글자였다. 그는 좋은 상표의 조건을 넷으로 정리해 두었는데, 마지막 항목이 유독 이상했다. &lt;b&gt;아무 뜻도 없어야 한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51&quot;&gt;9월 4일 오늘의 역사&lt;/a&gt;에서는 그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까지를 다뤘다. 여기서부터가 그 뒤의 이야기다. 이스트먼의 네 번째 조건은 취향이 아니라 규칙이었고, 그 규칙은 이후 100년 넘게 법정에서 다뤄졌다. 그리고 그 100년이 알려 준 것은 조건의 앞면보다 뒷면이었다 &amp;mdash; 뜻이 없어야 강한 이름은, 뜻이 생기는 순간 사라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법이-정한-다섯-계단&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법이 정한 다섯 계단&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325&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K0WQV/dJMb9913fPZ/63PCr0jAELCtZ0p6h91eI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K0WQV/dJMb9913fPZ/63PCr0jAELCtZ0p6h91eI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K0WQV/dJMb9913fPZ/63PCr0jAELCtZ0p6h91eI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K0WQV%2FdJMb9913fPZ%2F63PCr0jAELCtZ0p6h91eI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25&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325&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89년 11월 자 코닥 광고. 이름은 사전에 없었지만 광고 문구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스트먼이 직관으로 잡은 것을 미국 법원이 문장으로 정리한 것은 88년 뒤다. &lt;b&gt;1976년,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이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대 헌팅 월드 사건에서 상표를 다섯 계단으로 나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건 자체는 소박했다. 애버크롬비가 의류에 등록해 둔 '사파리(Safari)'라는 상표를 헌팅 월드가 쓰자 소송이 붙었고, 법원은 그 말이 사파리용 옷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라며 애버크롬비 쪽 등록을 깎았다. 정작 오래 남은 것은 판결의 승패가 아니라 그 판단에 쓰인 자[尺]였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단계&lt;/th&gt;
&lt;th&gt;성격&lt;/th&gt;
&lt;th&gt;보호 정도&lt;/th&gt;
&lt;th&gt;예&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lt;b&gt;조어(fanciful)&lt;/b&gt;&lt;/td&gt;
&lt;td&gt;사전에 없는, 지어낸 단어&lt;/td&gt;
&lt;td&gt;가장 강함 &amp;mdash; 등록만으로 보호&lt;/td&gt;
&lt;td&gt;코닥, 엑슨, 제록스&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임의(arbitrary)&lt;/b&gt;&lt;/td&gt;
&lt;td&gt;있는 단어를 무관한 상품에 붙임&lt;/td&gt;
&lt;td&gt;강함&lt;/td&gt;
&lt;td&gt;컴퓨터에 붙인 '애플'&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암시(suggestive)&lt;/b&gt;&lt;/td&gt;
&lt;td&gt;상상을 한 번 거쳐야 상품에 닿음&lt;/td&gt;
&lt;td&gt;보호됨&lt;/td&gt;
&lt;td&gt;'블루레이', '에어버스'&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기술(descriptive)&lt;/b&gt;&lt;/td&gt;
&lt;td&gt;상품의 성질을 그대로 말함&lt;/td&gt;
&lt;td&gt;2차적 의미가 쌓여야 보호&lt;/td&gt;
&lt;td&gt;크래커에 붙인 '짭짤한'&lt;/td&gt;
&lt;/tr&gt;
&lt;tr&gt;
&lt;td&gt;&lt;b&gt;보통명칭(generic)&lt;/b&gt;&lt;/td&gt;
&lt;td&gt;상품 그 자체의 이름&lt;/td&gt;
&lt;td&gt;보호 불가&lt;/td&gt;
&lt;td&gt;소금에 붙인 '소금'&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규칙은 단순하다. 이름이 상품을 설명할수록 보호가 줄어든다.&lt;/b&gt; 상표의 일은 &quot;이게 무엇인가&quot;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quot;이걸 누가 만들었는가&quot;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을 설명하는 말은 경쟁자도 써야 하므로 한 회사가 가져갈 수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맨 윗칸의 교과서적 예시로 지금도 인용되는 단어가 코닥이다. 채택되기 전까지 아무 뜻도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의 전부다. 이스트먼의 네 번째 조건은 취향 문제가 아니라, 88년 뒤 성문화될 위계의 꼭대기를 정확히 겨눈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강도는 곧 시험대에 올랐다. &lt;b&gt;1898년 3월, 영국 법원이 '코닥'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를 팔던 회사를 상대로 이스트먼 쪽 손을 들어 줬다.&lt;/b&gt; 카메라와 자전거는 경쟁 상품이 아니어서 소비자가 혼동할 여지도 크지 않았지만, 법원은 그래도 그 이름을 못 쓰게 했다. 뒷날 '희석(dilution)' 법리의 초기 사례로 꼽히는 판결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도 같다. &lt;b&gt;자전거에 붙은 '코닥'을 설명할 다른 근거가 없었다.&lt;/b&gt; 뜻 없는 단어는 우연히 겹칠 수 없고, 겹쳤다면 가져온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이름이-이긴-기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이름이 이긴 기계&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a/Fig_1_Sketch_showing_Reno_continuous_Elevation_in_Operation.jpg/960px-Fig_1_Sketch_showing_Reno_continuous_Elevation_in_Operation.jpg&quot; alt=&quot;1892년 엔지니어링 뉴스에 실린 제시 레노의 경사 승강기 도해&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92년 『엔지니어링 뉴스』에 실린 제시 레노의 '경사 승강기' 도해. 기계는 먼저 나왔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계단이 저절로 올라가는 기계를 먼저 실용화한 사람은 제시 레노(Jesse Reno)다. 그는 그것을 '경사 승강기(inclined elevator)'라고 불렀다. 설명으로는 정확하지만, 위 표의 맨 아래 두 칸에 걸치는 이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쟁자 찰스 시버거(Charles Seeberger)는 다른 길을 갔다. &lt;b&gt;그는 라틴어 사전을 뒤져 계단을 뜻하는 'scala'에 접두어 E와 접미어 -tor를 붙여 없는 단어를 만들었다. 에스컬레이터(Escalator)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00년 5월 29일, 그 단어가 시버거 이름으로 미국 상표 제34,724호에 등록됐다.&lt;/b&gt; 같은 해 파리 만국박람회에 오티스와 함께 내놓은 장치는 1등상을 받았다. 상표는 뒤에 오티스 엘리베이터로 넘어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까지는 이스트먼의 규칙대로였다. 뜻 없는 조어, 이른 등록, 압도적인 시장 점유. 그런데 50년 뒤 그 등록은 취소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50년 12월, 호턴 엘리베이터가 낸 취소 심판에서 미국 특허청은 '에스컬레이터'가 더 이상 상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lt;/b&gt; 일반 대중에게 그 말은 움직이는 계단이라는 물건의 이름이지 그것을 만든 회사의 표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정적인 증거는 경쟁사도 대중도 아니었다. &lt;b&gt;오티스 자신이 낸 특허 서류와 자사 광고에서 그 단어를 일반명사처럼 써 왔다는 점이 근거로 지적됐다.&lt;/b&gt; 지켜야 할 이름을 지켜야 할 쪽이 먼저 풀어 준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이 대목의 결말은 두 겹이다. 레노의 기계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시버거의 이름은 기계를 이겼다가 결국 모두의 것이 됐다. &lt;b&gt;오늘날 백화점과 지하철에서 쓰이는 그 단어는 한때 한 사람의 재산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소비자에게-다른-이름을-주지-않으면&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소비자에게 다른 이름을 주지 않으면&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6/Bayer_Aspirin_and_store-brand_generic_on_Canadian_drugstore_shelf.jpg/960px-Bayer_Aspirin_and_store-brand_generic_on_Canadian_drugstore_shelf.jpg&quot; alt=&quot;캐나다 약국 진열대의 바이엘 아스피린과 자체 상표 아세틸살리실산&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캐나다 약국 진열대. 왼쪽 바이엘 제품에는 'Aspirin'이, 오른쪽 자체 상표 제품에는 성분명이 적혀 있다. 캐나다에서 이 단어는 여전히 상표다. 사진: Daniel Case,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많이 인용되는 보통명칭화 사례는 아스피린이다. 이 사건의 값은 결론이 아니라 판사가 던진 질문에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바이엘은 1899년 독일에서 'Aspirin'을 등록했다. 미국 사정은 전쟁이 바꿔 놓았다. &lt;b&gt;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적산관리인이 바이엘의 미국 자산을 압류했고, 공장과 특허와 상표가 함께 경매에 부쳐져 스털링 프로덕츠라는 회사로 넘어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뒤 유나이티드 드러그가 상표의 효력을 다퉜다. &lt;b&gt;1921년 4월 14일,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의 러니드 핸드(Learned Hand) 판사가 내놓은 답은 시장을 둘로 쪼개는 것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핸드는 사건의 쟁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lt;b&gt;&quot;다투는 그 단어를 구매자들은 무엇으로 이해하는가.&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구매자를 두 무리로 나눴다. 의사&amp;middot;약사 같은 거래계에는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대체어가 있었고, 그들에게 'Aspirin'은 여전히 바이엘 제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lt;b&gt;문제는 일반 소비자였다.&lt;/b&gt; 알약은 도매 약국이 자기 이름을 붙여 팔았고, &lt;b&gt;병에는 'Aspirin'과 제조 약사의 이름은 있어도 바이엘의 이름은 없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니 소비자가 아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그 약을 부를 다른 말이 없는 사람에게 그 말은 상표일 수가 없다. 법원은 일반 판매에 한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나오는 실무 규칙이 오늘날 모든 상표 안내서의 첫 줄이다. &lt;b&gt;상표는 상품의 이름이 아니라 상품 앞에 붙는 형용사여야 한다.&lt;/b&gt; '아스피린을 드세요'가 아니라 '바이엘 아스피린 진통제를 드세요'여야 하고, 소비자 손에 일반명사가 함께 쥐여져 있어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사건의 마지막 반전은 지도에 있다. &lt;b&gt;미국&amp;middot;영국&amp;middot;프랑스&amp;middot;러시아에서 이 단어는 보통명칭이 됐지만, 독일과 캐나다를 비롯한 수십 개국에서는 지금도 바이엘의 등록 상표다.&lt;/b&gt; 남아 있는 나라의 수는 자료에 따라 70여 개국에서 80개국 이상까지 갈린다. 같은 단어, 같은 회사, 같은 약인데 국경을 넘으면 법적 지위가 바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바이엘은 1994년 미국 내 상표권을 10억 달러를 치르고 되사 왔다. 그렇게 돌려받은 것은 회사 이름과 로고였고, 'Aspirin'이라는 단어 자체는 여전히 미국에서 누구나 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판결문이-표기법을-정할-때&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판결문이 표기법을 정할 때&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c/Thermos-Flaschen_1907.png/500px-Thermos-Flaschen_1907.png&quot; alt=&quot;1907년 독일에서 나온 서모스 보온병 광고&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07년 독일에서 나온 서모스 보온병 광고. 이 이름은 1963년 미국에서 상표 지위를 잃는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름을 잃은 목록은 생각보다 길고, 잃는 방식도 제각각이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이름&lt;/th&gt;
&lt;th&gt;만든 곳&amp;middot;시점&lt;/th&gt;
&lt;th&gt;잃은 해&lt;/th&gt;
&lt;th&gt;판단 기관&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아스피린(Aspirin)&lt;/td&gt;
&lt;td&gt;바이엘, 1899 등록&lt;/td&gt;
&lt;td&gt;1921&lt;/td&gt;
&lt;td&gt;미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lt;/td&gt;
&lt;/tr&gt;
&lt;tr&gt;
&lt;td&gt;셀로판(Cellophane)&lt;/td&gt;
&lt;td&gt;브란덴베르거, 1900년대 초&lt;/td&gt;
&lt;td&gt;1936&lt;/td&gt;
&lt;td&gt;미 제2연방항소법원&lt;/td&gt;
&lt;/tr&gt;
&lt;tr&gt;
&lt;td&gt;에스컬레이터(Escalator)&lt;/td&gt;
&lt;td&gt;시버거, 1900 등록&lt;/td&gt;
&lt;td&gt;1950&lt;/td&gt;
&lt;td&gt;미 특허청&lt;/td&gt;
&lt;/tr&gt;
&lt;tr&gt;
&lt;td&gt;서모스(Thermos)&lt;/td&gt;
&lt;td&gt;서모스사, 1900년대 초&lt;/td&gt;
&lt;td&gt;1963&lt;/td&gt;
&lt;td&gt;미 제2연방항소법원&lt;/td&gt;
&lt;/tr&gt;
&lt;tr&gt;
&lt;td&gt;요요(Yo-Yo)&lt;/td&gt;
&lt;td&gt;던컨, 1932 등록&lt;/td&gt;
&lt;td&gt;1965&lt;/td&gt;
&lt;td&gt;미 제7연방항소법원&lt;/td&gt;
&lt;/tr&gt;
&lt;tr&gt;
&lt;td&gt;초코파이&lt;/td&gt;
&lt;td&gt;오리온, 1976 등록&lt;/td&gt;
&lt;td&gt;2001&lt;/td&gt;
&lt;td&gt;한국 법원&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셀로판은 발명자가 셀룰로스와 투명함을 붙여 만든 조어였다.&lt;/b&gt; 출발점은 코닥과 같았다. 그런데 그 물건을 가리킬 다른 말이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고, 1936년 법원은 주문서에 '셀로판'을 적는 사람들이 특정 회사 제품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물건을 원한 것이라고 봤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요요는 반대 방향이다.&lt;/b&gt; 던컨이 1932년 미국에서 등록했지만, 1965년 법원은 그 말이 이미 필리핀에서 그 장난감을 부르던 이름이었고 미국에서도 오래 그렇게 쓰였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남의 언어에 있던 보통명사였다는 뜻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서모스는 오티스와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다.&lt;/b&gt; 판결이 지적한 기간은 1907년부터 1923년까지다. 그 16년 동안 회사는 대대적인 광고와 계몽 활동을 벌였는데, 그 내용이 '서모스 보온병'이라는 말을 그 물건의 이름으로 퍼뜨리는 것이었다. 당시 쓰이던 일반 명칭을 함께 붙여 주지 않은 채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목적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새 물건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름부터 알려야 했다. 그런데 &lt;b&gt;그 물건을 부를 다른 말을 남겨 두지 않은 홍보는, 성공하는 순간 상표를 지운다.&lt;/b&gt; 회사가 판매를 위해 한 일이 20년 뒤 상표를 잃는 근거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판결의 형태도 특이하다. &lt;b&gt;1963년 7월,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은 이름이 보통명칭이 됐다고 보면서도 경쟁사에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lt;/b&gt; 경쟁사는 그 단어를 반드시 소문자 t로 쓸 것, 반드시 자사명 소유격('Aladdin's')을 앞에 붙일 것, '오리지널'이나 '진짜'라는 말을 함께 쓰지 말 것.&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법원이 상품 표기법을 문장 단위로 정해 준 것이다.&lt;/b&gt; 이름은 공유하되 출처 혼동은 막는다는 절충이었고, 상표가 죽는 것이 전부 아니면 전무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 사례로 남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이 흐름을 한 번 되돌린 일이 있다. &lt;b&gt;1982년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이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보통명칭으로 판단해 등록을 무효로 했다.&lt;/b&gt; 근거는 설문이었다. 구매자에게 왜 샀는지 물었더니 65%가 &quot;그 게임을 하고 싶어서&quot;라고 답했고 제조사 때문이라는 응답은 32%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잣대에는 함정이 있다. &lt;b&gt;사람은 원래 물건이 필요해서 물건을 산다.&lt;/b&gt; 구매 동기를 물으면 웬만한 상표는 다 보통명칭이 되어 버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의회가 1984년 상표명확화법으로 이 판단을 뒤집었다.&lt;/b&gt; 개정된 조문은 판단 기준이 &quot;구매자의 동기가 아니라 해당 표장이 관련 공중에게 갖는 주된 의미&quot;라고 못 박았다. 판례가 법을 바꾸고 법이 판례를 지운, 드문 왕복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자기-이름을-쓰지-말라는-광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자기 이름을 쓰지 말라는 광고&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c/Velcro_photomicrograph.jpg/960px-Velcro_photomicrograph.jpg&quot; alt=&quot;벨크로 잠금장치의 갈고리와 고리를 확대한 현미경 사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벨크로 잠금장치의 갈고리와 고리를 확대한 사진. 회사가 권하는 일반 명칭은 '갈고리-고리 패스너'다. 사진: Trazyanderson, CC BY-SA 4.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판례가 쌓이자 기업들은 이름을 지키는 일에 광고비를 쓰기 시작했다. 그 광고의 내용이 기묘하다. &lt;b&gt;자기 상표를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제록스는 오래전부터 '제록스하다' 대신 '복사하다'를 쓰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널리 인용되는 문구는 이렇다. &lt;b&gt;&quot;아스피린을 쓰듯 제록스를 쓰시면, 저희는 두통이 옵니다.&quot;&lt;/b&gt; 자기 회사가 겪을 일을 이미 이름을 잃은 회사의 사례로 설명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목적의 조치가 업계마다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밴드에이드 광고 노래에 'brand'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고, 레고는 1980년대 카탈로그와 조립 설명서에 &quot;레고 브릭 또는 레고 장난감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냥 '레고들(LEGOS)'이라고 하지 마세요&quot;라는 안내를 실었다. 어도비는 '포토샵하다'를 막으려고 별도의 상표 사용 지침을 두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노골적인 사례는 2017년 9월의 벨크로다. &lt;b&gt;회사는 변호사 차림의 배우들이 합창을 하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제목을 「벨크로라고 부르지 마세요」로 달았다.&lt;/b&gt; 노랫말의 요지는 특허는 이미 만료됐고 모두가 이 말을 아무 제품에나 쓰면 상표까지 잃는다는 것, 그러니 다른 회사 제품은 '갈고리-고리 패스너'라고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반응은 회사가 기대한 쪽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대체로 우스워했고 항의도 들어왔다. 그런데 &lt;b&gt;첫 영상이 55만 회 넘게 재생되면서 회사는 상표 오용이 줄었다고 밝혔고&lt;/b&gt;, 이듬해에는 항의에 답하는 후속 영상까지 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에 이 글의 역설이 압축돼 있다. &lt;b&gt;상표는 알려질수록 값이 오르지만, 어느 지점을 넘으면 알려진 정도가 그대로 위험이 된다.&lt;/b&gt; 모두가 아는 이름과 모두의 것이 된 이름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짧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이 회사들이 지키는 규칙은 몇 줄로 요약된다. &lt;b&gt;상표는 형용사로만 쓸 것, 뒤에 일반 명사를 반드시 붙일 것, 복수형과 소유격으로 바꾸지 말 것, 동사로 쓰지 말 것.&lt;/b&gt; 앞의 세 항목은 상표를 물건의 이름 자리에서 떼어 놓기 위한 것이고, 마지막 항목은 아래에서 보듯 법정에서 가장 뜨겁게 다퉈진 대목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효과는 있다. 일상에서 사실상 일반명사처럼 쓰이면서도 여전히 등록 상표로 남아 있는 이름이 적지 않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이름&lt;/th&gt;
&lt;th&gt;권리자&lt;/th&gt;
&lt;th&gt;일반 명칭&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밴드에이드(Band-Aid)&lt;/td&gt;
&lt;td&gt;켄뷰(2023년 존슨앤드존슨에서 분사)&lt;/td&gt;
&lt;td&gt;반창고&lt;/td&gt;
&lt;/tr&gt;
&lt;tr&gt;
&lt;td&gt;젤로(Jell-O)&lt;/td&gt;
&lt;td&gt;크래프트 하인즈&lt;/td&gt;
&lt;td&gt;젤라틴 디저트&lt;/td&gt;
&lt;/tr&gt;
&lt;tr&gt;
&lt;td&gt;제트 스키(Jet Ski)&lt;/td&gt;
&lt;td&gt;가와사키&lt;/td&gt;
&lt;td&gt;개인용 수상 오토바이&lt;/td&gt;
&lt;/tr&gt;
&lt;tr&gt;
&lt;td&gt;벨크로(Velcro)&lt;/td&gt;
&lt;td&gt;벨크로 컴퍼니스&lt;/td&gt;
&lt;td&gt;갈고리-고리 패스너&lt;/td&gt;
&lt;/tr&gt;
&lt;tr&gt;
&lt;td&gt;제록스(Xerox)&lt;/td&gt;
&lt;td&gt;제록스&lt;/td&gt;
&lt;td&gt;복사기&amp;middot;복사&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앞 절의 표와 이 표의 차이는 유명세가 아니다. &lt;b&gt;둘 다 유명하다. 갈린 것은 그 이름 옆에 쓸 만한 다른 말이 남아 있었는가, 그리고 권리자가 그 말을 부지런히 내밀었는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특허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특허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 때가 되면 반드시 만료된다. &lt;b&gt;상표에는 기한이 없지만, 관리를 멈추면 기한 없이 사라진다.&lt;/b&gt; 제도가 발명가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도로 가져갔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34&quot;&gt;넉 장이 같은 날 나갔다&lt;/a&gt;에서 증기선 특허를 따라 정리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구글은-살아남았고-초코파이는-그러지-못했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구글은 살아남았고, 초코파이는 그러지 못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위험을 가장 크게 짊어진 이름이 구글이다. 사전에 없던 단어이면서 동사로 쓰이는 회사 이름이니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2012년 2월 25일부터 3월 10일까지 두 주 사이에, 데이비드 엘리엇과 크리스 길레스피가 'google'을 다른 단어와 조합한 도메인 763개를 등록했다.&lt;/b&gt; googledisney.com, googlebarackobama.net 같은 것들이었다. 구글이 도메인 분쟁 절차로 이를 가져가자 두 사람은 반대로 나섰다. &lt;b&gt;구글 상표 자체가 이미 보통명칭이 됐으니 등록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장의 뼈대는 언어였다. 사람들은 검색 행위 자체를 '구글하다'라고 말하고, 사전에도 동사로 올라 있으며, 구글을 대신할 다른 일반 명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원고 측이 251명에게 물었더니 절반 넘는 사람이 인터넷 검색을 부탁할 때 그 말을 동사로 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2017년 5월 16일,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은 구글의 손을 들어 줬다.&lt;/b&gt; 판결의 논리는 두 갈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째, &lt;b&gt;동사로 쓴다는 사실만으로는 보통명칭이 되지 않는다.&lt;/b&gt; 법원은 동사 용법을 둘로 나눴다. 특정 검색엔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구별적' 용법과, 아무 검색엔진이나 가리키며 쓰는 '무차별적' 용법이다. 앞엣것은 출처를 가리키므로 상표의 기능이 살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둘째, &lt;b&gt;보통명칭 판단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놓고 해야 한다.&lt;/b&gt; '검색하는 행위'라는 추상적 활동을 기준으로는 다툴 수 없고, '인터넷 검색엔진'이라는 상품군에 대해 그 말의 주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 기준으로 보면 구글 측 설문에서 응답자의 93%가량이 '구글'을 브랜드 이름으로 분류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논리를 관통하는 질문은 아스피린 사건의 그것과 같다. &lt;b&gt;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이 '이것이 무엇인가'인가, '이것을 누가 만들었는가'인가.&lt;/b&gt; 러니드 핸드가 1921년에 던진 물음이 96년 뒤 검색엔진 사건에서 그대로 쓰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만 재판부가 한마음은 아니었다. &lt;b&gt;왓퍼드 판사는 별개 의견에서, 무차별적 동사 용법을 증거에서 아예 배제해 버리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적었다.&lt;/b&gt; 사람들이 그 말을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를 배심원이 참고하지 못할 이유는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질문에 다른 답이 나온 사례가 한국에 있다. &lt;b&gt;초코파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리온은 1974년 이 과자를 내놓고 1976년 '오리온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했다. &lt;b&gt;1979년 롯데가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했을 때 오리온은 문제 삼지 않았고, 다른 회사들도 같은 이름으로 제품을 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오리온이 무효 심판과 소송을 낸 것은 1997년, 18년 뒤였다.&lt;/b&gt; 법원의 답은 그사이에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동안 '초코파이'는 특정 회사의 표지가 아니라 그런 종류의 과자를 가리키는 말이 됐고, 보통명칭이 된 이상 독점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lt;b&gt;2001년 대법원에서 마무리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티스가 자기 광고로 에스컬레이터를 놓친 것과, 바이엘의 이름이 약병에 없었던 것과, 오리온이 18년을 흘려보낸 것은 형태가 다르지만 결과가 같다. &lt;b&gt;이름을 지키는 일은 이름을 짓는 일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노동이고, 뒤엣것은 하루면 끝나지만 앞엣것은 끝나지 않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덧붙이면, 오리온이 1989년부터 광고에 '정(情)'을 앞세운 것은 소송보다 8년 앞선 일이라 대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아무나 쓸 수 있게 된 이름 옆에 아무나 쓸 수 없는 표지를 하나 더 세워 둔 셈이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스트먼이 1888년에 적어 둔 조건은 지금도 유효하다. 짧고, 힘이 있고, 잘못 쓰기 어렵고, 아무 뜻도 없을 것. &lt;b&gt;그 이름을 만든 회사는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가 이듬해 절차를 마쳤지만, 다섯 글자는 138년째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은 채 그 회사의 것으로 남아 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식별력 스펙트럼: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Abercrombie_%26_Fitch_Co._v._Hunting_World,_Inc.&quot;&gt;Wikipedia &amp;mdash; Abercrombie &amp;amp; Fitch Co. v. Hunting World, Inc.&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ipo.int/wipolex/en/judgments/details/925&quot;&gt;WIPO Lex &amp;mdash; Abercrombie &amp;amp; Fitch Co. v. Hunting World, Inc., 537 F.2d 4 (2d Cir. 1976)&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rademark_distinctiveness&quot;&gt;Wikipedia &amp;mdash; Trademark distinctiveness&lt;/a&gt;&lt;br /&gt;- 코닥 자전거 사건: &lt;a href=&quot;https://academic.oup.com/rpc/article/15/5/105/1584136&quot;&gt;Reports of Patent, Design and Trade Mark Cases &amp;mdash; Eastman Photographic Materials Co. v. John Griffiths Cycle Corp. (1898) 15 RPC 105&lt;/a&gt;&lt;br /&gt;- 에스컬레이터: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Escalator&quot;&gt;Wikipedia &amp;mdash; Escalato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Seeberger&quot;&gt;Wikipedia &amp;mdash; Charles Seeberge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quimbee.com/cases/haughton-elevator-co-v-seeberger&quot;&gt;Quimbee &amp;mdash; Haughton Elevator Co. v. Seeberger, 85 U.S.P.Q. 80 (1950)&lt;/a&gt;&lt;br /&gt;- 아스피린: &lt;a href=&quot;https://cyber.harvard.edu/metaschool/fisher/domain/tmcases/bayer.htm&quot;&gt;Bayer Co. v. United Drug Co., 272 F. 505 (S.D.N.Y. 1921) 판결문&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aspirin&quot;&gt;Wikipedia &amp;mdash; History of aspirin&lt;/a&gt;&lt;br /&gt;- 보통명칭화 판례: &lt;a href=&quot;https://law.justia.com/cases/federal/appellate-courts/F2/85/75/1490976/&quot;&gt;Justia &amp;mdash; DuPont Cellophane Co. v. Waxed Products Co., 85 F.2d 75 (2d Cir. 1936)&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law.justia.com/cases/federal/appellate-courts/F2/321/577/303217/&quot;&gt;Justia &amp;mdash; King-Seeley Thermos Co. v. Aladdin Industries, 321 F.2d 577 (2d Cir. 1963)&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law.justia.com/cases/federal/appellate-courts/F2/343/655/109434/&quot;&gt;Justia &amp;mdash; Donald F. Duncan, Inc. v. Royal Tops Mfg. Co., 343 F.2d 655 (7th Cir. 1965)&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quimbee.com/cases/anti-monopoly-inc-v-general-mills-fun-group-inc&quot;&gt;Quimbee &amp;mdash; Anti-Monopoly, Inc. v. General Mills Fun Group, 684 F.2d 1316 (9th Cir. 1982)&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law.cornell.edu/uscode/text/15/1064&quot;&gt;Cornell LII &amp;mdash; 15 U.S.C. &amp;sect; 1064&lt;/a&gt;&lt;br /&gt;- 방어 캠페인: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eneric_trademark&quot;&gt;Wikipedia &amp;mdash; Generic trademark&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velcro.com/news-and-blog/2017/09/velcro-companies-public-hook-loop-not-velcro/&quot;&gt;VELCRO Brand &amp;mdash; It's Hook and Loop, Not Velcr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bajournal.com/news/article/velcro_lawyers_thank_you_for_angry_feedback_on_trademark_plea_with_help_of&quot;&gt;ABA Journal &amp;mdash; Lawyers for Velcro use music video to offer thanks for angry feedback&lt;/a&gt;&lt;br /&gt;- 구글: &lt;a href=&quot;https://caselaw.findlaw.com/court/us-9th-circuit/1860517.html&quot;&gt;FindLaw &amp;mdash; Elliott v. Google Inc. (9th Cir. 2017)&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blog.ericgoldman.org/archives/2017/05/google-gets-big-ninth-circuit-win-that-its-eponymous-trademark-isnt-generic-elliott-v-google.htm&quot;&gt;Technology &amp;amp; Marketing Law Blog &amp;mdash; Google Gets Big Ninth Circuit Wi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drforum.com/domaindecisions/1434643.htm&quot;&gt;ADR Forum &amp;mdash; Google Inc. v Chris Gillespie&lt;/a&gt;&lt;br /&gt;- 초코파이: &lt;a href=&quot;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203233553b&quot;&gt;한경비즈니스 &amp;mdash; 오리온이 롯데의 '초코파이' 상표 사용을 막지 못한 이유&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news.bizwatch.co.kr/article/consumer/2026/03/03/0038&quot;&gt;비즈워치 &amp;mdash; 그때 그 광고: '정(情)'으로 과자를 팔다&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특집, 상표, 보통명칭화, 코닥, 아스피린, 에스컬레이터, 구글, 초코파이, 지식재산권&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특집</category>
      <category>구글</category>
      <category>보통명칭화</category>
      <category>상표</category>
      <category>아스피린</category>
      <category>에스컬레이터</category>
      <category>오늘의특집</category>
      <category>지식재산권</category>
      <category>초코파이</category>
      <category>코닥</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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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historypick.tistory.com/52#entry52comment</comments>
      <pubDate>Fri, 4 Sep 2026 07:41: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9월 4일 오늘의 역사: 받을 회사가 없던 수표, 아무도 몰랐던 제국의 마지막 날</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1</link>
      <description>&lt;h2 id=&quot;9월-4일-오늘의-역사-받을-회사가-없던-수표-아무도-몰랐던-제국의-마지막-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9월 4일 오늘의 역사: 받을 회사가 없던 수표, 아무도 몰랐던 제국의 마지막 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98년 여름, 10만 달러짜리 수표 한 장이 두 주 동안 책상 서랍에 놓여 있었다. 받을 회사가 아직 세상에 없어서였다. 라이프치히 교회 앞에 모인 1,200명, 질량분석기에 잡힌 탄소 원자 60개, 그리고 한 제국의 마지막 날까지 9월 4일의 다섯 장면이다.&lt;/p&gt;
&lt;h2 id=&quot;①-1998--받을-회사가-없던-수표&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① 1998 &amp;mdash; 받을 회사가 없던 수표&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45&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swjGc/dJMcadpLB2Q/cDeu7gGuhkTxtrzEZ7m9S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swjGc/dJMcadpLB2Q/cDeu7gGuhkTxtrzEZ7m9S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swjGc/dJMcadpLB2Q/cDeu7gGuhkTxtrzEZ7m9S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swjGc%2FdJMcadpLB2Q%2FcDeu7gGuhkTxtrzEZ7m9S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645&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45&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구글이 첫 사무실로 쓴 멘로파크 산타마르가리타가 232번지의 차고. 사진: Jordiipa, CC BY-SA 3.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98년 8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한 집 현관에서 시연 하나가 있었다. 집주인은 스탠퍼드대 교수 데이비드 셰리턴(David Cheriton), 시연을 한 사람은 그의 제자였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보러 온 사람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창업자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다. &lt;b&gt;그는 시연을 끝까지 보지 않고 수표책을 꺼냈다.&lt;/b&gt;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금액은 10만 달러, 수령인란에는 &lt;b&gt;'Google Inc.'&lt;/b&gt;라고 적혔다. 문제는 그런 법인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수표는 은행에 넣을 수가 없어 페이지의 책상 서랍에 &lt;b&gt;두 주 동안&lt;/b&gt; 들어 있었다. 그사이 두 사람은 법인 설립 절차를 밟고 다른 투자자를 찾아다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98년 9월 4일, 캘리포니아에 구글이 법인으로 등록됐다.&lt;/b&gt; 계좌를 열고 나서야 수표가 은행으로 갔다. 회사가 수표를 발행한 것이 아니라 수표가 회사를 만든 순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름의 내력도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이 1996년 스탠퍼드에서 돌리던 검색엔진의 이름은 &lt;b&gt;백럽(BackRub)&lt;/b&gt;이었다. 링크를 거꾸로 훑어 페이지의 순위를 매긴다는 뜻이었고, 이 프로그램은 한때 &lt;b&gt;스탠퍼드 전체 네트워크 대역폭의 절반가량&lt;/b&gt;을 잡아먹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97년 9월의 어느 날 연구실에서 새 이름을 찾는 자리가 있었다. 동료 션 앤더슨(Sean Anderson)이 '구골플렉스'를 내놓자 페이지가 &lt;b&gt;'구골(googol)'&lt;/b&gt;로 줄였다. 10의 100제곱을 가리키는 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앤더슨이 그 자리에서 도메인 등록 여부를 조회했다. &lt;b&gt;그런데 그가 친 철자는 google.com이었다.&lt;/b&gt; 비어 있었고, 페이지는 그 모양이 마음에 들어 몇 시간 만에 등록해 버렸다. 등록일은 &lt;b&gt;1997년 9월 15일&lt;/b&gt;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법인 설립과 같은 달, 두 사람은 멘로파크 산타마르가리타가 232번지의 차고로 옮겼다. 집주인은 경영학 석사를 막 마치고 그 집을 약 60만 달러에 산 &lt;b&gt;수전 워치츠키(Susan Wojcicki)&lt;/b&gt;였다. 대출 상환에 보태려고 차고를 세놓았고, &lt;b&gt;월세는 1,700달러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집주인은 이듬해 구글의 16번째 직원이 됐고 뒷날 유튜브를 이끌었다. 첫 직원으로 채용된 사람은 스탠퍼드 박사과정에 있던 크레이그 실버스타인(Craig Silverstein)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초기에 모인 돈은 투자자와 지인을 합쳐 &lt;b&gt;약 100만 달러&lt;/b&gt;였다. 셰리턴과 벡톨샤임은 이후 각각 20만 달러가량을 더 넣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②-1989--월요일-저녁-다섯-시의-1200명&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② 1989 &amp;mdash; 월요일 저녁 다섯 시의 1,200명&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8/Bundesarchiv_Bild_183-1989-1023-022%2C_Leipzig%2C_Montagsdemonstration.jpg/960px-Bundesarchiv_Bild_183-1989-1023-022%2C_Leipzig%2C_Montagsdemonstration.jpg&quot; alt=&quot;1989년 10월 라이프치히의 월요시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89년 10월 23일 라이프치히의 월요시위. 9월 4일 1,200명으로 시작한 행렬은 이 무렵 수십만 명 규모가 됐다. 사진: 프리드리히 갈베크,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CC BY-SA 3.0 de,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는 &lt;b&gt;1982년 9월 20일부터&lt;/b&gt;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평화기도회가 열렸다. 7년 동안 그것은 교회 안의 일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989년 9월 4일, 기도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 앞 광장으로 나왔다.&lt;/b&gt; 약 1,200명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 광장에 현수막이 펼쳐졌다. 카트린 하텐하우어(Katrin Hattenhauer)와 게지네 올트만스(Gesine Oltmanns)가 슈타지의 감시를 피해 넉 장을 들여온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크게 적힌 문구는 &lt;b&gt;&quot;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열린 나라를 위하여&quot;&lt;/b&gt;였다. 다른 한 장에는 &lt;b&gt;&quot;대탈출 대신 여행의 자유를&quot;&lt;/b&gt;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해 여름 수만 명이 헝가리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 빠져나가던 상황을 겨눈 문장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복 차림의 슈타지 요원들이 곧바로 현수막을 빼앗았다. &lt;b&gt;그런데 그 장면에는 서방 방송 카메라가 붙어 있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연이 아니었다. 마침 라이프치히 가을 박람회 기간이라 서방 기자들이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lt;b&gt;동독 당국이 외화를 벌려고 불러들인 취재진 앞에서 현수막이 뜯겼고, 그 화면이 그대로 서방에 나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텐하우어는 대가를 치렀다. 일주일 뒤인 &lt;b&gt;9월 11일 니콜라이교회 앞에서 체포돼 10월 13일에야 풀려났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사이 월요일마다 사람이 불어났다. &lt;b&gt;10월 9일에는 7만에서 10만 명이 시내를 돌았다.&lt;/b&gt; 무장한 보안 병력이 배치돼 있었지만 발포는 없었고, 대열은 &quot;우리가 인민이다&quot;를 외치며 도심을 한 바퀴 돌아 흩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0월 16일에는 12만 명, 그다음 주에는 32만 명이 모였다.&lt;/b&gt; 베를린 장벽이 열린 것은 11월 9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0월 9일 그 거리에 하텐하우어는 없었다. 감옥 안에 있었고,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③-1985--별을-흉내-내다-축구공을-찾았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③ 1985 &amp;mdash; 별을 흉내 내다 축구공을 찾았다&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b/Molecular_Model_of_C60%2C_Buckminsterfullerene_-_UCL_Chemistry.jpg/960px-Molecular_Model_of_C60%2C_Buckminsterfullerene_-_UCL_Chemistry.jpg&quot; alt=&quot;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버크민스터풀러렌의 분자 모형&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버크민스터풀러렌의 분자 모형. 오각형 12개와 육각형 20개가 맞물린다. 사진: UCL Mathematical and Physical Sciences, CC BY 2.0,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영국 서식스대의 화학자 해럴드 크로토(Harold Kroto)가 쫓던 것은 별이었다. 정확히는 &lt;b&gt;붉은 거성의 대기에서 만들어질 법한 긴 탄소 사슬&lt;/b&gt;이었다. 그런 분자가 있다면 성간 공간에서 관측되는 특정 파장을 설명할 수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제는 그것을 지상에서 만들 장비였다. 미국 라이스대의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에게 그 장비가 있었다. &lt;b&gt;흑연에 레이저를 쏘아 별 내부에 가까운 온도를 만들고, 튀어나온 원자들을 헬륨 기류에 실어 덩어리로 뭉치게 한 뒤 질량분석기로 무게를 재는 장치&lt;/b&gt;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사람을 이어 준 것은 같은 대학의 로버트 컬(Robert Curl)이다. 크로토는 &lt;b&gt;1985년 9월 1일&lt;/b&gt; 라이스대에 도착했고, 실험은 대학원생 세 명과 함께 열흘 남짓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긴 탄소 사슬은 예상대로 나왔다.&lt;/b&gt;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계획에 없던 것은 질량분석 결과에 튀어나온 봉우리 하나였다. &lt;b&gt;720달톤 자리, 곧 탄소 원자 60개가 뭉친 덩어리가 유독 많이 잡혔다.&lt;/b&gt; 9월 4일의 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무엇이 그렇게 안정적인지가 문제였다. 탄소가 흔히 만드는 육각형 그물만으로는 평면이 될 뿐 닫힌 공이 되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실마리는 화학이 아니라 기억에서 나왔다. &lt;b&gt;크로토는 예전에 아이들에게 만들어 준 종이 별자리 돔을 떠올렸다. 그 돔에는 육각형만이 아니라 오각형이 섞여 있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스몰리가 그날 밤 가위와 테이프로 종이 모형을 접었다. &lt;b&gt;오각형 12개와 육각형 20개를 맞물리자 꼭짓점 60개짜리 공이 닫혔다.&lt;/b&gt; 축구공과 같은 모양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름은 건축가 &lt;b&gt;버크민스터 풀러(R. Buckminster Fuller)&lt;/b&gt;에게서 왔다. 같은 원리로 서 있는 측지 돔의 설계자였고, 그래서 분자 이름이 버크민스터풀러렌이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논문은 「C60: Buckminsterfullerene」이라는 제목으로 &lt;b&gt;1985년 11월 14일 자 네이처&lt;/b&gt;에 실렸다. 본문은 두 쪽이 채 되지 않는다. 크로토와 컬, 스몰리는 &lt;b&gt;1996년 노벨 화학상&lt;/b&gt;을 받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크로토가 원래 찾던 별의 분자는 어떻게 됐을까. &lt;b&gt;2010년,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1만 광년 넘게 떨어진 행성상성운 Tc 1에서 C60을 검출했다.&lt;/b&gt; 실험실에서 만들어 낸 지 25년 만에, 처음 그것을 찾으러 갔던 곳에서 실제로 발견된 셈이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④-1888--아무-뜻도-없어야-하는-이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④ 1888 &amp;mdash; 아무 뜻도 없어야 하는 이름&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c/ce/George_Eastman_patent_no_388%2C850.png/960px-George_Eastman_patent_no_388%2C850.png&quot; alt=&quot;조지 이스트먼의 미국 특허 388,850호 도면&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888년 9월 4일 등록된 조지 이스트먼의 미국 특허 388,850호 도면.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88년 9월 4일, 뉴욕 로체스터의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받았다. &lt;b&gt;미국 특허 388,850호와 상표 15,825호다.&lt;/b&gt; 특허는 롤필름을 쓰는 손 카메라의 것이었고, 상표는 그 카메라에 붙일 이름 &lt;b&gt;'코닥(Kodak)'&lt;/b&gt;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계 자체는 단순했다. &lt;b&gt;가로세로 3.75&amp;times;3.25인치에 길이 6.5인치, 무게는 2파운드가 안 됐다.&lt;/b&gt; 초점도 조리개도 맞출 것이 없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파는 방식이 새로웠다. &lt;b&gt;100장짜리 롤필름을 미리 넣은 채 가죽 케이스까지 붙여 25달러에 팔았다.&lt;/b&gt; 사진은 지름 2와 8분의 5인치의 원형으로 찍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00장을 다 찍으면 필름만 빼는 것이 아니라 &lt;b&gt;카메라째 로체스터로 보냈다.&lt;/b&gt; 10달러를 내면 회사가 현상과 인화를 해서 사진과 원판을 돌려주고, 새 필름을 넣은 카메라를 함께 부쳤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광고 문구가 그 구조를 한 줄로 요약했다. &lt;b&gt;&quot;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 &lt;b&gt;이스트먼이 글자를 조합해 만들어 낸 단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lt;b&gt;&quot;K는 내가 좋아하는 글자였다. 강하고 예리한 글자 같았다.&quot;&lt;/b&gt; 그래서 K로 시작해 K로 끝나는 조합을 수없이 시험했고, 그 결과가 코닥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06년 시카고대의 한 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더 분명하게 적었다. &lt;b&gt;&quot;순전히 임의로 조합한 글자이며, 기존의 어떤 단어에서도 전부든 일부든 가져오지 않았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가 정리한 상표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짧고, 힘이 있고, 잘못 쓰기 어려울 것. 그리고 하나가 더 붙는다. &lt;b&gt;&quot;아무 뜻도 없어야 한다.&quot;&lt;/b&gt; 사전에 뜻이 있으면 그 뜻과 경쟁해야 하고, 없으면 제품이 곧 뜻이 되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조건은 그 뒤로 브랜드 이름의 기본 문법이 됐다. 이날 첫 번째 메인으로 다룬 회사의 이름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날 받은 특허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 특허 제도가 발명가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았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34&quot;&gt;넉 장이 같은 날 나갔다&lt;/a&gt;에 증기선 특허 분쟁을 따라 정리해 두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⑤-476--아무도-몰랐던-마지막-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⑤ 476 &amp;mdash; 아무도 몰랐던 마지막 날&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c/Gold_Solidus_of_Romulus_Augustulus.jpg/960px-Gold_Solidus_of_Romulus_Augustulus.jpg&quot; alt=&quot;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이름이 새겨진 금화 솔리두스&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이름이 새겨진 금화 솔리두스. 미국화폐협회 소장.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76년 9월 4일,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서로마 황제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름은 &lt;b&gt;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lt;/b&gt;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즉위한 것은 열 달 전인 &lt;b&gt;475년 10월 31일&lt;/b&gt;, 그때 나이는 열 살 안팎으로 추정된다. 실권은 아버지이자 군사령관이던 &lt;b&gt;오레스테스(Orestes)&lt;/b&gt;에게 있었고, 소년 황제는 이름만 황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이름은 공교로웠다.&lt;/b&gt; 로마를 세운 전설 속 인물이 로물루스였고, 첫 황제의 칭호가 아우구스투스였다. '아우구스툴루스'는 '꼬마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의 조롱조 별명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군대의 요구를 오레스테스가 거절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lt;b&gt;게르만계 장군 오도아케르(Odoacer)가 8월 28일 티키눔에서 오레스테스를 꺾고, 9월 4일 라벤나에 들어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도아케르는 소년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 &lt;b&gt;황제의 휘장을 상자에 담아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 황제 제노(Zeno)에게 보냈다.&lt;/b&gt; 서방에는 더 이상 따로 황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고, 자신은 이탈리아의 왕을 칭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폐위된 황제는 &lt;b&gt;연 6,000솔리두스의 연금&lt;/b&gt;과 함께 캄파니아의 루쿨라눔 성채로 보내졌다. 나폴리 인근의 옛 황실 소유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당시 사람들에게 이날은 제국이 끝난 날이 아니었다.&lt;/b&gt; 동방은 애초에 로물루스를 황제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정통으로 본 서방 황제는 달마티아에 남아 있던 &lt;b&gt;율리우스 네포스(Julius Nepos)&lt;/b&gt;였고, 그가 살해된 것은 4년 뒤인 480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록도 로물루스가 그 뒤로 한참 살았음을 보여 준다. &lt;b&gt;493년과 507년(또는 511년)에 그는 동고트 왕 테오도리크의 정부와 연금 조건을 다시 협상해야 했다.&lt;/b&gt; 507년 카시오도루스가 '로물루스'라는 인물에게 연금을 확인해 준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 사람이 그 황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인도 최후도 기록에 없다. 다만 그는 루쿨라눔에 성 세베리누스의 유해를 모신 수도원을 세운 것으로 보이며, &lt;b&gt;536년 동로마가 이탈리아로 들어올 무렵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76년을 서로마의 종점으로 못 박은 것은 훨씬 뒤의 동로마 저술가들이다. &lt;b&gt;마지막 황제는 자기가 끝냈다는 그 제국보다 수십 년을 더 살았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h3 id=&quot;오늘의-단신&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오늘의 단신&lt;/h3&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2002&lt;/b&gt;: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20연승을 채운다 &amp;mdash;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11-0까지 앞서다 11-11로 따라잡힌 뒤, 9회말 대타 스콧 해테버그(Scott Hatteberg)의 홈런으로 12-11에 끝냈다. 1947년 양키스의 19연승을 넘은 아메리칸리그 기록이고, 이 장면이 『머니볼』의 중심 대목이 됐다&lt;/li&gt;
&lt;li&gt;&lt;b&gt;2001&lt;/b&gt;: 도쿄 디즈니시가 문을 연다 &amp;mdash; 지바현 우라야스의 도쿄 디즈니리조트에 바다를 주제로 한 두 번째 공원이 들어섰다. 디즈니가 미국 밖에서 처음으로 기존 공원 옆에 새 공원을 붙인 사례다&lt;/li&gt;
&lt;li&gt;&lt;b&gt;1972&lt;/b&gt;: 마크 스피츠가 한 대회에서 7관왕에 오른다 &amp;mdash; 뮌헨 올림픽 수영에서 개인 4종목과 계영 3종목을 모두 이겼다. 기록은 금메달 개수보다 더 특이하다. &lt;b&gt;출전한 일곱 종목 전부에서 세계신기록&lt;/b&gt;이 나왔다&lt;/li&gt;
&lt;li&gt;&lt;b&gt;1970&lt;/b&gt;: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칠레 대통령에 당선된다 &amp;mdash; 과반 없는 1위여서 그해 10월 의회 표결로 확정됐다. 선거로 집권한 첫 마르크스주의 정부로 꼽히며, 3년 뒤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lt;/li&gt;
&lt;li&gt;&lt;b&gt;1964&lt;/b&gt;: 스코틀랜드 포스 로드 브리지가 개통한다 &amp;mdash; 주탑 사이 경간이 1,006미터로, 당시 미국 밖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다. 다리가 열리면서 800년 넘게 이어진 퀸스페리 나룻배가 사라졌다. 마지막 상업 운항은 개통 전날 저녁이었다&lt;/li&gt;
&lt;li&gt;&lt;b&gt;1951&lt;/b&gt;: 미국에서 첫 대륙횡단 텔레비전 생중계가 이뤄진다 &amp;mdash;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대일강화회의 개막식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연설했다. AT&amp;amp;T가 새로 깐 마이크로파 중계망을 타고 47개 도시 87개 방송국에 동시에 나갔다&lt;/li&gt;
&lt;li&gt;&lt;b&gt;1882&lt;/b&gt;: 뉴욕에서 돈을 받고 파는 전기가 처음 흐른다 &amp;mdash; 오후 3시, 펄가 255~257번지의 에디슨 발전소가 가동했다. 첫날 고객은 60~85명, 전등은 400개 남짓이었다. 에디슨은 투자자 J. P. 모건의 사무실에 서서 스위치를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다&lt;/li&gt;
&lt;li&gt;&lt;b&gt;1781&lt;/b&gt;: 로스앤젤레스가 세워진다 &amp;mdash; 44명이 '천사들의 모후이신 성모의 마을'이라는 긴 이름으로 농업 공동체를 열었다. 1781년 인구 기록을 보면 이 44명 가운데 스페인계는 두 명뿐이고, 나머지는 원주민&amp;middot;아프리카계&amp;middot;혼혈이었다&lt;/li&gt;
&lt;li&gt;&lt;b&gt;1774&lt;/b&gt;: 유럽인이 뉴칼레도니아를 처음 본다 &amp;mdash; 제임스 쿡(James Cook)의 2차 항해 중이었다. 섬의 지형이 스코틀랜드를 닮았다고 여겨 라틴어 지명 '칼레도니아'에 '새로운'을 붙였다&lt;/li&gt;
&lt;li&gt;&lt;b&gt;626&lt;/b&gt;: 당 태종이 즉위한다 &amp;mdash; 두 달 전 현무문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황태자가 된 이세민에게 아버지 고조 이연이 황위를 넘겼다. 23년에 걸친 그의 치세는 뒷날 '정관의 치'로 불린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사건 데이터: &lt;a href=&quot;https://api.wikimedia.org/feed/v1/wikipedia/en/onthisday/events/09/04&quot;&gt;Wikimedia On This Day API&lt;/a&gt; &amp;middot;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lt;br /&gt;- 구글 창립: &lt;a href=&quot;https://about.google/company-info/our-story/&quot;&gt;Google &amp;mdash; How we started and where we are tod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oogle&quot;&gt;Wikipedia &amp;mdash; History of Googl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graphics.stanford.edu/~dk/google_name_origin.html&quot;&gt;Stanford &amp;mdash; Origin of the name &quot;Google&quo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cnbc.com/2018/09/27/google-virtual-tour-of-larry-page-sergey-brins-1998-garage-office.html&quot;&gt;CNBC &amp;mdash; Google was started in this garage office in California in 1998&lt;/a&gt;&lt;br /&gt;- 라이프치히 월요시위: &lt;a href=&quot;https://www.bpb.de/kurz-knapp/hintergrund-aktuell/295940/1989-die-erste-montagsdemonstration/&quot;&gt;bpb &amp;mdash; 1989: Die erste Montagsdemonstrati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Monday_demonstrations_in_East_Germany&quot;&gt;Wikipedia &amp;mdash; Monday demonstrations in East German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Katrin_Hattenhauer&quot;&gt;Wikipedia &amp;mdash; Katrin Hattenhaue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glish.leipzig.de/services-and-administration/autumn-89/the-9th-october-1989&quot;&gt;City of Leipzig &amp;mdash; The Peaceful Revolution: 9 October 1989&lt;/a&gt;&lt;br /&gt;- 버크민스터풀러렌: &lt;a href=&quot;https://www.sciencehistory.org/education/scientific-biographies/richard-smalley-robert-curl-harold-kroto/&quot;&gt;Science History Institute &amp;mdash; Smalley, Curl and Krot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sheffield.ac.uk/kroto/legacy/research/areas/buckminsterfullerene&quot;&gt;University of Sheffield &amp;mdash; Buckminsterfulleren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obelprize.org/prizes/chemistry/1996/press-release/&quot;&gt;Nobel Prize &amp;mdash; The 1996 Nobel Prize in Chemistr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jpl.nasa.gov/news/nasa-telescope-finds-elusive-buckyballs-in-space-for-first-time/&quot;&gt;NASA JPL &amp;mdash; NASA Telescope Finds Elusive Buckyballs in Space for First Time&lt;/a&gt;&lt;br /&gt;- 코닥: &lt;a href=&quot;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september-4/kodak-camera-patent&quot;&gt;HISTORY &amp;mdash; George Eastman patents Kodak camer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spectrum.ieee.org/september-1888-george-eastman-patents-his-kodak-camera&quot;&gt;IEEE Spectrum &amp;mdash; September 1888: George Eastman Patents His Kodak Camer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americanhistory.si.edu/collections/object/nmah_760118&quot;&gt;Smithsonian NMAH &amp;mdash; Original Kodak Camera, Serial No. 540&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mcnygenealogy.com/book/kodak/kodak-name.pdf&quot;&gt;How Kodak Got Its Name (Eastman 서한 인용)&lt;/a&gt;&lt;br /&gt;-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Romulus_Augustulus&quot;&gt;Wikipedia &amp;mdash; Romulus Augustulu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roman-emperors.sites.luc.edu/auggiero.htm&quot;&gt;De Imperatoribus Romanis &amp;mdash; Romulus Augustulus&lt;/a&gt;&lt;br /&gt;- 단신 보강: &lt;a href=&quot;https://www.si.com/mlb/2017/09/08/longest-winning-streaks-2002-oakland&quot;&gt;Sports Illustrated &amp;mdash; 2002 Oakland Athletics: 20 straigh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olympics.com/en/athletes/mark-spitz&quot;&gt;Olympics.com &amp;mdash; Mark Spitz&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heforthbridges.org/about-the-forth-bridges/forth-road-bridge/forth-road-bridge-history/&quot;&gt;The Forth Bridges &amp;mdash; Forth Road Bridge Histor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ryofinformation.com/detail.php?id=4207&quot;&gt;History of Information &amp;mdash; President Truman Makes the First Transcontinental Television Broadcas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thw.org/Milestones:Pearl_Street_Station,_1882&quot;&gt;ETHW &amp;mdash; Milestones: Pearl Street Station, 1882&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lacity.gov/government/history-los-angeles&quot;&gt;City of Los Angeles &amp;mdash; The History of Los Angele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Xuanwu_Gate_Incident&quot;&gt;Wikipedia &amp;mdash; Xuanwu Gate Incident&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역사, 9월4일, 구글창립, 라이프치히월요시위, 버크민스터풀러렌, 코닥, 서로마제국멸망, 로물루스아우구스툴루스&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역사</category>
      <category>9월4일</category>
      <category>구글창립</category>
      <category>라이프치히월요시위</category>
      <category>로물루스아우구스툴루스</category>
      <category>버크민스터풀러렌</category>
      <category>서로마제국멸망</category>
      <category>오늘의역사</category>
      <category>코닥</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historypick.tistory.com/51</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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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4 Sep 2026 07:31: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절반만 바꾸면 더 위험하다: 온 나라가 같은 시각에 규칙을 바꾸는 법</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50</link>
      <description>&lt;h2 id=&quot;절반만-바꾸면-더-위험하다-온-나라가-같은-시각에-규칙을-바꾸는-법&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절반만 바꾸면 더 위험하다: 온 나라가 같은 시각에 규칙을 바꾸는 법&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67년 9월 3일 새벽 4시 50분, 스웨덴 전역의 차가 길 위에 멈춰 섰다. 운전자들은 차를 오른쪽 차선으로 옮긴 뒤 한 번 더 정지했다. 다시 출발이 허용된 시각은 5시 정각이었다. 그 10분 사이에 좌측통행 국가 하나가 우측통행 국가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49&quot;&gt;9월 3일 오늘의 역사&lt;/a&gt;에서 그 새벽을 다뤘다. 이 글은 그다음 질문을 따라간다. &lt;b&gt;왜 하필 10분이었나.&lt;/b&gt; 4년을 준비했으면서 정작 실행은 하룻밤에 끝낸 이유, 그리고 같은 선택을 한 나라&amp;middot;도시&amp;middot;기계들이 공통으로 마주친 하나의 계산에 대한 이야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10분을-위해-4년을-쓴-이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10분을 위해 4년을 쓴 이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먼저 daily가 다룬 대목을 요약해 둔다. 1955년 국민투표에서 스웨덴 유권자의 82.9퍼센트가 좌측통행 유지에 표를 던졌다(투표율 53.2퍼센트, 백지 4만 1,630표). 그럼에도 정부는 1963년 5월 10일 의회에서 전환안을 통과시켰다. 이웃 노르웨이&amp;middot;핀란드가 우측통행이었고, 스웨덴에 굴러다니는 차의 90퍼센트 이상이 좌핸들이었으며, 차량 대수가 계속 늘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준비에 4년이 걸렸다. 표지판 35만 개를 갈았고, 버스 1,000대 넘게 새로 사고 8,000대를 개조했다. H 로고를 우유팩과 속옷에 찍었다. 그리고 전환 당일 사고는 157건, 부상은 32건, 사망자는 없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부터가 이 글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63년 여름, 스웨덴은 이 일만 맡는 기구를 따로 세웠다. 국가우측통행위원회(Statens h&amp;ouml;gertrafikkommission)다. 1965년 이 위원회의 상근 실무 책임자가 된 라르스 시욀드(Lars Ski&amp;ouml;ld)에게는 곧 별명이 붙었다. &lt;b&gt;'우측통행 장군'(h&amp;ouml;gergeneralen)이다.&lt;/b&gt; 전환 당일 새벽, 정지와 재출발을 라디오로 지시한 사람도 그였다. 총비용은 6억 2,800만 크로나로 전해진다. 다만 이 수치는 널리 인용되는 값이고 1차 회계 자료로 확인하지는 못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년을 들여 준비한 조직이 실행에는 왜 10분만 썼을까. 나눠서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도로 규칙의 값은 규칙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 &lt;b&gt;모두가 같은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에서 나온다.&lt;/b&gt;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은 그 자체로는 우열이 없다. 위험한 것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둘이 섞이는 상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이 종류의 변경에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절반이 바꾼 시점의 위험은 아무도 바꾸지 않은 상태의 절반이 아니다. &lt;b&gt;그보다 크다.&lt;/b&gt; 반대 방향으로 오는 차를 만날 확률은 바꾼 쪽 비율과 안 바꾼 쪽 비율의 곱에 비례하고, 곱은 양 끝이 아니라 한가운데에서 가장 크다. 시작도 끝도 안전한데 중간만 위험한 구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런 변경을 나눠서 하면, 절약되는 것은 준비 비용이고 늘어나는 것은 중간 상태의 시간이다. 스웨덴은 그 시간을 10분으로 줄이는 데 4년과 6억 크로나를 썼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1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6djL2/dJMcadb8P0c/fz2uS4ej1EQInYWBl5FaW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6djL2/dJMcadb8P0c/fz2uS4ej1EQInYWBl5FaWK/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6djL2/dJMcadb8P0c/fz2uS4ej1EQInYWBl5FaW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6djL2%2FdJMcadb8P0c%2Ffz2uS4ej1EQInYWBl5FaW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612&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1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전환 당일 스톡홀름 에싱에레덴 고속도로. 오른쪽 끝에 '우측통행 장군' 라르스 시욀드가 보인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절반만-바꿔-본-나라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절반만 바꿔 본 나라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정이 아니다. 실제로 해 본 나라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오스트리아는 20년 동안 좌우가 갈려 있었다.&lt;/b&gt; 서쪽 포어아를베르크주가 1921년에 먼저 우측통행으로 바꿨고, 빈을 비롯한 동쪽은 좌측통행으로 남았다. 두 규칙의 경계선은 묘하게도 1805년 나폴레옹 군대가 진출한 선과 겹친다. 점령을 겪은 지역이 프랑스식 우측통행을 받아들였고, 그렇지 않은 지역이 옛 규칙을 유지한 결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머지 지역의 전환은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직후 명령으로 이뤄졌다. 준비 기간이 사실상 없었다. 표지판을 읽을 수 없었고 전차 노선은 하루 만에 바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정리에 몇 달이 걸렸고, 지금도 빈의 슈넬반은 좌측 통행 방식의 흔적을 그대로 쓰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체코슬로바키아는 좀 더 뚜렷한 사례다.&lt;/b&gt; 이 나라는 1925년 파리 협약을 받아들이며 &quot;합리적인 기간 안에&quot; 우측통행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1931년에는 5년 안에 전환한다는 정부 포고까지 나왔다. 실행되지 않았다. 비용이 컸고 농촌의 반대가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38년 11월, 의회가 마침내 날짜를 정했다. &lt;b&gt;1939년 5월 1일이었다.&lt;/b&gt; 6개월의 준비 기간을 두겠다는 계획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39년 3월 15일 체코 지역이 점령되면서 일정이 앞당겨졌다. 오스트라바 등 일부 도시는 그날 바로 바꿨고, 나머지 지역은 3월 17일 포고로, 프라하는 준비 시간을 더 받아 3월 26일에 바꿨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결과적으로 아홉 날 동안 한 나라 안에 두 규칙이 있었다.&lt;/b&gt; 프라하 전환 당일 이 도시에서 보고된 교통사고는 26건, 사망은 1명이다. 전차 궤도 쪽 공사는 미리 해 둔 상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슬로바키아 쪽은 더 길게 끌었다. 1938년 말 자치정부가 포고를 냈지만 마지막 도로들이 정리된 것은 1940~41년이고, 남부 국경 지역은 1941년에야 바뀌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리하면 이렇다. 부분 전환이 가능한 경우가 없지는 않다. 도로망이 산맥이나 국경으로 끊겨 있으면 구간별 전환이 성립한다. 오스트리아의 20년이 그랬다. 하지만 &lt;b&gt;한 생활권 안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lt;/b&gt; 같은 도시의 같은 교차로에서 두 규칙이 만나는 순간, 규칙은 규칙이기를 그만둔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2/Countries_driving_on_the_left_or_right.svg/960px-Countries_driving_on_the_left_or_right.svg.png&quot; alt=&quot;좌측통행 국가와 우측통행 국가 분포&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파란색이 우측통행, 빨간색이 좌측통행 국가다. 이 지도의 경계선 상당수는 식민 통치의 흔적이거나, 이웃 나라와 맞추기 위해 어느 날 하루 만에 옮겨간 결과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같은-일을-한-다섯-곳&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같은 일을 한 다섯 곳&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0세기 후반에 통행 방향을 바꾼 사례는 손에 꼽는다. 다섯 곳을 나란히 놓으면 조건의 차이가 보인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지역&lt;/th&gt;
&lt;th&gt;날짜&lt;/th&gt;
&lt;th&gt;방향&lt;/th&gt;
&lt;th&gt;준비 기간&lt;/th&gt;
&lt;th&gt;실행 방식&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스웨덴&lt;/td&gt;
&lt;td&gt;1967-09-03&lt;/td&gt;
&lt;td&gt;좌 &amp;rarr; 우&lt;/td&gt;
&lt;td&gt;약 4년 (1963 가결)&lt;/td&gt;
&lt;td&gt;04:50 정지 &amp;rarr; 05:00 재출발, 일요일 새벽 통행 금지&lt;/td&gt;
&lt;/tr&gt;
&lt;tr&gt;
&lt;td&gt;아이슬란드&lt;/td&gt;
&lt;td&gt;1968-05-26&lt;/td&gt;
&lt;td&gt;좌 &amp;rarr; 우&lt;/td&gt;
&lt;td&gt;약 3년 (1965 법률)&lt;/td&gt;
&lt;td&gt;06:00 전환&lt;/td&gt;
&lt;/tr&gt;
&lt;tr&gt;
&lt;td&gt;미얀마&lt;/td&gt;
&lt;td&gt;1970-12-06&lt;/td&gt;
&lt;td&gt;좌 &amp;rarr; 우&lt;/td&gt;
&lt;td&gt;사실상 없음&lt;/td&gt;
&lt;td&gt;포고&lt;/td&gt;
&lt;/tr&gt;
&lt;tr&gt;
&lt;td&gt;오키나와&lt;/td&gt;
&lt;td&gt;1978-07-30&lt;/td&gt;
&lt;td&gt;우 &amp;rarr; 좌&lt;/td&gt;
&lt;td&gt;약 6년 (1972 반환 후)&lt;/td&gt;
&lt;td&gt;전날 22:00~당일 06:00 통행 금지&lt;/td&gt;
&lt;/tr&gt;
&lt;tr&gt;
&lt;td&gt;사모아&lt;/td&gt;
&lt;td&gt;2009-09-07&lt;/td&gt;
&lt;td&gt;우 &amp;rarr; 좌&lt;/td&gt;
&lt;td&gt;약 2년 (2008 입법)&lt;/td&gt;
&lt;td&gt;06:00 전환, 이틀 공휴일&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아이슬란드는 스웨덴을 보고 따라갔다.&lt;/b&gt; 알싱기(의회)가 1964년 5월 13일 정부에 &quot;우측통행으로 옮기는 최선의 방법을 조사하라&quot;고 요구했고, 1965년에 법률이 만들어졌다. 원래 이 나라는 덴마크 지배를 받으면서도 좌측통행이었고, 2차 대전 중에는 영국군 주둔으로 전환 계획이 미뤄졌다. 버스 개조에만 3,300만 크로나가 들었다. 전환 당일 보고된 부상은 자전거를 타던 소년 한 명의 다리 골절이 전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미얀마는 준비 없이 한 쪽이다.&lt;/b&gt; 1970년 12월 6일, 당시 버마는 하루아침에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공식 이유는 장차 국제 도로망에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대에는 다른 설명이 널리 퍼졌다. 점성술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인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소문으로 남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얀마 사례가 남긴 것은 &lt;b&gt;전환하지 않은 부분의 문제&lt;/b&gt;다. 도로 규칙은 바뀌었지만 차는 그대로였다. 영국식 우핸들 차량이 우측통행 도로를 달리게 됐고, 특히 버스가 문제가 됐다. 승객용 문이 왼쪽에 달려 있어서, 규칙이 바뀐 뒤로는 그 문이 도로 안쪽을 향하게 됐다. 정부는 2017년에야 우핸들 차량 수입을 금지했다. 다만 굴러다니는 차의 대부분이 일본산 중고차라 교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절반만 바꾼 전환은 55년이 지나도 절반인 채로 남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오키나와는 방향이 반대인 유일한 사례에 가깝다.&lt;/b&gt; 원래 일본 본토와 같은 좌측통행이었는데, 1945년 6월 미군 통치 아래 들어가면서 우측통행이 됐다. 1972년 일본에 반환된 뒤에도 6년 동안 그대로였다. 결국 바꾼 근거는 한 나라 안에서는 통행 방향이 하나여야 한다는 조항이었다(영문 자료는 대개 1949년 제네바 도로교통협약 제9조를 들고, 빈 협약으로 적는 자료도 있어 갈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실행은 8시간이었다. 1978년 7월 29일 밤 10시부터 긴급차량 외 통행을 막고, 30일 새벽 6시에 좌측통행으로 다시 열었다. 그사이에 처리한 것이 도로 4,200킬로미터, 버스 1,000대와 택시 5,000대 교체, 차량 30만 대의 전조등 조정이다. 일본 정부가 쓴 돈이 약 1억 5,000만 달러, 미군이 기지 안 표지판을 바꾸는 데 쓴 돈이 따로 약 50만 달러다. 이시가키섬에는 지금도 '730 교차로'라는 이름과 1미터 높이의 기념비가 남아 있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7/730_Crossing_Ishigaki_Island_Japan01s3s4410.jpg/960px-730_Crossing_Ishigaki_Island_Japan01s3s4410.jpg&quot; alt=&quot;이시가키섬의 730 교차로&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의 730 교차로. 1978년 7월 30일의 전환을 기념해 이름이 붙었다. 사진: 663highland, CC BY 2.5,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사모아는 목적이 특이하다.&lt;/b&gt; 2009년 9월 7일, 이 나라는 우측통행에서 좌측통행으로 바꿨다. 이유는 안전도 국제 규격도 아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 사는 사모아 교민이 17만 명가량인데, 그쪽은 좌측통행이라 차가 우핸들이다. 통행 방향을 맞추면 교민이 본국의 친척에게 중고차를 보낼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반대가 거셌다. '통행 방향 전환 반대 시민모임'(PASS)이 만들어져 여러 차례 행진을 조직했고, 이 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로 불린다(참가 인원 추산은 자료마다 달라 여기 적지 않는다). 대법원에 낸 소송은 기각됐다. 반대 운동에서 갈라져 나온 흐름은 2008년 정당 창당으로 이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부의 대응은 규칙을 바꾸는 대신 &lt;b&gt;하루의 위험을 통째로 줄이는 쪽&lt;/b&gt;이었다. 이틀을 공휴일로 지정해 차를 줄였고, 사흘간 주류 판매를 금지했으며, 제한속도를 시속 56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로 낮추고 과속방지턱을 깔았다. 전환 당일 큰 혼란은 보고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길-위가-아닌-곳의-동시-전환&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길 위가 아닌 곳의 동시 전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계산은 도로 밖에서도 나온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날짜.&lt;/b&gt; 2011년 12월 30일, 사모아와 뉴질랜드령 토켈라우에서 이 날짜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 곳이 국제날짜변경선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12월 29일 자정이 지나자 곧바로 12월 31일이 됐다. 이유는 무역이다. 그전까지 사모아는 시드니보다 21시간, 오클랜드보다 23시간 뒤에 있었다. 주요 교역 상대와 영업일이 겹치는 날이 주 4일뿐이었다. 사모아 인구 약 18만 6,000명과 토켈라우 약 1,500명이 하루를 건너뛰었다. 이 나라가 반대편으로 옮긴 것이 1892년이니, 119년 만의 원위치인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를 지우는 전환의 원형은 훨씬 오래됐다. 1582년 그레고리력 도입 때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열흘이 사라졌다. 그 열흘이 어떻게 처리됐고 무엇이 문제가 됐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8&quot;&gt;열흘이 사라진 해&lt;/a&gt;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돈.&lt;/b&gt; 유로 현금은 2002년 1월 1일 12개국 3억 800만 명에게 동시에 도입됐다. 흔히 '빅뱅'으로 불리지만, 엄밀히는 순수한 동시 전환이 아니다. 지폐와 동전은 2001년 9월부터 은행과 상점에 미리 풀렸고, 도입 뒤에도 &lt;b&gt;최장 두 달의 병행 유통 기간&lt;/b&gt;이 있었다. 유로가 유일한 법정통화가 된 것은 2002년 3월 1일이다. 그사이에 회수된 옛 지폐가 60억 장, 동전이 300억 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차이가 드러난다. 통화는 병행 상태를 견딜 수 있다. 상점이 두 화폐를 동시에 받아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견딜 수 있으면 하루에 끝낼 이유가 없어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시간.&lt;/b&gt; 윤초는 반대 방향의 사례다. 1972년 이후 지구 자전과 원자시계의 차이를 메우려고 필요할 때마다 1초를 끼워 넣어 왔는데, 이 불규칙한 삽입이 전산 시스템에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2022년 11월 18일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2035년까지 윤초 삽입을 멈추기로 결의했다. 러시아는 2040년을 주장했고 2025년이나 2030년을 요구한 쪽도 있어, 2035년은 타협의 산물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윤초 폐지가 흥미로운 것은 &lt;b&gt;13년의 유예&lt;/b&gt;를 둔 점이다.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세계의 시스템들이 각자의 속도로 따라올 시간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전산이-이-문제에-붙인-이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전산이 이 문제에 붙인 이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구조를 가장 먼저 이름 붙인 쪽은 도로가 아니라 컴퓨터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플래그 데이(flag day)&lt;/b&gt; 라는 말이 있다. 앞뒤 호환이 되지 않아 관련된 모든 시스템을 같은 시각에 바꿔야 하고, 되돌리기도 비싼 변경을 가리킨다. 어원은 1966년 멀틱스(Multics) 프로젝트다. 시스템 전체의 아스키 문자 처리 방식을 바꾸는 작업 날짜를 미국의 국기의 날(Flag Day)인 6월 14일로 잡았고, 그 이름이 그대로 일반명사가 됐다. 1981년판 『Jargon File』에 항목으로 실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유명한 사례가 &lt;b&gt;1983년 1월 1일의 아파넷&lt;/b&gt;이다. 이날 아파넷은 통신 규약을 NCP에서 TCP/IP로 바꿨다. 계획서는 존 포스텔(Jon Postel)이 1981년 11월에 쓴 RFC 801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문서가 재미있는 것은, 도로 이야기에서 우리가 세운 계산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포스텔은 모든 호스트를 동시에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먼저 적는다. &lt;i&gt;&quot;모든 호스트를 동시에 전환할 수는 없고 일부는 IP/TCP만 구현할 것이므로, NCP 전용 호스트와 TCP 전용 호스트 사이의 통신을 임시로 제공해야 한다.&quot;&lt;/i&gt; 그래서 두 규약을 모두 아는 중계 호스트를 두는 계획을 세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전환의 부담을 재는 지표를 만들었다. &lt;b&gt;NCP만 쓰는 호스트 수와 TCP만 쓰는 호스트 수의 곱이다.&lt;/b&gt;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짝의 개수이니, 이 값이 클수록 중계에 걸리는 부하가 크다. 문서에 붙은 추정표에서 이 값은 1982년 7~9월 무렵 최고에 달했다가 이후 줄어든다. 전환이 절반쯤 진행됐을 때가 가장 비싸다는 뜻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좌우 혼재 도로의 곡선과 같은 모양이다.&lt;/b&gt; 도로에서는 그 곱이 사고 위험이 되고, 네트워크에서는 중계 부하가 된다. 문제의 재료가 다를 뿐 형태가 같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환 대상 규모는 자료에 따라 다르다. RFC 801의 추정표는 1982년 초 약 200대, 연말 약 250대로 잡았고, 후대의 서술은 약 400대로 적는 쪽이 많다. 세는 시점과 기준이 달라 생긴 차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작업은 예정대로 끝났다. 눈에 보이는 기념물은 하나뿐이었다. &lt;b&gt;&quot;나는 TCP/IP 전환에서 살아남았다&quot;고 적힌 배지&lt;/b&gt;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f/Arpanet_logical_map%2C_march_1977.png/960px-Arpanet_logical_map%2C_march_1977.png&quot; alt=&quot;1977년 3월의 아파넷 논리 구성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77년 3월의 아파넷 논리 구성도. 이 규모의 네트워크가 1983년 1월 1일 하루에 통신 규약을 바꿨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업계는 그 뒤 반대 방향으로 갔다. 플래그 데이는 위험하고 비싸다는 것이 교훈으로 남았고, 이후의 대형 전환은 옛 방식과 새 방식이 공존하도록 설계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가장 큰 실험이 IPv6다.&lt;/b&gt; 인터넷 주소 체계를 바꾸는 이 작업은 처음부터 플래그 데이를 피하도록 설계됐다. 한 기계가 옛 주소와 새 주소를 동시에 갖는 '듀얼 스택' 방식이라, 아무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무엇을 할 필요가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대가는 시간이다. 규격이 나온 것이 1990년대 중반인데, 2026년 측정치가 이렇다. 구글이 자사 서비스 접속으로 재는 값이 3월에 50퍼센트를 넘었고, APNIC은 43퍼센트, 클라우드플레어는 40퍼센트로 잡는다. 세는 방식이 달라 10퍼센트포인트쯤 벌어지지만 자릿수는 같다. &lt;b&gt;30년이 지나도 절반 언저리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포스텔의 지표로 보면 이 상태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옛 방식만 아는 쪽과 새 방식만 아는 쪽의 곱이 최대에 가까운 구간을, 인터넷은 30년째 지나가고 있다. 다만 도로와 달리 그 비용이 사고가 아니라 중계 장비와 이중 운영이라는 형태로 청구되기 때문에 견딜 만한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루를 피한 값은 사라지지 않고 분할 납부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하루가-산-것과-사지-못한-것&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하루가 산 것과 사지 못한 것&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5/Dagen_H.svg/960px-Dagen_H.svg.png&quot; alt=&quot;다겐 H 로고&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다겐 H 로고. 전환을 앞둔 4년 동안 이 표시는 표지판뿐 아니라 우유팩과 장갑, 속옷에까지 찍혔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환 직후의 성적은 좋았다. 이튿날 월요일 사고는 125건으로 평소 월요일보다도 적었고, 자동차 보험 청구는 40퍼센트 줄었다. &lt;b&gt;그런데 1969년이 되자 사고율은 전환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이슬란드도 같았다. 전환 직후 사고가 잠시 줄었다가, 전환 이전의 추세선이 예측하던 값으로 복귀했다. 두 나라에서 같은 곡선이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설명은 대체로 하나로 모인다. 줄어든 것은 도로의 위험이 아니라 운전자의 확신이었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쪽에서 운전하는 동안 사람들은 느리게, 조심스럽게 달렸다. 익숙해지자 원래대로 돌아갔다. 안전 조치가 사람의 행동 변화로 상쇄된다는 위험 보상 논의에서 다겐 H는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다만 이것은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 관측이므로, 이 한 건이 그 이론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래서 플래그 데이가 산 것은 안전이 아니다. 전환 그 자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루를 잘 넘기는 일과 그 뒤가 나아지는 일은 다른 문제다. 스웨덴이 4년과 6억 크로나로 산 것은 좌우가 섞이는 시간을 10분으로 줄인 것이고,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이웃 나라들과 같은 규칙이었다. 사고 감소는 애초에 이 사업의 약속이 아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하지 않기로 한 나라도 있다.&lt;/b&gt; 영국은 1969년에 우측통행 전환 비용을 계산했다. 2억 6,400만 파운드가 나왔다. 표지판과 노면 표시, 일부 고속도로 분기점 재시공, 버스 교체까지 넣은 값이다. 오늘날 화폐로는 60억 파운드 안팎으로 환산된다. 영국은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결정 때문에 세계는 여전히 두 규칙으로 나뉜 채다. 인도와 일본, 영국과 호주가 한쪽에 있고 나머지가 다른 쪽에 있다. 국경마다 방향이 바뀌는 지점이 있고, 그런 곳에는 차선을 꼬아 넘기는 전용 교차로가 지어져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동시 전환은 늘 같은 모양의 반대에 부딪힌다. 스웨덴에서는 국민투표 83퍼센트였고, 사모아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두 경우 모두 정부가 밀어붙였고 두 경우 모두 전환 당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반대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변경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새 규칙이 아니라 &lt;b&gt;바뀌는 동안의 시간&lt;/b&gt;이고, 그 시간을 짧게 만드는 일은 정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스웨덴이 4년 동안 만든 것은 새 규칙이 아니었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각에 온 나라가 함께 옮겨간다는 사실, 그 하나였다. 규칙은 그날 새벽 5시에 이미 바뀌어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다겐 H와 스웨덴: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agen_H&quot;&gt;Wikipedia &amp;mdash; Dagen H&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1955_Swedish_driving_side_referendum&quot;&gt;Wikipedia &amp;mdash; 1955 Swedish driving side referendum&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sv.wikipedia.org/wiki/Lars_Ski%C3%B6ld&quot;&gt;스웨덴어 위키백과 &amp;mdash; Lars Ski&amp;ouml;ld&lt;/a&gt;&lt;br /&gt;- 아이슬란드: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dagurinn&quot;&gt;Wikipedia &amp;mdash; H-dagurin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icelandreview.com/news/iceland-marks-50-years-driving-the-right/&quot;&gt;Iceland Review &amp;mdash; Iceland Marks 50 Years of Driving on the Right&lt;/a&gt;&lt;br /&gt;- 오스트리아&amp;middot;체코슬로바키아의 부분 전환: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Switch_to_right-hand_traffic_in_Czechoslovakia&quot;&gt;Wikipedia &amp;mdash; Switch to right-hand traffic in Czechoslovaki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helocal.at/20210831/why-austria-changed-from-left-to-right-sided-traffic-on-a-state-by-state-basis&quot;&gt;The Local Austria &amp;mdash; Why Austria changed from left to right sided traffic on a state-by-state basi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radio.cz/en/section/letter/why-czechs-drive-on-the-right&quot;&gt;Radio Prague International &amp;mdash; Why Czechs drive on the right&lt;/a&gt;&lt;br /&gt;- 미얀마: &lt;a href=&quot;https://www.irrawaddy.com/specials/on-this-day/day-myanmar-started-driving-right.html&quot;&gt;The Irrawaddy &amp;mdash; The Day Myanmar Started Driving on the Righ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coconuts.co/yangon/news/did-you-know-myanmar-switched-driving-right-hand-side-road-46-years-ago-week/&quot;&gt;Coconuts Yangon &amp;mdash; Myanmar switched to driving on the right-hand side 46 years ago&lt;/a&gt;&lt;br /&gt;- 오키나와 730: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730_(transport)&quot;&gt;Wikipedia &amp;mdash; 730 (transpor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730-monument&quot;&gt;Atlas Obscura &amp;mdash; 40 Years Ago, Okinawans Returned to Driving on the Left&lt;/a&gt;&lt;br /&gt;- 사모아: &lt;a href=&quot;https://www.aljazeera.com/news/2009/9/7/samoa-set-to-switch-road-lanes&quot;&gt;Al Jazeera &amp;mdash; Samoa set to switch road lanes (2009-09-07)&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ljazeera.com/news/2009/9/8/no-glitch-in-samoa-driving-switch&quot;&gt;Al Jazeera &amp;mdash; No glitch in Samoa driving switch (2009-09-08)&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jalopnik.com/2229382/samoa-switch-to-driving-on-the-left-2009-used-car-imports/&quot;&gt;Jalopnik &amp;mdash; Why Did Samoa Switch To Driving On The Left In 2009?&lt;/a&gt;&lt;br /&gt;- 날짜변경선&amp;middot;유로&amp;middot;윤초: &lt;a href=&quot;https://www.timeanddate.com/news/time/samoa-dateline.html&quot;&gt;timeanddate &amp;mdash; Samoa Skips a D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ecb.europa.eu/euro/changeover/2002/html/index.en.html&quot;&gt;European Central Bank &amp;mdash; Initial changeover (2002)&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phys.org/news/2022-11-global-timekeepers-vote-scrap.html&quot;&gt;phys.org &amp;mdash; Global timekeepers vote to scrap leap second by 2035&lt;/a&gt;&lt;br /&gt;- 플래그 데이와 아파넷: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Flag_day_(computing)&quot;&gt;Wikipedia &amp;mdash; Flag day (computing)&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www.catb.org/jargon/html/F/flag-day.html&quot;&gt;Jargon File &amp;mdash; flag d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rfc-editor.org/rfc/rfc801.txt&quot;&gt;RFC 801 &amp;mdash; NCP/TCP Transition Plan (1981-11)&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internetsociety.org/blog/2016/09/final-report-on-tcpip-migration-in-1983/&quot;&gt;Internet Society &amp;mdash; Final report on TCP/IP migration in 1983&lt;/a&gt;&lt;br /&gt;- 위험 보상과 영국의 계산: &lt;a href=&quot;https://www.econlib.org/what-the-peltzman-effect-is-and-isnt/&quot;&gt;Econlib &amp;mdash; What the Peltzman Effect Is and Isn'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orldstandards.eu/cars/britain-gave-up-driving-left/&quot;&gt;worldstandards.eu &amp;mdash; What if Britain gave up driving on the left?&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특집, 다겐H, 우측통행, 플래그데이, 아파넷, TCPIP, 730오키나와, 사모아, 동시전환&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특집</category>
      <category>730오키나와</category>
      <category>tcpip</category>
      <category>다겐H</category>
      <category>동시전환</category>
      <category>사모아</category>
      <category>아파넷</category>
      <category>오늘의특집</category>
      <category>우측통행</category>
      <category>플래그데이</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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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historypick.tistory.com/50#entry50comment</comments>
      <pubDate>Thu, 3 Sep 2026 07:41: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9월 3일 오늘의 역사: 새벽 5시에 차선을 바꾼 나라, 행운의 날에 눈감은 호국경</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49</link>
      <description>&lt;h2 id=&quot;9월-3일-오늘의-역사-새벽-5시에-차선을-바꾼-나라-행운의-날에-눈감은-호국경&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9월 3일 오늘의 역사: 새벽 5시에 차선을 바꾼 나라, 행운의 날에 눈감은 호국경&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67년 9월 3일 새벽 4시 50분, 스웨덴의 모든 차가 길 위에 멈춰 섰다. 10분 뒤 온 나라가 반대편 차선으로 다시 출발했다. 화성 벌판에 내려앉은 서리, 빌린 신분증 한 장으로 지나간 하루, 자기 행운의 날에 눈을 감은 남자까지 9월 3일의 다섯 장면이다.&lt;/p&gt;
&lt;h2 id=&quot;①-1967--온-나라가-10분-만에-차선을-바꿨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① 1967 &amp;mdash; 온 나라가 10분 만에 차선을 바꿨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25&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rmyGu/dJMcagGUJCI/4CP4aSnj3KdFQpH0uzRwA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rmyGu/dJMcagGUJCI/4CP4aSnj3KdFQpH0uzRwA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rmyGu/dJMcagGUJCI/4CP4aSnj3KdFQpH0uzRwA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myGu%2FdJMcagGUJCI%2F4CP4aSnj3KdFQpH0uzRwA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625&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625&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전환 당일 스톡홀름 쿵스가탄. 얀 콜시외 촬영.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67년 9월 3일 일요일 새벽, 스웨덴의 도로는 비어 있었다.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꼭 필요한 차량 외에는 통행이 금지됐다. 스톡홀름과 말뫼는 더 길어서 &lt;b&gt;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일요일 오후 3시까지&lt;/b&gt; 막혔다. 교차로를 통째로 뜯어고칠 시간이 필요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시 50분, 도로에 남아 있던 차들이 전부 멈춰 섰다. 운전자들은 차를 오른쪽 차선으로 옮긴 뒤 한 번 더 정지했다. &lt;b&gt;다시 출발이 허용된 시각은 5시 정각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하루의 이름이 다겐 H(Dagen H)다. '우측통행 전환'을 뜻하는 스웨덴어 단어의 첫 글자를 땄다. 좌측통행 국가였던 스웨덴은 이 10분 사이에 우측통행 국가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문제는 국민이 반대했다는 것이다.&lt;/b&gt; 1955년 국민투표에서 &lt;b&gt;83퍼센트가 좌측통행 유지에 표를 던졌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럼에도 정부는 1963년 5월 10일 의회에서 전환안을 통과시켰다. 근거는 세 가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째, 이웃한 노르웨이와 핀란드가 모두 우측통행이었고 국경을 넘나드는 차량이 &lt;b&gt;연간 500만 대&lt;/b&gt;에 달했다. 둘째, 스웨덴에 굴러다니는 차의 &lt;b&gt;90퍼센트 이상이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좌핸들 차&lt;/b&gt;였다. 좌측통행 도로에서 좌핸들 차로 추월하면 맞은편이 보이지 않는다. 셋째, 차량 대수가 50만에서 150만으로 늘었고 1975년에는 280만 대가 예상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준비에는 4년이 걸렸다. &lt;b&gt;표지판 35만 개를 갈아야 했고 그중 2만 개가 스톡홀름에 있었다.&lt;/b&gt; 노면의 노란 선은 검은 테이프로 덮어두고 그 아래에 새 흰 선을 미리 그려놓았다가, 당일 테이프만 걷어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버스는 더 큰일이었다. 문이 오른쪽에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lt;b&gt;1,000대 넘는 버스를 새로 사들이고 8,000대는 양쪽에 문을 내는 개조를 했다.&lt;/b&gt; 쓸모없어진 좌측통행 버스들은 파키스탄과 케냐로 팔려 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홍보는 집요했다. H 로고를 우유팩에 찍었고 속옷에도 넣었다. 장갑과 스티커를 나눠 줬다. 텔레비전에서는 노래 경연을 열었는데, 우승곡 제목이 &lt;b&gt;「스벤손, 오른쪽으로 붙어」&lt;/b&gt;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과는 뜻밖이었다. &lt;b&gt;전환 당일 사고는 157건, 그중 부상자가 난 것은 32건이다.&lt;/b&gt; 이튿날 월요일 사고는 125건으로, 평소 월요일의 130~198건보다 오히려 적었다. &lt;b&gt;사망자는 없었다.&lt;/b&gt; 자동차 보험 청구는 40퍼센트 줄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러나 1969년이 되자 사고율은 전환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lt;/b&gt; 안전해진 것은 도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긴장이었고, 긴장은 2년을 못 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듬해 아이슬란드가 같은 일을 했다. 1968년 5월 26일, 그곳에서는 이 날을 H-다구린이라 부른다. 4년을 준비한 나라가 실행은 왜 10분에 몰아넣었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50&quot;&gt;특집에서 따로 짚었다&lt;/a&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②-1976--화성에-내려앉은-서리&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② 1976 &amp;mdash; 화성에 내려앉은 서리&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f/Ice_on_Mars_Utopia_Planitia_%28PIA00571%29.jpg/960px-Ice_on_Mars_Utopia_Planitia_%28PIA00571%29.jpg&quot; alt=&quot;바이킹 2호 착륙선이 촬영한 유토피아 평원의 서리&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바이킹 2호 착륙선이 유토피아 평원에서 촬영한 지면의 서리. 미 항공우주국&amp;middot;제트추진연구소.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75년 9월 9일에 떠난 바이킹 2호는 1976년 8월 7일 화성 궤도에 들어섰다. 착륙선이 궤도선에서 분리된 것은 9월 3일 세계시 20시 19분, &lt;b&gt;화성 표면에 닿은 시각은 같은 날 22시 37분 50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원래 목표는 시도니아였다. 먼저 도착한 바이킹 1호 궤도선이 찍어 보낸 사진에서 그곳 지형이 위험해 보이자, &lt;b&gt;계획을 접고 궤도에 올라간 뒤 착륙지를 다시 골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새로 정한 곳이 북위 48도의 유토피아 평원이다. 1호 착륙지에서 &lt;b&gt;약 6,460킬로미터&lt;/b&gt; 떨어진, 더 평평하고 돌이 많은 벌판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착지는 완벽하지 않았다. &lt;b&gt;다리 하나가 돌 위에 얹히는 바람에 착륙선이 8.2도 기울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운 채로도 이 기계는 예상 밖의 자리를 차지했다. 바이킹 1호에 실린 지진계는 발사&amp;middot;비행 중의 진동을 막던 고정장치가 착륙 후 풀리지 않아 끝내 작동하지 못했다. &lt;b&gt;정상 작동한 것은 2호의 지진계뿐이었고, 그것이 오랫동안 화성에서 지진 자료를 보낸 유일한 기계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은 겨울에 찍혔다. 붉은 자갈밭 위에 얇게 내려앉은 &lt;b&gt;흰 서리&lt;/b&gt;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생명 탐색 실험의 결과는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않았다. 유기물을 찾는 기체 크로마토그래프-질량분석기와 기체교환 실험은 음성이었는데, &lt;b&gt;표지 방출 실험만 양성 반응을 냈다.&lt;/b&gt; 무기 화학반응으로 설명된다는 견해가 다수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궤도선은 1978년 7월 25일까지 약 700회를 돌며 1만 6천 장 가까운 사진을 보냈다. &lt;b&gt;착륙선은 1980년 4월 12일 배터리가 바닥나면서 멈췄다.&lt;/b&gt; 화성의 날로 1,281일을 버틴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력이 다하면 탐사선은 그렇게 끝난다. 이듬해 발사돼 지금도 신호를 보내는 보이저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끄며 버텨왔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22&quot;&gt;꺼지는 순서를 정하는 일&lt;/a&gt;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③-1838--빌린-신분증으로-지나간-하루&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③ 1838 &amp;mdash; 빌린 신분증으로 지나간 하루&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1/Frederick_Douglass_by_Samuel_J_Miller%2C_1847-52.png/960px-Frederick_Douglass_by_Samuel_J_Miller%2C_1847-52.png&quot; alt=&quot;1840년대 후반에 촬영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은판사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새뮤얼 J. 밀러가 1847~1852년에 촬영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은판사진. 탈출로부터 10년 안팎 뒤의 모습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38년 9월 3일, 볼티모어에서 스무 살 청년 하나가 북행 기차에 올랐다. 노예 신분이었던 프레더릭 베일리(Frederick Bailey), 뒷날의 &lt;b&gt;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lt;/b&gt;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가 입은 것은 선원 복장이었다. &lt;b&gt;붉은 셔츠와 방수천으로 만든 타폴린 모자,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lt;/b&gt; 붉은 셔츠는 자유 흑인 여성이자 재봉사였던 앤 머리(Anna Murray)가 지어 준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머리는 차표 값도 마련했다. &lt;b&gt;자기 깃털 침대를 팔았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품에는 서류 한 장이 있었다. 자유 흑인 선원의 &lt;b&gt;'선원 보호증'&lt;/b&gt;을 빌린 것이다. 소지자의 인상착의가 적혀 있었는데, 그 인상착의는 더글러스와 맞지 않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적었다. &lt;b&gt;&quot;차장이 그 종이를 꼼꼼히 봤다면 나와는 아주 다르게 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서류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그는 매표창구를 피했다. &lt;b&gt;막 출발하는 기차에 뛰어올라 검표를 차 안에서 받는 쪽을 택했다.&lt;/b&gt; 차장이 서류를 확인하러 왔을 때, 그는 선원은 자유 증명서를 배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차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증서 위쪽에 큼직하게 찍힌 독수리 문양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다음이 더 아슬아슬했다. 서스쿼해나강을 나룻배로 건널 때 그를 아는 사람이 말을 걸었고, 갈아탄 기차의 맞은편 선로에서는 예전 고용주가 보였다. &lt;b&gt;볼티모어의 독일인 대장장이 하나는 그를 알아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델라웨어를 지나 필라델피아까지는 증기선, 거기서 뉴욕까지는 다시 기차였다. &lt;b&gt;모든 여정이 24시간 안에 끝났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뉴욕에서는 흑인 활동가 데이비드 러글스(David Ruggles)가 그를 숨겨 줬다. 앤 머리가 볼티모어에서 올라왔고, 두 사람은 &lt;b&gt;9월 15일 결혼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부부는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로 옮겼다. 그곳의 네이선 존슨(Nathan Johnson)이 성을 하나 권했다. 월터 스콧의 시 「호수의 여인」에 나오는 이름, &lt;b&gt;더글러스였다.&lt;/b&gt; 추적을 피하려 이름을 몇 번 바꾼 끝에 정착한 성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845년에 낸 첫 자서전에서 그는 &lt;b&gt;탈출 방법을 일부러 적지 않았다.&lt;/b&gt; 경로가 알려지면 뒤따를 사람들의 길이 막히고, 도와준 이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것은 노예제가 끝나고도 한참 뒤인 &lt;b&gt;1881년 「생애와 시대」에서였다.&lt;/b&gt; 43년 만이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④-1783--절반만-그려진-그림&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④ 1783 &amp;mdash; 절반만 그려진 그림&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e/Treaty_of_Paris_by_Benjamin_West_1783.jpg/960px-Treaty_of_Paris_by_Benjamin_West_1783.jpg&quot; alt=&quot;벤저민 웨스트의 미완성작 「영국과의 예비 강화 협상에 나선 미국 대표단」&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벤저민 웨스트가 1783년에 그리다 만 「영국과의 예비 강화 협상에 나선 미국 대표단」. 오른쪽이 비어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783년 9월 3일, 파리의 오텔 되르크에서 문서 하나에 서명이 이뤄졌다. 지금의 &lt;b&gt;뤼 자코브 56번지&lt;/b&gt;다. 미국 독립전쟁을 끝낸 파리 조약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국 쪽에서는 존 애덤스(John Adams),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존 제이(John Jay) 세 사람이 이름을 적었다.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대리한 사람은 &lt;b&gt;데이비드 하틀리(David Hartley) 한 명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조약의 뼈대는 이미 열 달 전에 잡혀 있었다. 예비 조항이 1782년 11월 30일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lt;b&gt;문제는 그 교섭 방식이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국 대표단은 프랑스와 보조를 맞추라는 대륙회의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프랑스를 빼고 영국과 따로 앉았다. 동맹국의 이해가 걸리기 전에 국경선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조약이 그은 서쪽 경계는 &lt;b&gt;미시시피강&lt;/b&gt;이었다. 북쪽은 오대호를 따라 오늘날의 캐나다 국경과 대체로 겹쳤고, 남쪽은 플로리다에 닿았다. 뉴펀들랜드 그랜드뱅크스 어장의 &lt;b&gt;조업권&lt;/b&gt;도 함께 받아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제1조의 문장은 특히 공들여 쓰였다. 영국 국왕이 미국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lt;b&gt;13개 주를 하나하나 이름으로 부르며 자유롭고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인정한다&lt;/b&gt;는 형식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반대로 영국이 요구한 조항은 흐지부지됐다. 몰수된 왕당파 재산을 돌려주라는 대목이 &lt;b&gt;각 주에 '진지하게 권고한다'는 표현에 그쳤고,&lt;/b&gt; 주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날 베르사유에서는 영국이 프랑스, 에스파냐와 각각 다른 조약에 서명했다. &lt;b&gt;하루에 전쟁 하나가 세 갈래로 정리된 셈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비준은 느렸다. 애너폴리스에 있던 대륙회의가 1784년 1월 14일, 영국이 4월 9일에 비준했고 &lt;b&gt;비준서 교환은 5월 12일 파리에서 이뤄졌다.&lt;/b&gt; 지금까지 효력이 남아 있는 조항은 제1조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장면을 그리려 한 화가가 있었다. 벤저민 웨스트(Benjamin West)는 예비 협상에 나선 미국 대표단을 화폭에 앉혔다. 제이, 애덤스, 프랭클린, 그리고 헨리 로런스와 프랭클린의 손자까지 왼쪽에 늘어서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오른쪽은 비어 있다.&lt;/b&gt; 영국 대표가 끝내 자세를 잡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대로 미완성으로 남았고, 조약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그림이 됐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⑤-1658--행운의-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⑤ 1658 &amp;mdash; 행운의 날&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4/Oliver_Cromwell_by_Samuel_Cooper.jpg/960px-Oliver_Cromwell_by_Samuel_Cooper.jpg&quot; alt=&quot;새뮤얼 쿠퍼가 그린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새뮤얼 쿠퍼가 그린 올리버 크롬웰의 초상.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에게 9월 3일은 특별한 날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1650년 9월 3일&lt;/b&gt;, 그가 이끈 신형군이 던바에서 스코틀랜드군을 꺾었다. &lt;b&gt;정확히 1년 뒤인 1651년 9월 3일&lt;/b&gt;에는 우스터에서 이겼다. 처형된 국왕의 아들을 다시 왕좌에 앉히려던 시도가 이 하루로 끝났고, 삼왕국 전쟁의 마지막 큰 싸움도 여기서 마무리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번의 9월 3일이 그를 잉글랜드의 통치자로 만들었다. 1653년부터 그의 직함은 &lt;b&gt;호국경&lt;/b&gt;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58년 여름, 그의 몸이 무너졌다. 말라리아성 열병이 되풀이됐고 신장과 요로 질환이 겹쳤다. 8월에는 딸 엘리자베스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8월 30일 밤, 잉글랜드 전역에 큰 폭풍이 몰아쳤다. 집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았다. &lt;b&gt;며칠 뒤부터 왕당파 사이에서 악마가 크롬웰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는 말이 돌았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작 그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lt;b&gt;9월 3일은 자기 행운의 날이라는 것이 이유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는 그날 런던 화이트홀에서 숨을 거뒀다. &lt;b&gt;59세였다.&lt;/b&gt; 던바에서 여덟 해, 우스터에서 일곱 해가 지난 같은 날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동시대인들이 이 우연을 놓칠 리 없었다. 승리의 날짜와 사망의 날짜가 겹쳤다는 이야기는 곧바로 퍼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들 &lt;b&gt;리처드 크롬웰&lt;/b&gt;이 호국경을 물려받았지만 군과 의회를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고 &lt;b&gt;아홉 달 만인 1659년 5월에 물러났다.&lt;/b&gt; 이듬해 왕정이 복고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뒷이야기가 남아 있다. &lt;b&gt;1661년 1월 30일&lt;/b&gt;, 찰스 1세가 처형된 날짜에 맞춰 크롬웰의 유해가 무덤에서 꺼내졌고 사후에 반역자로 처형됐다. 머리는 웨스트민스터홀 지붕에 오래 걸려 있다가 떨어진 뒤 여러 개인 소장자의 손을 거쳤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것이 땅에 묻힌 것은 1960년이다.&lt;/b&gt; 그가 다닌 케임브리지 시드니서식스 칼리지 예배당, 위치를 표시하지 않은 자리였다. 죽은 지 302년 만이었다.&lt;br /&gt;&lt;br /&gt;&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h3 id=&quot;오늘의-단신&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오늘의 단신&lt;/h3&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2016&lt;/b&gt;: 미국과 중국이 파리기후협정 비준서를 같은 자리에서 낸다 &amp;mdash; 항저우 G20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비준서를 건넸다. 두 나라를 합치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40퍼센트다. 협정은 그해 11월 발효했다&lt;/li&gt;
&lt;li&gt;&lt;b&gt;1981&lt;/b&gt;: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이 발효한다 &amp;mdash; 1979년 12월 유엔 총회가 채택한 뒤 스무 번째 비준국이 나오면서 효력이 생겼다. 여성의 권리를 다룬 최초의 포괄적 국제 조약으로 꼽히며, 한국은 1984년에 가입했다&lt;/li&gt;
&lt;li&gt;&lt;b&gt;1971&lt;/b&gt;: 카타르가 독립한다 &amp;mdash; 1916년부터 이어진 영국 보호령 지위가 끝났다. 다만 지금 카타르의 국경일은 이날이 아니다. 2007년 법으로 &lt;b&gt;12월 18일&lt;/b&gt;이 국경일이 됐는데, 1878년 자심 빈 무함마드가 나라를 하나로 묶은 날을 기린다는 이유였다&lt;/li&gt;
&lt;li&gt;&lt;b&gt;1950&lt;/b&gt;: 첫 포뮬러 원 세계 챔피언이 정해진다 &amp;mdash; 몬차에서 열린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알파로메오를 몬 주세페 '니노' 파리나(Giuseppe Farina)가 우승하며 원년 챔피언이 됐다. 팀 동료 후안 마누엘 판지오와의 경쟁을 마지막 경기에서 뒤집은 결과다&lt;/li&gt;
&lt;li&gt;&lt;b&gt;1939&lt;/b&gt;: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amp;mdash; 폴란드 침공 이틀 뒤였다.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도 같은 날 참전을 선언했다. 인도 부왕은 지방 입법부와 상의 없이 인도의 참전을 발표했고, 이 절차 문제가 이후 인도 국민회의와 영국의 갈등을 키웠다&lt;/li&gt;
&lt;li&gt;&lt;b&gt;1935&lt;/b&gt;: 자동차가 처음으로 시속 300마일을 넘는다 &amp;mdash; 유타주 보너빌 소금평원에서 맬컴 캠벨(Malcolm Campbell)이 블루버드를 몰았다. 한쪽 방향 주행에서 시속 304.331마일을 찍었고, 왕복 평균으로 계산한 공식 기록은 301.129마일(약 484.6km/h)이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지상 속도 기록이다&lt;/li&gt;
&lt;li&gt;&lt;b&gt;1933&lt;/b&gt;: 소련의 최고봉에 사람이 처음 오른다 &amp;mdash; 타지크-파미르 합동 탐험대의 예브게니 아발라코프(Yevgeniy Abalakov)가 해발 7,495미터 정상에 섰다. 봉우리 이름은 스탈린봉에서 공산주의봉으로, 다시 이스모일 소모니봉으로 두 번 바뀌었다&lt;/li&gt;
&lt;li&gt;&lt;b&gt;1895&lt;/b&gt;: 미국 미식축구 최초의 '공개된' 프로 선수가 나온다 &amp;mdash; 펜실베이니아 라트로브의 팀이 지네트를 12대 0으로 이긴 경기에서 존 브랄리어(John Brallier)가 10달러와 경비를 받았다. 오랫동안 최초의 프로로 불렸지만, 1892년에 이미 헤펠핑거가 500달러를 받은 사실이 뒤에 확인됐다. 브랄리어는 최초로 돈을 받은 선수가 아니라 최초로 그것을 숨기지 않은 선수였다&lt;/li&gt;
&lt;li&gt;&lt;b&gt;1843&lt;/b&gt;: 그리스에서 헌법이 만들어진다 &amp;mdash; 아테네에서 일어난 봉기로 오톤 왕이 헌법 제정을 받아들였다(당시 그리스가 쓰던 구력 기준 9월 3일). 왕궁 앞 광장은 이 일을 따 신타그마, 곧 '헌법' 광장이 됐고 지금도 그 이름이다&lt;/li&gt;
&lt;li&gt;&lt;b&gt;301&lt;/b&gt;: 산마리노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amp;mdash; 박해를 피해 온 석공 마리누스가 티타노산에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전승이다. 사료로 뒷받침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산마리노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꼽힌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사건 데이터: &lt;a href=&quot;https://api.wikimedia.org/feed/v1/wikipedia/en/onthisday/events/09/03&quot;&gt;Wikimedia On This Day API&lt;/a&gt; &amp;middot;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lt;br /&gt;- 다겐 H: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agen_H&quot;&gt;Wikipedia &amp;mdash; Dagen H&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1955_Swedish_driving_side_referendum&quot;&gt;Wikipedia &amp;mdash; 1955 Swedish driving side referendum&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rarehistoricalphotos.com/dagen-h-sweden-1967/&quot;&gt;Rare Historical Photos &amp;mdash; Dagen H: Photos from the Day Sweden Switched Sides of the Road, 1967&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agerty.com/media/automotive-history/dagen-h-the-day-swedens-drivers-crossed-a-line/&quot;&gt;Hagerty &amp;mdash; Dagen H: The day Sweden's drivers crossed a line&lt;/a&gt;&lt;br /&gt;- 바이킹 2호: &lt;a href=&quot;https://science.nasa.gov/mission/viking-2/&quot;&gt;NASA Science &amp;mdash; Viking 2&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Viking_2&quot;&gt;Wikipedia &amp;mdash; Viking 2&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airandspace.si.edu/stories/editorial/1976-2026-celebrating-50-years-nasas-viking-missions&quot;&gt;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amp;mdash; Celebrating 50 Years of NASA's Viking Mission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agupub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029/2022JE007660&quot;&gt;JGR Planets &amp;mdash; Viking Marsquakes 1976: Seismic Archaeology&lt;/a&gt;&lt;br /&gt;-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탈출: &lt;a href=&quot;https://www.history.com/articles/frederick-douglass-escapes-slavery&quot;&gt;HISTORY &amp;mdash; How Frederick Douglass Escaped Slaver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housedivided.dickinson.edu/sites/ugrr/frederick-douglass-escape-1838/&quot;&gt;Underground Railroad Online Handbook &amp;mdash; Frederick Douglass Escape (1838)&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athan_Johnson_(abolitionist)&quot;&gt;Wikipedia &amp;mdash; Nathan Johnson (abolitionist)&lt;/a&gt;&lt;br /&gt;- 파리 조약: &lt;a href=&quot;https://guides.loc.gov/treaty-of-paris&quot;&gt;Library of Congress &amp;mdash; Treaty of Paris: Primary Documents in American Histor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reaty_of_Paris_(1783)&quot;&gt;Wikipedia &amp;mdash; Treaty of Paris (1783)&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656864&quot;&gt;The Met &amp;mdash; Benjamin West, American Commissioners of the Preliminary Peace Negotiations with Great Britain&lt;/a&gt;&lt;br /&gt;- 크롬웰: &lt;a href=&quot;https://www.rmg.co.uk/stories/topics/how-did-oliver-cromwell-die&quot;&gt;Royal Museums Greenwich &amp;mdash; How did Oliver Cromwell di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Oliver_Cromwell&quot;&gt;Wikipedia &amp;mdash; Oliver Cromwell&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the-morbid-journey-of-cromwells-traveling-head&quot;&gt;Atlas Obscura &amp;mdash; The Morbid Journey of Cromwell's Traveling Head&lt;/a&gt;&lt;br /&gt;- 단신 보강: &lt;a href=&quot;https://news.un.org/en/story/2016/09/538192-historic-ceremony-un-chief-hails-china-us-formally-joining-paris-climate&quot;&gt;UN News &amp;mdash; In historic ceremony, UN chief hails China, US for formally joining Paris climate agreemen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National_Day_(Qatar)&quot;&gt;Wikipedia &amp;mdash; National Day (Qata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1950_Italian_Grand_Prix&quot;&gt;Wikipedia &amp;mdash; 1950 Italian Grand Prix&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profootballhof.com/football-history/football-history/1869-1939/1895&quot;&gt;Pro Football Hall of Fame &amp;mdash; 1895: First Football Player to Turn Pro&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oldmachinepress.com/2019/07/05/blue-bird-lsr-car-part-4-campbell-railton-rolls-royce-1933-1935/&quot;&gt;Old Machine Press &amp;mdash; Blue Bird LSR Car: Campbell-Railton-Rolls-Royc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Yevgeniy_Abalakov&quot;&gt;Wikipedia &amp;mdash; Yevgeniy Abalakov&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역사, 9월3일, 다겐H, 바이킹2호, 프레더릭더글러스, 파리조약1783, 올리버크롬웰, 스웨덴우측통행&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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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다겐H</category>
      <category>바이킹2호</category>
      <category>스웨덴우측통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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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파리조약1783</category>
      <category>프레더릭더글러스</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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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 Sep 2026 07:30:5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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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떤 선은 지워졌고 어떤 선은 남았다: 일반명령 제1호가 그은 네 개의 경계</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48</link>
      <description>&lt;h2 id=&quot;어떤-선은-지워졌고-어떤-선은-남았다-일반명령-제1호가-그은-네-개의-경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어떤 선은 지워졌고 어떤 선은 남았다: 일반명령 제1호가 그은 네 개의 경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서 항복문서 서명이 끝난 뒤, 같은 날 일본 대본영이 예하 부대에 문서 한 장을 하달했다. 제목은 「일반명령 제1호」다. 항복문서가 전쟁의 끝을 선언했다면 이 문서는 그보다 훨씬 사무적인 일을 했다. 어느 지역의 일본군이 어느 연합국 지휘관에게 항복할지를 지역별로 지정한 것이다. 그 지정문 안에 위도 두 개가 적혀 있었다. 북위 38도와 북위 16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47&quot;&gt;9월 2일 오늘의 역사&lt;/a&gt;에서 미주리호 갑판의 23분과, 같은 날 함께 발효된 이 명령서의 한반도 조항을 짧게 다뤘다. 이 글은 명령서 자체를 본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이 선들을 그었는지, 그 초안이 발효되기까지 어떤 흥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같은 문서가 그은 선인데 왜 어떤 것은 몇 달 만에 지워지고 어떤 것은 80년이 지나도록 남았는지다. &lt;b&gt;흔히 인용되는 '30분'이 분단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선 위에 서로 다른 정부가 서기까지의 3년이 만들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30분과-벽걸이-지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30분과 벽걸이 지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45년 8월 10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중립국을 통해 타전했다. 워싱턴은 전쟁이 끝나는 시각을 예상보다 몇 주 앞당겨 잡아야 했고, 그 순간까지 한반도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미국의 계획은 사실상 없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 밤 국무&amp;middot;육군&amp;middot;해군 3부 조정위원회(SWNCC)가 소집됐다. 위원장 존 매클로이가 두 참모 장교에게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할 구역의 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찰스 본스틸과 딘 러스크였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661&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0rEE/dJMcadXC8Bu/z7Q80EqBMQWaq0EWQZApi0/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0rEE/dJMcadXC8Bu/z7Q80EqBMQWaq0EWQZApi0/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0rEE/dJMcadXC8Bu/z7Q80EqBMQWaq0EWQZApi0/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0rEE%2FdJMcadXC8Bu%2Fz7Q80EqBMQWaq0EWQZApi0%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661&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661&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딘 러스크. 1961년부터 1969년까지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다. 1945년 8월에는 육군 참모 장교로 3부 조정위원회 실무를 맡고 있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사람은 한국을 몰랐다. 참고할 자료도 없었다. 작전국 벽에 걸려 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아시아 지도를 놓고, 서울이 미국 구역에 들어가는 선을 찾았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소련군이 이미 한반도 북쪽으로 내려오고 있으니 소련이 받아들일 만큼 북쪽이어야 하고, 수도 서울은 남쪽에 있어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강이나 산맥 같은 자연 경계는 찾지 못했다.&lt;/b&gt; 그래서 위도선을 골랐다. 북위 38도는 한반도를 대략 반으로 나누면서 서울을 60마일쯤 남쪽에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러스크는 뒷날 회고록에서 이 선이 &lt;b&gt;&quot;경제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quot;&lt;/b&gt; 것임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고 적었다. 한국이 천 년 넘게 하나의 단위로 유지돼 온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lt;b&gt;&quot;거의 확실히 다른 선을 골랐을 것&quot;&lt;/b&gt; 이라고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장면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세부는 자료마다 어긋난다. 흔히 인용되는 &quot;두 대령이 30분 만에 그었다&quot;는 문장은 여러 층위의 서술이 뭉쳐진 것이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항목&lt;/th&gt;
&lt;th&gt;갈리는 서술&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날짜&lt;/td&gt;
&lt;td&gt;8월 10일 밤~11일 새벽(다수 연구&amp;middot;백과 항목) / &lt;b&gt;8월 14일&lt;/b&gt;(러스크 회고록 『As I Saw It』)&lt;/td&gt;
&lt;/tr&gt;
&lt;tr&gt;
&lt;td&gt;계급&lt;/td&gt;
&lt;td&gt;본스틸은 대령으로 일치 / 러스크는 대령&amp;middot;중령&amp;middot;소령으로 자료마다 다르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소요 시간&lt;/td&gt;
&lt;td&gt;&quot;30분을 받았다&quot;는 서술 / 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quot;촉박한 상황에서&quot;로만 적은 서술&lt;/td&gt;
&lt;/tr&gt;
&lt;tr&gt;
&lt;td&gt;지도&lt;/td&gt;
&lt;td&gt;벽에 걸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아시아 지도 / &quot;소형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quot;&lt;/td&gt;
&lt;/tr&gt;
&lt;tr&gt;
&lt;td&gt;결재 경로&lt;/td&gt;
&lt;td&gt;초안이 자정 이후 상급자 검토 &amp;rarr; 8월 13일 3부 조정위원회 채택&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의 어긋남은 특히 짚어 둘 만하다. &lt;b&gt;가장 널리 인용되는 1차 증언인 러스크 본인의 회고록이,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다르게 적고 있다.&lt;/b&gt; 46년 뒤에 쓴 기억이다. 문서 기록을 따르는 연구들은 8월 10일 밤에서 11일 새벽 사이로 잡는다. 이 글도 그쪽을 따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 가지 더. 한반도를 위도선으로 나누자는 발상 자체는 1945년이 처음이 아니었다. &lt;b&gt;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자리에서 일본 대표단이 러시아 측에 한반도 분할안을 꺼냈다가 거절당했다.&lt;/b&gt; 다만 그때 오간 선이 39도선이었는지 38도선이었는지는 자료가 갈린다. 러스크와 본스틸이 이 전례를 알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한-장의-문서-네-개의-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한 장의 문서, 네 개의 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명령서의 핵심은 1항이다. 여섯 개의 소항목으로 되어 있고, 각각이 지역과 항복 접수 지휘관을 짝지어 놓았다. 1945년 9월 2일 하달본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렇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조항&lt;/th&gt;
&lt;th&gt;대상 지역&lt;/th&gt;
&lt;th&gt;항복을 받는 지휘관&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a)&lt;/td&gt;
&lt;td&gt;중국(만주 제외)&amp;middot;타이완&amp;middot;&lt;b&gt;북위 16도 이북&lt;/b&gt; 프랑스령 인도차이나&lt;/td&gt;
&lt;td&gt;장제스&lt;/td&gt;
&lt;/tr&gt;
&lt;tr&gt;
&lt;td&gt;(b)&lt;/td&gt;
&lt;td&gt;만주&amp;middot;&lt;b&gt;북위 38도 이북&lt;/b&gt; 한반도&amp;middot;가라후토(사할린 남부)&amp;middot;쿠릴 열도&lt;/td&gt;
&lt;td&gt;소련 극동군 최고사령관&lt;/td&gt;
&lt;/tr&gt;
&lt;tr&gt;
&lt;td&gt;(c)&lt;/td&gt;
&lt;td&gt;안다만&amp;middot;니코바르&amp;middot;버마&amp;middot;타이&amp;middot;&lt;b&gt;북위 16도 이남&lt;/b&gt; 인도차이나&amp;middot;말라야&amp;middot;보르네오&amp;middot;네덜란드령 동인도&amp;middot;뉴기니&amp;middot;비스마르크&amp;middot;솔로몬&lt;/td&gt;
&lt;td&gt;동남아시아사령부 최고사령관 / 오스트레일리아군 사령관&lt;/td&gt;
&lt;/tr&gt;
&lt;tr&gt;
&lt;td&gt;(d)&lt;/td&gt;
&lt;td&gt;일본 위임통치 제도&amp;middot;류큐&amp;middot;오가사와라 등 태평양 도서&lt;/td&gt;
&lt;td&gt;미 태평양함대 사령관&lt;/td&gt;
&lt;/tr&gt;
&lt;tr&gt;
&lt;td&gt;(e)&lt;/td&gt;
&lt;td&gt;일본 본토와 부속 도서&amp;middot;&lt;b&gt;북위 38도 이남&lt;/b&gt; 한반도&amp;middot;필리핀&lt;/td&gt;
&lt;td&gt;미 태평양육군 총사령관(맥아더)&lt;/td&gt;
&lt;/tr&gt;
&lt;tr&gt;
&lt;td&gt;(f)&lt;/td&gt;
&lt;td&gt;&amp;mdash;&lt;/td&gt;
&lt;td&gt;위에 지정된 지휘관들만이 항복을 접수할 권한을 갖는다&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표를 세워 놓으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lt;b&gt;북위 38도 이남의 한반도는 일본 본토&amp;middot;필리핀과 같은 항에 묶여 있다.&lt;/b&gt; 문서의 문법으로는 &quot;어느 지휘관이 무장 해제를 집행하는가&quot;만 정한 것이지만, 그 결과 한반도 남쪽은 일본 본토와 같은 사령관 아래로 들어갔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0/1945_Korea_Administrative_Divisions_%2830252754834%29.jpg/960px-1945_Korea_Administrative_Divisions_%2830252754834%29.jpg&quot; alt=&quot;1945년 한반도 행정구역 지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45년 당시 한반도의 행정구역을 표시한 지도. 도(道) 경계는 위도선과 아무 관계가 없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서 어디에도 '점령 정책'이나 '통치', '국경'이라는 말은 없다. 다루는 범위는 무기를 어디에 내려놓고, 부대 배치를 누구에게 보고하고, 장비를 누가 접수하느냐까지다. 초안은 8월 15일 전후로 소련&amp;middot;영국&amp;middot;중국에 회람됐고, 트루먼이 &lt;b&gt;8월 17일&lt;/b&gt; 승인했다. 맥아더가 9월 2일 조인식 직후 일본 대표단에 교부했고, 대본영이 같은 날 예하에 하달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여기서 정해진 것은 위도 두 개뿐이다.&lt;/b&gt; 그 위도가 얼마나 오래 갈지, 그 선을 넘는 통행을 누가 관리할지, 선 양쪽에 무엇이 서게 될지는 어느 조항에도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스탈린이-고쳐-달라고-한-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스탈린이 고쳐 달라고 한 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승인과 하달 사이에 흥정이 한 번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미국이 초안을 회람하자 스탈린이 8월 16일자로 답신을 보냈다. 모스크바 발신 시각은 17일 새벽 3시 20분, 워싱턴의 소련 대사관 수신은 16일 밤 11시 35분으로 기록돼 있다. 요구는 두 가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째, &lt;b&gt;쿠릴 열도 전체를 소련군이 항복을 접수하는 구역에 넣을 것.&lt;/b&gt; 둘째, &lt;b&gt;홋카이도 북부를 소련군 접수 구역에 넣을 것.&lt;/b&gt; 두 번째 요구는 루모이와 구시로를 잇는 선을 기준으로 삼자는 구체적인 안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트루먼은 8월 18일에 답했다. 결과는 하나는 수용, 하나는 거절이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요구&lt;/th&gt;
&lt;th&gt;트루먼의 답&lt;/th&gt;
&lt;th&gt;명령서에 남은 것&lt;/th&gt;
&lt;th&gt;80년 뒤&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쿠릴 열도를 소련 접수 구역에&lt;/td&gt;
&lt;td&gt;&lt;b&gt;수용&lt;/b&gt;&lt;/td&gt;
&lt;td&gt;1항 (b)에 &quot;쿠릴 열도&quot;가 추가됐다&lt;/td&gt;
&lt;td&gt;러시아가 열도 전체를 실효 지배하고, 일본은 남쪽 네 섬을 '북방영토'로 요구한다. 두 나라는 아직 평화조약을 맺지 못했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홋카이도 북부를 소련 접수 구역에&lt;/td&gt;
&lt;td&gt;&lt;b&gt;거절&lt;/b&gt;&lt;/td&gt;
&lt;td&gt;일본 본토 네 섬 전부가 (e)에 남았다&lt;/td&gt;
&lt;td&gt;홋카이도는 분할되지 않았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미국의 역제안) 쿠릴 내 항공기지 권리&lt;/td&gt;
&lt;td&gt;스탈린에게 요청&lt;/td&gt;
&lt;td&gt;명령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lt;/td&gt;
&lt;td&gt;실현되지 않았다&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대목이 흥미로운 것은 &lt;b&gt;초안과 하달본을 비교하면 그 흥정의 흔적이 문면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lt;/b&gt; 위키소스에 남은 초안 (b)항은 &quot;만주, 북위 38도 이북 한반도, 가라후토&quot;까지다. 9월 2일 하달본 (b)항에는 그 뒤에 &quot;그리고 쿠릴 열도&quot;가 붙어 있다. 여섯 글자가 늘었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d/Kuril-Islands-Northern-Territories-of-Japan-Map.png/960px-Kuril-Islands-Northern-Territories-of-Japan-Map.png&quot; alt=&quot;쿠릴 열도 지도&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쿠릴 열도와 홋카이도 일대. 열도의 남쪽 끝 네 섬을 일본은 '북방영토'로 부른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스탈린의 회신은 트루먼의 답을 이해한다는 인사가 아니라, &quot;홋카이도 북부를 소련군 접수 구역에 포함해 달라는 소련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으로 이해한다&quot;는 확인으로 시작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한 요구는 받아들여져 오늘까지 풀리지 않은 영토 문제로 남았고, 다른 요구는 거절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lt;/b&gt; 두 결과 모두 항복 접수 구역을 정한다는 한 줄의 행정 문서에서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소련은-왜-이의를-달지-않았나&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소련은 왜 이의를 달지 않았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반도 조항에 대해서는 흥정이 없었다. 미국 쪽이 놀랐다고 기록될 만큼 소련은 38도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시의 군사적 형세만 놓고 보면 이것은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소련은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했고, 8월 12일에는 한반도 동북 해안에 병력이 들어왔으며, 8월 하순에는 평양에 도달해 있었다. 반면 &lt;b&gt;미군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는 오키나와에 있었다.&lt;/b&gt; 존 하지 중장의 24군단이 인천에 상륙한 것은 &lt;b&gt;9월 8일&lt;/b&gt;, 서울에서 항복을 접수한 것은 &lt;b&gt;9월 9일&lt;/b&gt;이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b/Hodge_Surrender_Japanese_Forces.jpg/960px-Hodge_Surrender_Japanese_Forces.jpg&quot; alt=&quot;1945년 9월 9일 서울에서 열린 항복 접수식&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45년 9월 9일 서울(당시 표기 경성)의 총독부 청사에서 열린 항복 접수식. 왼쪽에서 네 번째가 존 하지 중장이다. 미 해군 촬영.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즉 명령서가 발효된 날부터 미군이 도착할 때까지 남쪽에는 접수를 집행할 병력이 없었다. 실제로 소련군 일부는 38도선 이남까지 내려갔다가 9월 초에 선 위쪽으로 물러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소련이 왜 이 선을 받았는지에 대한 연구자들의 설명은 대체로 세 갈래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얻은 것이 충분했다.&lt;/b&gt; (b)항 하나로 만주&amp;middot;사할린 남부&amp;middot;쿠릴이 한꺼번에 소련 접수 구역이 됐다. 극동에 완충지대를 확보한다는 목표에는 38도선까지로도 부족하지 않았다.&lt;/li&gt;
&lt;li&gt;&lt;b&gt;다른 협상판이 있었다.&lt;/b&gt; 같은 시기 유럽 점령 지구 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태평양에서 미국의 안을 수용하는 것이 그쪽에서의 입지를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lt;/li&gt;
&lt;li&gt;&lt;b&gt;문서의 성격이 그랬다.&lt;/b&gt; 이것은 국경 조약이 아니라 항복 접수 구역 지정이었고, 양쪽 모두 그렇게 이해하고 서명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 번째가 이 글의 축과 맞닿는다. &lt;b&gt;1945년 8월에 이 선을 국경으로 읽은 사람은 양쪽 어디에도 없었다.&lt;/b&gt; 그것이 국경이 되는 데는 3년이 더 필요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선이-굳어-가는-3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선이 굳어 가는 3년&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카이로 선언(1943년 11월)의 문구는 &quot;적절한 시기에(in due course)&quot;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 빈칸을 채우려던 시도가 차례로 실패하는 3년이 이어진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시점&lt;/th&gt;
&lt;th&gt;일어난 일&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1943-12-01&lt;/td&gt;
&lt;td&gt;카이로 선언 &amp;mdash; &quot;적절한 시기에&quot; 한국의 독립&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5-09-02&lt;/td&gt;
&lt;td&gt;일반명령 제1호 하달&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5-09-08~09&lt;/td&gt;
&lt;td&gt;미 24군단 인천 상륙, 이튿날 서울에서 항복 접수&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5-11-04&lt;/td&gt;
&lt;td&gt;38도선 이남에 남은 황해도 옹진&amp;middot;연백 등이 경기도로 편입된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5-12&lt;/td&gt;
&lt;td&gt;모스크바 3상회의 &amp;mdash; 최대 5년의 4개국 신탁통치와 미소공동위원회 설치를 합의&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6-03~05&lt;/td&gt;
&lt;td&gt;1차 미소공동위원회 &amp;mdash; 협의 대상 정당의 범위에서 결렬&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6-05&lt;/td&gt;
&lt;td&gt;허가 없이 38도선을 넘는 통행이 금지된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7-05~08&lt;/td&gt;
&lt;td&gt;2차 미소공동위원회 &amp;mdash; 성과 없이 끝난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7-11-14&lt;/td&gt;
&lt;td&gt;유엔 총회 결의 112(II) &amp;mdash; 감시하 총선거를 권고&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8-05-10&lt;/td&gt;
&lt;td&gt;남쪽에서 총선거&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8-05-14&lt;/td&gt;
&lt;td&gt;정오, 북에서 남으로 보내던 송전이 끊긴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1948-08-15 / 09-09&lt;/td&gt;
&lt;td&gt;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표에서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째, &lt;b&gt;행정구역이 선에 맞춰 다시 그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이르다.&lt;/b&gt; 1945년 11월 4일, 38도선 이남에 걸린 황해도의 옹진&amp;middot;연백 일대가 경기도로 편입됐다. 강원도 쪽에서도 선에 잘린 군들이 남은 쪽 군에 통합됐다. 명령서가 하달된 지 두 달 만에, 위도선이 도(道) 경계를 고쳐 쓰기 시작한 것이다. 북쪽 군정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둘째, &lt;b&gt;선을 넘는 일이 '허가받아야 하는 일'이 된 시점이 1946년 5월이다.&lt;/b&gt; 항복 접수는 그 전해 가을에 이미 끝나 있었다. 접수가 끝났는데도 선이 남았고, 남은 선에 통행 관리가 붙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경제 쪽 숫자를 보면 이 선이 얼마나 인위적이었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식민지 시기 일본은 남쪽에 농업을, 북쪽에 중공업과 발전 설비를 배치했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한반도 연평균 발전량의 &lt;b&gt;약 92퍼센트&lt;/b&gt;가 북쪽 발전소에서 나왔다.&lt;/li&gt;
&lt;li&gt;1940년 인구는 뒷날 남쪽이 되는 지역에 약 1,560만 명, 북쪽이 되는 지역에 약 790만 명이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발전소와 소비지가, 공장과 농지가 갈렸다.&lt;/b&gt; 두 구역 사이의 물자 이동이 끊기면서 양쪽 모두 어려움을 겪었고, 1948년 5월 14일 정오에는 북에서 남으로 가던 송전이 중단됐다. 하지는 이것을 정치적 조치라고 항의했고, 북쪽은 전력 대금 정산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느 쪽 설명을 따르든 결과는 같다. &lt;b&gt;항복 접수를 위해 그은 선이, 3년 만에 전기를 끊을 수 있는 선이 되어 있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h2 id=&quot;지워진-선과-남은-선&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지워진 선과 남은 선&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문서가 그은 다른 선을 보면 38도선이 남은 이유가 거꾸로 드러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항 (a)와 (c)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북위 16도에서 갈랐다. 북쪽은 장제스의 중국군이, 남쪽은 마운트배튼의 동남아시아사령부가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기로 했다. 실제로 중국군 20만 명이 북부에 들어왔고, 영국군이 남부에 들어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런데 이 선은 1946년에 사라진다.&lt;/b&gt; 1946년 2월 28일 중-프 협정으로 프랑스군이 북부에서 중국군을 대신하기로 했고, 3월 6일 호찌민과 장 생트니 사이의 예비협정이 이어졌으며, 그해 안에 중국군이 물러났다. 장제스에게는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두 접수 구역이 하나의 세력에게 넘어가자 선을 유지할 주체가 없어졌다.&lt;/p&gt;
&lt;table data-ke-align=&quot;alignLeft&quot;&gt;
&lt;thead&gt;
&lt;tr&gt;
&lt;th&gt;&amp;nbsp;&lt;/th&gt;
&lt;th&gt;38도선 (한반도)&lt;/th&gt;
&lt;th&gt;16도선 (인도차이나)&lt;/th&gt;
&lt;/tr&gt;
&lt;/thead&gt;
&lt;tbody&gt;
&lt;tr&gt;
&lt;td&gt;근거&lt;/td&gt;
&lt;td&gt;일반명령 제1호 1항 (b)&amp;middot;(e)&lt;/td&gt;
&lt;td&gt;1항 (a)&amp;middot;(c)&lt;/td&gt;
&lt;/tr&gt;
&lt;tr&gt;
&lt;td&gt;북쪽 접수&lt;/td&gt;
&lt;td&gt;소련 극동군&lt;/td&gt;
&lt;td&gt;중국(장제스)&lt;/td&gt;
&lt;/tr&gt;
&lt;tr&gt;
&lt;td&gt;남쪽 접수&lt;/td&gt;
&lt;td&gt;미 태평양육군&lt;/td&gt;
&lt;td&gt;동남아시아사령부(영국)&lt;/td&gt;
&lt;/tr&gt;
&lt;tr&gt;
&lt;td&gt;접수국의 잔류 의사&lt;/td&gt;
&lt;td&gt;양쪽 모두 남았다&lt;/td&gt;
&lt;td&gt;양쪽 모두 물러날 계획이었다&lt;/td&gt;
&lt;/tr&gt;
&lt;tr&gt;
&lt;td&gt;두 구역을 이어받을 주체&lt;/td&gt;
&lt;td&gt;없었다&lt;/td&gt;
&lt;td&gt;프랑스 &amp;mdash; 양쪽 구역 모두&lt;/td&gt;
&lt;/tr&gt;
&lt;tr&gt;
&lt;td&gt;선의 운명&lt;/td&gt;
&lt;td&gt;1948년, 두 국가의 경계로 굳었다&lt;/td&gt;
&lt;td&gt;1946년, 소멸&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차이를 만든 것은 선의 성질이 아니다. 두 선 모두 같은 문서의 같은 문법으로 그어졌고, 둘 다 위도선이었으며, 둘 다 현지 사정과 무관했다. &lt;b&gt;갈린 것은 접수를 맡은 쪽이 그 자리에 남았느냐, 그리고 그 구역을 통째로 이어받을 제3의 주체가 있었느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도차이나에 다시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은 북위 &lt;b&gt;17도&lt;/b&gt;에 선을 그었다. 다른 위도였고, 다른 문서였고, 다른 이유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반도 쪽에서는 정작 그 위도선도 오래가지 않았다. &lt;b&gt;오늘의 군사분계선은 38도선이 아니다.&lt;/b&gt; 1953년 정전협정이 그은 선은 서쪽에서는 38도선 아래로 내려가고 동쪽에서는 위로 올라간다. 1945년의 그 위도선은 지도에서 지워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워지지 않은 것은 선이 아니라 선이 만든 것들이다. 두 개의 행정, 두 개의 전력망, 두 개의 국가, 그리고 갈라진 인구다.&lt;/p&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c/GEN_Bonesteel%2C_Charles_H_III.jpg/960px-GEN_Bonesteel%2C_Charles_H_III.jpg&quot; alt=&quot;찰스 H. 본스틸 3세&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찰스 H. 본스틸 3세.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을 지냈다. 미 육군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66년 9월, 찰스 본스틸이 대장으로 진급해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으로 서울에 부임한다. &lt;b&gt;21년 전 워싱턴의 사무실에서 벽걸이 지도를 보고 위도 하나를 고른 두 사람 중 하나였다.&lt;/b&gt; 그가 지휘한 3년은 그 선을 사이에 둔 긴장이 가장 높았던 시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같은 기간 딘 러스크는 국무장관 자리에 있었고, 또 다른 위도선이 그어진 나라의 전쟁을 관리하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두 사람 다 자신이 고른 선으로 되돌아온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45년 8월의 그 밤에 정해진 것은 사실 많지 않다. 정해진 것은 위도 하나였고, 그것도 몇 주짜리 행정 절차를 위한 것이었다. 인도차이나의 16도선이 보여주듯 그런 선은 지워질 수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경계를 만드는 것은 선이 아니라, 그 선 위에서 흘러간 시간이다.&lt;/b&gt; 1945년 9월 2일의 명령서가 남긴 것은 하룻밤 사이에 고른 위도 하나였고, 그것을 국경으로 바꾼 것은 이후의 3년이다. 선을 그은 두 사람은 그 3년에 대해 아무 권한도 없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명령서 원문: &lt;a href=&quot;https://en.wikisource.org/wiki/General_Order_No._1&quot;&gt;Wikisource &amp;mdash; General Order No. 1 (초안)&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orldjpn.net/documents/texts/docs/19450902.O2E.html&quot;&gt;The World and Japan Database &amp;mdash; Directive No. 1, SCAP, 2 September 1945 (하달본)&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Order_No._1&quot;&gt;Wikipedia &amp;mdash; General Order No. 1&lt;/a&gt;&lt;br /&gt;- 38도선의 기안 경위: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ivision_of_Korea&quot;&gt;Wikipedia &amp;mdash; Division of Kore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38%EC%84%A0&quot;&gt;한국어 위키백과 &amp;mdash; 38선&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ationalgeographic.com/science/article/130805-korean-war-dmz-armistice-38-parallel-geography&quot;&gt;National Geographic &amp;mdash; National Geographic, Korea, and the 38th Parallel&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neh.gov/article/korea-and-thirty-eighth-parallel&quot;&gt;NEH &amp;mdash; Korea and the Thirty-Eighth Parallel&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britannica.com/place/38th-parallel&quot;&gt;Britannica &amp;mdash; 38th parallel&lt;/a&gt;&lt;br /&gt;- 스탈린-트루먼 왕복 서한: &lt;a href=&quot;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5v06/d452&quot;&gt;Office of the Historian, FRUS 1945 vol. VI &amp;mdash; Truman to Stalin, 17 August 1945&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draft-message-joseph-stalin-harry-s-truman&quot;&gt;Wilson Center Digital Archive &amp;mdash; Draft Message from Joseph Stalin to Harry S. Truma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war/kuril.htm&quot;&gt;GlobalSecurity &amp;mdash; Northern Territories / Kuril Islands&lt;/a&gt;&lt;br /&gt;- 1945~48년의 고착 과정: &lt;a href=&quot;https://www.britannica.com/place/Korea/Division-of-Korea&quot;&gt;Britannica &amp;mdash; Korea: Division of Korea&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45v02/d268&quot;&gt;Office of the Historian, FRUS 1945 vol. II &amp;mdash; Moscow Conference of Foreign Minister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ilsoncenter.org/blog-post/shtykov-report-first-session-soviet-american-joint-commission-seoul-korea-march-20-may-6&quot;&gt;Wilson Center &amp;mdash; The Shtykov Report on the First Session of the Soviet-American Joint Commissi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source.org/wiki/United_Nations_General_Assembly_Resolution_112&quot;&gt;Wikisource &amp;mdash; UN General Assembly Resolution 112 (II)&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courses.lumenlearning.com/suny-worldhistory/chapter/35-3-2-occupation-by-the-us-and-ussr/&quot;&gt;Lumen Learning, World History &amp;mdash; Occupation by the US and USSR&lt;/a&gt;&lt;br /&gt;- 인도차이나 16도선: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Allied_post-war_occupation_of_Vietnam&quot;&gt;Wikipedia &amp;mdash; Allied post-war occupation of Vietnam&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hinese_occupation_of_northern_Vietnam,_1945%E2%80%931946&quot;&gt;Wikipedia &amp;mdash; Chinese occupation of northern Vietnam, 1945&amp;ndash;1946&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Ho%E2%80%93Sainteny_Agreement&quot;&gt;Wikipedia &amp;mdash; Hồ&amp;ndash;Sainteny Agreement&lt;/a&gt;&lt;br /&gt;- 1896년의 분할 제안과 두 사람의 그 후: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Yamagata%E2%80%93Lobanov_Agreement&quot;&gt;Wikipedia &amp;mdash; Yamagata&amp;ndash;Lobanov Agreement&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H._Bonesteel_III&quot;&gt;Wikipedia &amp;mdash; Charles H. Bonesteel III&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특집, 일반명령제1호, 38선, 한반도분단, 딘러스크, 본스틸, 쿠릴열도, 미소공동위원회&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특집</category>
      <category>38선</category>
      <category>딘러스크</category>
      <category>미소공동위원회</category>
      <category>본스틸</category>
      <category>오늘의특집</category>
      <category>일반명령제1호</category>
      <category>쿠릴열도</category>
      <category>한반도분단</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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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historypick.tistory.com/48#entry48comment</comments>
      <pubDate>Wed, 2 Sep 2026 11:31: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9월 2일 오늘의 역사: 달력에서 지워진 11일, 만화책이 먼저 흘려버린 브라우저</title>
      <link>https://historypick.tistory.com/47</link>
      <description>&lt;h2 id=&quot;9월-2일-오늘의-역사-달력에서-지워진-11일-만화책이-먼저-흘려버린-브라우저&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9월 2일 오늘의 역사: 달력에서 지워진 11일, 만화책이 먼저 흘려버린 브라우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영국에서 1752년 9월 2일의 다음 날은 9월 14일이었다. 사라진 열하루다. 2008년에는 만화책 한 권이 먼저 새어 나가는 바람에 브라우저 공개가 하루 앞당겨졌다. 도쿄만의 23분, 미네소타의 한 문장, 푸딩레인의 새벽까지 9월 2일의 다섯 장면을 모았다.&lt;/p&gt;
&lt;h2 id=&quot;①-2008--만화책이-먼저-새어-나갔다&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① 2008 &amp;mdash; 만화책이 먼저 새어 나갔다&lt;/h2&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86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yFPMy/dJMcaikkJKu/8Fa1Q7Qa3SMAfKRngvxna1/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yFPMy/dJMcaikkJKu/8Fa1Q7Qa3SMAfKRngvxna1/img.pn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yFPMy/dJMcaikkJKu/8Fa1Q7Qa3SMAfKRngvxna1/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yFPMy%2FdJMcaikkJKu%2F8Fa1Q7Qa3SMAfKRngvxna1%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60&quot; height=&quot;860&quot; data-origin-width=&quot;860&quot; data-origin-height=&quot;86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구글 크롬의 아이콘. 이 브라우저의 존재는 공식 발표보다 이틀 먼저 알려졌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008년 여름, 구글은 자사 브라우저를 세상에 알릴 방법으로 흔치 않은 물건을 골랐다. &lt;b&gt;38쪽짜리 만화책이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림을 맡은 사람은 만화 이론서 「만화의 이해」로 알려진 스콧 매클라우드(Scott McCloud)였다. 구글 엔지니어들의 설명을 듣고 지면 구성과 그림, 글자까지 그가 직접 처리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책은 기자와 블로거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 공개 예정일은 &lt;b&gt;9월 3일&lt;/b&gt;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런데 구글 우편실이 유럽 배송분을 예정보다 일찍 보내버렸다.&lt;/b&gt; 그 가운데 한 권이 9월 1일 독일의 블로거 필리프 렌센(Philipp Lenssen)에게 도착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렌센은 자신이 운영하던 사이트 구글 블로고스코프드에 만화를 스캔해 올렸다. 아직 존재조차 발표되지 않은 제품의 설계 사상이 통째로 인터넷에 떠버린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구글은 일정을 앞당기는 쪽을 택했다.&lt;/b&gt; 같은 날 공식 블로그에 발표문을 올리고 만화 전문을 구글 북스에 공개했다. 유출된 스캔본을 지우려 애쓰는 대신 원본을 직접 내놓은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브라우저 베타판이 실제로 배포된 것은 &lt;b&gt;하루 뒤인 9월 2일&lt;/b&gt;이다. 윈도우 XP 이상에서만 돌아갔고, 43개 언어로 나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름부터가 업계 은어였다. 브라우저에서 주소창&amp;middot;탭&amp;middot;버튼처럼 웹페이지를 둘러싼 테두리 UI를 '크롬'이라고 부른다. &lt;b&gt;그 크롬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제품에 크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만화가 설명하려 한 핵심도 눈에 보이지 않는 쪽이었다. 렌더링에는 웹킷을, 자바스크립트 실행에는 새로 만든 V8 엔진을 썼다. &lt;b&gt;가장 큰 변화는 탭마다 별도의 프로세스를 띄워 서로 격리한 구조다.&lt;/b&gt; 탭 하나가 죽어도 브라우저 전체가 함께 죽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출발은 초라했다. 점유율은 첫 달 1퍼센트 언저리였다가 10월에 0.69퍼센트까지 내려앉았고, 12월에야 다시 1퍼센트를 넘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지금 크롬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브라우저다.&lt;/b&gt; 그 시작을 알린 물건이 종이 만화책이었고, 그것을 먼저 공개한 쪽은 구글이 아니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②-1945--도쿄만의-23분&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② 1945 &amp;mdash; 도쿄만의 23분&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4/Surrender_of_Japan_-_USS_Missouri_%28restored%29.jpg/960px-Surrender_of_Japan_-_USS_Missouri_%28restored%29.jpg&quot; alt=&quot;1945년 9월 2일 미주리호 함상의 항복문서 조인식&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호 함상. 미 육군 통신대가 촬영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45년 9월 2일 오전, 도쿄만에 정박한 미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 탁자 하나가 놓였다. 일본 대표단이 배에 오른 시각은 &lt;b&gt;8시 56분&lt;/b&gt;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식의 격벽에는 액자에 넣은 낡은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lt;b&gt;1853년 매슈 페리(Matthew Perry) 원정대의 기함 포해턴호가 달았던 깃발이다.&lt;/b&gt; 천이 삭아 깃대에 걸 수 없어 유리 액자에 넣어 벽에 매달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명은 일본 측이 먼저 했다. 정부와 천황을 대표해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가, 대본영을 대표해 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郎)가 이름을 적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만년필 다섯 자루를 나눠 썼다.&lt;/b&gt; 그 가운데 두 자루는 옆에 세워둔 두 사람에게 건넸다. 조너선 웨인라이트와 아서 퍼시벌, 각각 필리핀과 싱가포르에서 항복해 오래 포로로 있다가 며칠 전 풀려난 장군들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머리 위로는 B-29 편대와 함재기들이 지나갔다. 식은 &lt;b&gt;23분&lt;/b&gt; 만에 끝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문서 한 부에 사고가 있었다. &lt;b&gt;캐나다 대표 로런스 무어 코스그레이브(Lawrence Moore Cosgrave) 대령이 일본 보관본에서 한 줄 아래, 프랑스 몫으로 인쇄된 줄에 서명했다.&lt;/b&gt; 그는 1차 대전에서 한쪽 눈을 잃은 상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뒤이어 서명한 나라들이 전부 한 칸씩 밀렸다. 마지막 나라의 서명은 인쇄된 줄 바깥으로 나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참모장 리처드 서덜랜드가 인쇄된 국명을 하나씩 줄로 긋고 그 옆에 손으로 다시 적어 넣었다.&lt;/b&gt; 정정 흔적이 그대로 남은 이 문서가 일본에 넘겨졌고, 지금 에도도쿄박물관에 있다. 연합국 보관본에는 코스그레이브가 제 줄에 서명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맥아더는 식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lt;b&gt;&quot;이 엄숙한 자리에서 더 나은 세계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간절한 희망이며, 인류 전체의 희망이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날 문서 한 장이 더 발효됐다. &lt;b&gt;연합군 최고사령관 일반명령 제1호다.&lt;/b&gt; 일본군이 어느 연합국 지휘관에게 항복할지를 지역별로 지정한 행정 문서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반도에 관한 조항은 이랬다. 북위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은 소련군 극동사령관에게, 이남의 일본군은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것이다. &lt;b&gt;항복 접수 편의를 위해 그은 이 선이 이후 어떤 성격을 갖게 되는지는 그날 문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몇 시간 뒤,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호찌민(胡志明)이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선언문을 읽었다. &lt;b&gt;첫 대목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이었다.&lt;/b&gt;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구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명령서가 인도차이나에도 북위 16도선을 그었다. 그 선은 몇 달 만에 지워졌고 38도선은 남았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는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48&quot;&gt;특집에서 따로 짚었다&lt;/a&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③-1901--부통령이-꺼낸-한-문장&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③ 1901 &amp;mdash; 부통령이 꺼낸 한 문장&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f/Tr-bigstick-cartoon.JPG/960px-Tr-bigstick-cartoon.JPG&quot; alt=&quot;1904년 정치만평 속 큰 몽둥이를 든 루스벨트&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큰 몽둥이를 끌고 카리브해를 건너는 루스벨트를 그린 1904년 정치만평. 윌리엄 앨런 로저스 작.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901년 9월 2일은 미국의 노동절이었다.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미네소타 주 박람회 연단에 섰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연설의 주제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었다. 그 안에서 그는 속담 하나를 인용했다. &lt;b&gt;&quot;부드럽게 말하고 큰 몽둥이를 들라. 그러면 멀리 갈 것이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어진 설명이 더 중요하다. &lt;b&gt;&quot;사람이 계속 허세를 부린다면 큰 몽둥이가 있어도 곤경을 면하지 못한다. 반대로 부드럽게 말한들 그 부드러움 뒤에 힘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루스벨트는 이것을 서아프리카 속담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 구전&amp;middot;문헌 어디에서도 같은 문구가 확인되지 않는다. &lt;b&gt;본인이 만든 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금의 평가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문장이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lt;b&gt;1900년 1월 26일, 뉴욕 주지사이던 그가 헨리 스프래그(Henry L. Sprague)에게 보낸 편지에 같은 표현이 적혀 있다.&lt;/b&gt; 주 공화당 위원회가 문제 있는 인사의 지명을 철회한 일을 두고 만족을 표하면서 쓴 말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연설 나흘 뒤인 9월 6일, 버펄로의 범미박람회장에서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총격을 받았다. 대통령은 9월 14일 사망했고, &lt;b&gt;부통령은 그날 대통령이 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공개적으로 원칙을 말한 지 12일 만에 그 원칙을 집행할 자리에 앉은 셈이다. 이후 파나마 운하 착공, 먼로 독트린에 대한 이른바 루스벨트 계론, 세계를 한 바퀴 돈 대백색함대가 모두 이 문장의 실행으로 설명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사에도 접점이 있다. &lt;b&gt;1905년 7월 태프트-가쓰라 각서에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사실상 묵인했고&lt;/b&gt;, 같은 해 9월 러일전쟁을 매듭지은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중재한 공로로 루스벨트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부드럽게 말하는 쪽과 큰 몽둥이를 드는 쪽이 같은 해에 나란히 작동했다.&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④-1752--달력에서-지워진-11일&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④ 1752 &amp;mdash; 달력에서 지워진 11일&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3/An_Election_Entertainment.jpg/960px-An_Election_Entertainment.jpg&quot; alt=&quot;호가스의 1755년작 「선거 향응」&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윌리엄 호가스의 1755년작 「선거 향응」. 바닥에 놓인 팻말이 &quot;우리의 11일을 돌려달라&quot;는 문구로 알려져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달력을 고친 것은 1582년이다. 율리우스력이 1년을 실제보다 약 11분 길게 잡는 탓에 춘분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톨릭 국가들은 그해에 바로 따랐다. 1582년 10월에 열흘이 통째로 사라진 그 전환의 사정은 &lt;a href=&quot;https://historypick.tistory.com/8&quot;&gt;열흘이 사라진 해&lt;/a&gt;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개신교 국가였던 잉글랜드는 로마가 만든 달력이라는 이유로 170년을 버텼다.&lt;/b&gt; 그사이 오차는 11일까지 벌어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제는 실무였다. 대륙과 편지를 주고받거나 계약서를 쓸 때마다 날짜가 두 개씩 필요했다. 게다가 잉글랜드는 법률상 새해가 &lt;b&gt;3월 25일&lt;/b&gt;에 시작했다. 1월과 2월이 어느 해에 속하는지부터 헷갈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의회가 1750년 달력법(Calendar (New Style) Act 1750)을 통과시켰다. 고칠 것은 두 가지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첫째, 새해 시작을 1월 1일로 옮겼다.&lt;/b&gt; 그 결과 1751년은 3월 25일에 시작해 12월 31일에 끝나는 &lt;b&gt;282일짜리 짧은 해&lt;/b&gt;가 됐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둘째, 벌어진 11일을 한 번에 지웠다.&lt;/b&gt; 1752년 9월, 수요일 2일 다음 날이 목요일 14일이 됐다. 그해 9월에는 3일부터 13일까지가 존재하지 않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대목에서 흔히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quot;우리의 11일을 돌려달라&quot;고 외치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근거는 생각보다 얇다.&lt;/b&gt; 동시대에 이 항의를 언급한 자료는 두 건 정도인데 둘 다 풍자문이다. 널리 인용되는 이미지의 출처는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가 &lt;b&gt;1755년&lt;/b&gt;에 그린 「선거 향응」으로, 옥스퍼드셔 선거판을 풍자한 그림이지 현장 기록이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만 불만 자체는 실재했다. &lt;b&gt;임대료와 임금, 이자와 계약 만기, 장이 서는 날과 성인 축일이 전부 날짜에 묶여 있었다.&lt;/b&gt; 열하루가 사라지면 그 열하루치를 누가 부담하는가가 걸린 문제였다. 법은 지급 기일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답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lt;b&gt;영국의 회계연도가 4월 6일에 시작하는 것은 옛 새해였던 3월 25일에 11일을 더한 자리에서 출발한 것으로 설명된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바다 건너에서도 날짜가 바뀌었다. 조지 워싱턴은 옛 달력으로 1731년 2월 11일에 태어났는데, &lt;b&gt;새 달력으로 고쳐 적으면서 생일이 1732년 2월 22일이 됐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2 id=&quot;⑤-1666--푸딩레인의-새벽&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⑤ 1666 &amp;mdash; 푸딩레인의 새벽&lt;/h2&gt;
&lt;p&gt;&lt;img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b/b6/Great_Fire_London.jpg/960px-Great_Fire_London.jpg&quot; alt=&quot;1666년 런던 대화재를 그린 회화&quot;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4&quot;&gt;&lt;i&gt;런던 대화재를 그린 17세기 회화. 템스강 쪽에서 바라본 시가지다. (위키미디어 커먼즈)&lt;/i&gt;&lt;br /&gt;&lt;br /&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66년 9월 2일 일요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런던 푸딩레인의 빵집에서 불이 났다. 주인 토머스 파리너(Thomas Farriner)는 해군에 납품할 건빵을 굽던 제빵사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새벽 3시경, 관리 새뮤얼 페피스(Samuel Pepys)를 하녀 제인이 깨웠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lt;b&gt;충분히 멀다고 판단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시장 토머스 블러드워스(Thomas Bloodworth)도 불려 나왔다. 페피스가 같은 날 일기에 적은 시장의 반응은 &lt;b&gt;여자 하나가 소변으로도 끌 수 있을 정도라는 것&lt;/b&gt;이었다. 시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시 화재 진압의 사실상 유일한 수단은 &lt;b&gt;불길 앞의 집들을 미리 헐어 길을 끊는 것&lt;/b&gt;이었다. 시장이 이를 명령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임차 건물이라 소유주를 찾을 수 없었고, 배상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사이 동풍이 불었다. 페피스가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 불은 이미 서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는 배를 타고 강에서 시가지를 보았고, 그 장면을 일기에 남겼다. &lt;b&gt;&quot;가엾은 비둘기들은 제 집을 떠나기 싫어 창과 발코니 주변을 맴돌다가, 더러는 날개가 타서 떨어졌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페피스는 화이트홀로 달려가 국왕 찰스 2세에게 상황을 알렸다. 왕의 지시는 분명했다. &lt;b&gt;&quot;집을 아끼지 말고 불길 앞의 모든 방향으로 헐어내라고 시장에게 전하라.&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페피스가 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목에 손수건을 두른 채 기진한 모습이었다. 남긴 말은 이랬다. &lt;b&gt;&quot;주여,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쳤고, 사람들은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quot;&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불은 나흘을 갔다. 화요일 저녁에 바람이 잦아들었고, 런던탑 수비대가 화약으로 만든 방화선이 &lt;b&gt;9월 5일 수요일&lt;/b&gt;부터 효과를 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계는 이랬다. &lt;b&gt;주택 약 1만 3,200채, 교구 교회 86~87곳, 길드 회관 44곳,&lt;/b&gt; 그리고 구 세인트폴 대성당이 사라졌다. 기록에 남은 사망자는 한 자릿수다. 다만 역사가 닐 핸슨은 이재민 사이의 추위&amp;middot;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이 집계에서 빠졌다고 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방화범 색출도 있었다. 프랑스인 시계공 로베르 위베르가 자백해 10월 29일 타이번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lt;b&gt;뒤에 그가 화재 당시 북해의 배 위에 있었고 런던에 도착한 것은 불이 난 지 이틀 뒤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도시는 옛 필지 위에 다시 지어졌다.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과 로버트 훅(Robert Hooke)이 설계한 기념탑 '모뉴먼트'는 1671년부터 1676년까지 세워졌다. &lt;b&gt;높이 61.5미터는 이 탑에서 불이 시작된 지점까지의 거리와 같게 잡은 값이다.&lt;/b&gt;&lt;br /&gt;&lt;br /&gt;&lt;/p&gt;
&lt;hr data-ke-style=&quot;style1&quot; /&gt;
&lt;h3 id=&quot;오늘의-단신&quot; data-ke-size=&quot;size23&quot;&gt;오늘의 단신&lt;/h3&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b&gt;2023&lt;/b&gt;: 인도가 첫 태양 관측선 아디티야-L1을 쏘아 올린다 &amp;mdash; 스리하리코타에서 현지시각 오전 11시 50분에 발사됐다. 목적지는 지구에서 약 150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지구 라그랑주 1점이며, 2024년 1월 6일 그 주위 헤일로 궤도에 진입했다&lt;/li&gt;
&lt;li&gt;&lt;b&gt;1987&lt;/b&gt;: 모스크바에서 마티아스 루스트(Mathias Rust)의 재판이 열린다 &amp;mdash; 열아홉 살 서독 청년이 그해 5월 세스나 경비행기로 소련 방공망을 뚫고 붉은광장 옆에 내려앉은 사건이다. 훌리건 행위와 국경 침범, 항공법 위반으로 4년형을 받았고 14개월 만에 석방됐다. 사건 직후 소련 국방장관과 방공군 사령관이 경질됐다&lt;/li&gt;
&lt;li&gt;&lt;b&gt;1970&lt;/b&gt;: 나사가 아폴로 15호와 19호를 취소한다 &amp;mdash; 토머스 페인 국장이 예산 삭감을 이유로 발표했다. 남은 비행을 14호부터 17호까지로 다시 번호 매기면서, 원래 16호로 예정됐던 임무가 우리가 아는 아폴로 15호가 됐다. 절감한 돈은 우주왕복선 개발로 넘어갔다&lt;/li&gt;
&lt;li&gt;&lt;b&gt;1963&lt;/b&gt;: 미국 방송 최초의 30분짜리 평일 저녁 뉴스가 시작된다 &amp;mdash; CBS 이브닝 뉴스가 15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난 날이다. 첫 방송에는 월터 크롱카이트가 케네디 대통령을 인터뷰한 녹화분이 실렸다. 베트남을 두고 대통령은 &quot;결국은 그들의 전쟁이고, 이기든 지든 그들이 해야 한다&quot;고 말했다&lt;/li&gt;
&lt;li&gt;&lt;b&gt;1960&lt;/b&gt;: 티베트 망명 사회가 첫 대표를 뽑는다 &amp;mdash; 달라이 라마가 제시한 안에 따라 3개 지역과 4개 종파에서 13명이 선출됐고, 이날 선서했다. 티베트인들이 정치 지도자를 투표로 뽑은 첫 사례이며, 지금도 9월 2일을 '민주주의의 날'로 기린다&lt;/li&gt;
&lt;li&gt;&lt;b&gt;1912&lt;/b&gt;: 미국 보이스카우트의 첫 이글스카우트 메달이 수여된다 &amp;mdash; 롱아일랜드의 아서 로즈 엘드레드(Arthur Rose Eldred)가 받았다. 심사는 그해 1월 31일에 끝났고 인준은 3월 29일에 났지만, 메달 도안이 아직 없어 실물을 받기까지 다섯 달이 더 걸렸다. 심사 위원석에는 베이든파월과 어니스트 시턴이 앉아 있었다&lt;/li&gt;
&lt;li&gt;&lt;b&gt;1789&lt;/b&gt;: 미국 재무부가 설립된다 &amp;mdash; 독립 직후 연방정부가 안고 있던 문제는 전쟁 부채와 신용이었다. 초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아흐레 뒤 취임해 주정부 부채의 연방 인수와 중앙은행 설립을 밀어붙인다&lt;/li&gt;
&lt;li&gt;&lt;b&gt;1192&lt;/b&gt;: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이 야파 조약을 맺는다 &amp;mdash; 3차 십자군을 끝낸 합의다. 예루살렘은 이슬람 통치 아래 남되 기독교 순례자의 출입을 보장하고, 십자군 국가는 티레에서 야파에 이르는 좁은 해안선을 유지하며, 아스칼론 요새는 헐린 채로 둔다는 내용이었다. 3년 휴전이었고, 리처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은 채 귀국길에 올랐다&lt;/li&gt;
&lt;li&gt;&lt;b&gt;기원전 31&lt;/b&gt;: 그리스 서해안 앞바다에서 악티움 해전이 벌어진다 &amp;mdash; 옥타비아누스의 함대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 함대를 물리친 이 하루로 로마의 내전이 사실상 끝난다. 4년 뒤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되고, 공화정은 이름만 남는다&lt;/li&gt;
&lt;li&gt;&lt;b&gt;기원전 44&lt;/b&gt;: 카이사르가 암살된 그해 9월 2일에 두 가지 일이 겹친다 &amp;mdash;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 통치자로 선포했고, 로마에서는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겨눈 첫 번째 「필리피카」를 원로원에서 낭독했다. 연설은 이후 열넷까지 이어지며, 그 대가는 키케로 자신의 목숨이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자료 출처&lt;/b&gt;&lt;br /&gt;- 사건 데이터: &lt;a href=&quot;https://api.wikimedia.org/feed/v1/wikipedia/en/onthisday/events/09/02&quot;&gt;Wikimedia On This Day API&lt;/a&gt; &amp;middot;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lt;br /&gt;- 구글 크롬 출시: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oogle_Chrome&quot;&gt;Wikipedia &amp;mdash; Google Chrom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scottmccloud.com/googlechrome/&quot;&gt;Scott McCloud &amp;mdash; The Google Chrome Comic&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technologizer.com/2008/09/01/google-chrome-comic-the-readers-digest-version/&quot;&gt;Technologizer &amp;mdash; Google Chrome Comic: The Readers' Digest Version&lt;/a&gt;&lt;br /&gt;- 항복문서 조인식: &lt;a href=&quot;https://www.nationalww2museum.org/war/articles/japanese-surrender-tokyo-bay-september-2-1945&quot;&gt;The National WWII Museum &amp;mdash; Full Circle: The Japanese Surrender in Tokyo Ba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archives.gov/college-park/highlights/japanese-surrender&quot;&gt;National Archives &amp;mdash; Japanese Instrument of Surrender&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legionmagazine.com/the-man-who-skipped-a-line/&quot;&gt;Legion Magazine &amp;mdash; The man who skipped a lin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_Order_No._1&quot;&gt;Wikipedia &amp;mdash; General Order No. 1&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Declaration_of_independence_of_the_Democratic_Republic_of_Vietnam&quot;&gt;Wikipedia &amp;mdash; 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the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lt;/a&gt;&lt;br /&gt;- 루스벨트의 '큰 몽둥이': &lt;a href=&quot;https://www.theodorerooseveltcenter.org/digital-library/o286433/&quot;&gt;Theodore Roosevelt Center &amp;mdash; Address of Vice President Roosevelt, Minnesota State Fair, Sept. 2nd, 1901&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Big_stick_ideology&quot;&gt;Wikipedia &amp;mdash; Big stick ideology&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mentalfloss.com/history/presidents/theodore-roosevelt-speak-softly-and-carry-a-big-stick&quot;&gt;Mental Floss &amp;mdash; When Theodore Roosevelt Urged Americans to &quot;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quot;&lt;/a&gt;&lt;br /&gt;- 그레고리력 전환과 사라진 11일: &lt;a href=&quot;https://www.iflscience.com/the-calendar-riots-the-myth-and-truth-of-britains-missing-11-days-75336&quot;&gt;IFLScience &amp;mdash; The &quot;Calendar Riots&quot;: The Myth And Truth Of Britain's Missing 11 Days&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britannica.com/story/did-a-calendar-change-cause-riots-in-england&quot;&gt;Britannica &amp;mdash; Did a Calendar Change Cause Riots in England?&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historic-uk.com/HistoryUK/HistoryofBritain/Give-us-our-eleven-days/&quot;&gt;Historic UK &amp;mdash; Give Us Our Eleven Days&lt;/a&gt;&lt;br /&gt;- 런던 대화재: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Great_Fire_of_London&quot;&gt;Wikipedia &amp;mdash; Great Fire of Lond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londonmuseum.org.uk/collections/london-stories/great-fire-of-london/&quot;&gt;London Museum &amp;mdash; The Great Fire of London&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source.org/wiki/Diary_of_Samuel_Pepys/1666/September&quot;&gt;Wikisource &amp;mdash; Diary of Samuel Pepys, September 1666&lt;/a&gt;&lt;br /&gt;- 단신 보강: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PSLV-C57&quot;&gt;Wikipedia &amp;mdash; PSLV-C57&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87/09/05/soviet-court-gives-rust-4-years-in-labor-camp/acb45a90-d397-47f3-977e-99b9f62e4f73/&quot;&gt;The Washington Post &amp;mdash; Soviet Court Gives Rust 4 Years in Labor Camp&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paceflighthistory.blogspot.com/2015/10/apollos-end-scrapping-apollo-15-and.html&quot;&gt;Spaceflight History &amp;mdash; Apollo's End: NASA Cancels Apollo 15 &amp;amp; Apollo 19&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jfklibrary.org/asset-viewer/archives/jfkpof-046-025&quot;&gt;JFK Library &amp;mdash; Transcript of CBS broadcast with Walter Cronkite, 2 September 1963&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tibetanparliament.org/about-tpie/evolution-of-tpie/&quot;&gt;Tibetan Parliament-in-Exile &amp;mdash; Evolution of TPiE&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www.eaglescout.org/history/first_eagle.html&quot;&gt;eaglescout.org &amp;mdash; The BSA's First Eagle Scout: Arthur Rose Eldred&lt;/a&gt; &amp;middot; &lt;a href=&quot;https://en.wikipedia.org/wiki/Treaty_of_Jaffa_(1192)&quot;&gt;Wikipedia &amp;mdash; Treaty of Jaffa (1192)&lt;/a&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태그&lt;/b&gt;: 오늘의역사, 9월2일, 사라진11일, 구글크롬출시, 일본항복문서, 런던대화재, 큰몽둥이외교, 그레고리력&lt;/p&gt;</description>
      <category>오늘의 역사</category>
      <category>9월2일</category>
      <category>구글크롬출시</category>
      <category>그레고리력</category>
      <category>런던대화재</category>
      <category>사라진11일</category>
      <category>오늘의역사</category>
      <category>일본항복문서</category>
      <category>큰몽둥이외교</category>
      <author>히스토리픽</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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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 Sep 2026 11:30: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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