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오늘의 역사: 넉 달을 기다린 22명, 첫 문장이 '빠른 갈색 여우'였던 직통선

2026. 8. 30. 07:31·오늘의 역사

8월 30일 오늘의 역사: 넉 달을 기다린 22명, 첫 문장이 '빠른 갈색 여우'였던 직통선

초강대국 두 나라를 잇는 회선의 첫 문장은 여우와 개 이야기였다. 남극의 섬에서는 스물두 명이 뒤집힌 보트 밑에서 넉 달을 기다렸다. 산속에서 주운 돌 하나가 반세기 뒤 학회를 웃겼고, 갯벌 옆 낡은 성에 무장 하나가 들어갔다. 8월 30일의 다섯 장면이다.

① 1963 — 첫 문장은 "빠른 갈색 여우"였다

워싱턴–모스크바 직통선 단말기. 라틴 문자 타자기와 키릴 문자 타자기, 그리고 암호기가 한 세트였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의 막바지에 니키타 흐루쇼프가 3,000 단어짜리 타협안을 워싱턴에 보냈다.

그 전문이 도착해 해독되기까지 12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양쪽 군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듬해 6월 20일, 미국과 소련은 제네바에서 직통 통신선을 두기로 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회선이 실제로 열린 것은 1963년 8월 30일이다.

이날 워싱턴이 보낸 첫 문장은 이랬다. "The quick brown fox jumped over the lazy dog's back 1234567890."

암호도 은유도 아니다. 영문 자판의 모든 글자와 숫자가 한 번씩 들어가는 문장이라, 자판이 다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오래 쓰여 온 것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어로 답신을 보냈다. 저물 무렵의 모스크바 풍경을 묘사한 문장이었고, 키릴 자판도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오해 하나가 갈린다. 직통선은 전화가 아니었다.

영화가 만든 '대통령 책상 위의 빨간 전화기'는 실물이 없다. 음성 통화는 말이 잘못 들리거나 통역이 어긋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배제됐다.

대신 놓인 것은 텔레타이프 두 대다. 미국 쪽은 라틴 문자를 찍는 텔레타이프 모델 28 ASR, 소련 쪽은 동독에서 만든 지멘스 T-63 SU12였다. 두 대 모두 노르웨이제 ETCRRM II 암호기에 물렸다. 일회용 테이프를 쓰는 방식이라 이론적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다.

문서는 각자 자기 언어로 보내고 받는 쪽이 번역했다. 상대의 말을 잘못 옮긴 책임을 보낸 쪽이 지지 않게 하려는 설계다.

선로는 대서양 횡단 케이블 1호를 타고 워싱턴에서 런던으로, 다시 코펜하겐·스톡홀름·헬싱키를 거쳐 모스크바로 갔다. 예비 회선은 탕헤르를 경유하는 무선이었다. 단말기가 놓인 곳도 백악관이 아니라 국방부 국가군사지휘본부였다.

회선이 열리고 석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존 F. 케네디는 암살됐다. 그가 이 선을 쓸 일은 없었다.

처음 실제로 쓰인 것은 1967년 6월, 6일 전쟁 때다. 먼저 연 쪽은 크렘린이었고, 지중해의 함대 이동을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엿새 동안 20건 남짓한 전문이 오갔다.

② 1916 — 뒤집힌 보트 밑의 128일

옐초호가 도착한 날의 엘리펀트섬

칠레 예인선 옐초호가 도착한 날의 엘리펀트섬. 원정대원 프랭크 헐리가 찍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의 인듀어런스호는 남극 대륙을 걸어서 횡단할 계획이었다. 배는 대륙에 닿지도 못한 채 웨들해의 유빙에 갇혀 부서졌다.

1916년 4월 15일, 스물여덟 명이 엘리펀트섬에 상륙했다. 사람이 살지 않고 배도 지나가지 않는 바위섬이다.

4월 24일, 섀클턴은 구명보트 제임스 캐어드호에 다섯 명을 태우고 사우스조지아섬을 향해 떠났다. 1,300km, 남극해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다. 남은 스물두 명은 부대장 프랭크 와일드(Frank Wild)에게 맡겨졌다.

스물두 명은 구명보트 두 척을 뒤집어 얹고 그 밑에서 살았다. 와일드는 매일 아침 같은 말로 사람들을 깨웠다. "짐을 묶고 정리해라. 오늘 대장이 올지도 모른다."

그는 이 말을 128일 동안 반복했다. 그동안 식량은 계속 줄었다.

섀클턴 일행은 16일 만에 사우스조지아에 닿았고, 섬을 걸어 넘어 포경기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가 다시 넉 달이었다.

구조선을 세 번 띄웠고 세 번 다 돌아왔다. 영국 선박 서던스카이호, 우루과이의 인스티투토데페스카 1호, 스쿠너 에마호가 차례로 얼음에 막혔다.

네 번째 배는 칠레 해군이 내줬다. 길이 36.5m짜리 증기 예인선 옐초호였다. 얼음 바다를 항해할 배가 아니었고 난방도 없었다. 함장은 루이스 파르도 비야론(Luis Pardo Villalón)이었다.

8월 25일 푼타아레나스를 떠난 옐초호는 8월 30일 엘리펀트섬 앞바다에 닿았다. 섀클턴은 뱃머리에 서서 보트 밑에서 기어 나오는 사람들의 수를 셌다.

"둘 — 다섯 — 일곱 —" 그리고 외쳤다. "다 있습니다. 전원 무사합니다."

승선에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9월 3일 옐초호는 푼타아레나스로 돌아왔다.

인듀어런스 원정은 목표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대륙 횡단은커녕 대륙에 발도 딛지 못했고 배는 잃었다. 이 원정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성취가 아니라 숫자다. 배에 탄 스물여덟 명이 모두 살아 돌아왔다.

같은 원정의 반대편, 로스해에서 보급품을 놓는 임무를 맡았던 지원대에서는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쪽 이야기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③ 1909 — 말을 타고 지나다 주운 돌

오파비니아 화석

버제스 셰일에서 나온 오파비니아 화석. 머리에 눈이 다섯 개, 앞에 집게 달린 긴 코가 하나 붙어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찰스 둘리틀 월콧(Charles Doolittle Walcott)은 스미스소니언협회를 이끌던 고생물학자였다. 1909년 여름, 그는 캐나다 로키의 요호 국립공원에서 야외 조사를 하고 있었다.

8월 30일은 그해 조사 시즌이 거의 끝나 가던 날이다. 그는 왑타산과 필드산 사이를 혼자 말을 타고 지나다가 화석이 든 셰일 조각들을 발견했다.

널리 도는 이야기는 말이 돌판에 미끄러지면서 화석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다만 왕립온타리오박물관이 정리한 경위에 그런 대목은 없다. 그냥 지나가다 봤다는 쪽에 가깝다.

이튿날 그는 아내 헬레나와 아들 스튜어트를 데리고 다시 올라갔다. 야외 수첩에 남은 문장은 짧다. "놀라운 필로포드 갑각류 무리를 찾았다."

이듬해 월콧은 그 자리에 채석장을 열었고, 1924년까지 화석 6만 5,000점 넘게 캐냈다.

지층은 캄브리아기 중기, 약 5억 500만 년 전의 바닥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나이가 아니라 보존 상태다.

보통 화석으로 남는 것은 껍데기와 뼈뿐이다. 버제스 셰일에는 몸이 무른 동물까지 얇은 탄소 막으로 눌려 남았다. 아가미도, 창자도, 눈도 자국이 있다.

월콧은 이 동물들을 자신이 아는 분류군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새우, 해파리, 갯지렁이. 이 분류는 60년 넘게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1972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고생물학회 발표장에서 분위기가 바뀐다. 해리 휘팅턴(Harry Whittington)이 오파비니아(Opabinia)의 복원도를 화면에 띄우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머리 위에 눈이 다섯 개, 앞쪽에 집게가 달린 긴 코가 하나. 농담을 하는 줄 안 것이다.

휘팅턴이 검토한 표본 열 점 가운데 아홉 점은 월콧이 캔 것이었다. 1975년 논문에서 그는 이 동물이 알려진 어느 문(門)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작업이 다른 화석으로 번졌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세 종류의 서로 다른 동물로 등록돼 있던 조각들이 한 마리였던 것으로 밝혀졌고, 할루키게니아는 처음 복원도가 위아래를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1989년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원더풀 라이프'가 이 논쟁을 대중에게 옮겼다. 버제스 셰일은 198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월콧이 그날 주운 것은 돌 조각이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그가 죽고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제대로 읽혔다.

④ 1791 — 열려서 사람을 살린 상자

좌초한 판도라호

좌초한 판도라호를 그린 동판화. 생존자인 사관후보생 피터 헤이우드의 스케치를 로버트 배티가 옮겼다. (위키미디어 커먼즈)

1789년 바운티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영국 해군은 프리깃 판도라호를 태평양으로 보냈다. 함장은 에드워드 에드워즈(Edward Edwards), 승무원은 134명이었다.

임무는 배를 되찾고 반란자를 잡아 본국 법정에 세우는 것이었다.

1791년 3월 23일 타히티에 도착한 판도라호는 엿새 만에 열네 명을 붙잡았다. 그중 셋은 제 발로 나왔다. 무기 담당 조지프 콜먼과 사관후보생 피터 헤이우드, 조지 스튜어트다.

에드워즈는 이들을 가둘 우리를 뒷갑판에 따로 지었다. 가로 3.4m, 세로 5.5m. 열네 명이 들어가면 눕기도 빠듯한 크기다.

갇힌 사람들은 이 칸을 '판도라의 상자'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서 열면 안 되는 그 상자다.

정작 반란의 주모자 플레처 크리스천 일행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들은 남태평양의 핏케언섬에 있었고, 그 사실이 바깥에 알려진 것은 1808년이다.

귀항길에 오른 판도라호는 1791년 8월 29일 대보초 바깥쪽 산호초에 얹혔고, 이튿날 아침 가라앉았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35명이었다. 승무원 31명과 죄수 4명이다.

죄수 쪽 사망자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은 마지막 순간의 판단 하나 때문이다. 갑판장보 제임스 몰터(James Moulter)가 우리의 뚜껑을 열어젖혔고, 일곱 명이 그때 빠져나왔다.

살아남은 99명은 보트에 나눠 타고 티모르섬의 쿠팡까지 갔다. 도착은 9월 16일이었다. 2년 전 바운티호에서 쫓겨난 블라이 선장이 표류 끝에 닿았던 바로 그 항구다.

영국으로 돌아와 재판을 받은 죄수는 열 명이었다. 셋이 처형됐고, 둘은 사면됐으며, 한 명은 절차상의 흠을 이유로 무죄가 됐다.

판도라호의 잔해는 1977년 11월 15일에 발견됐다. 1979년부터 1999년까지 아홉 차례 발굴로 유물 6,500점 이상이 나왔고, 지금은 호주 해역에서 가장 정밀하게 조사된 난파선으로 꼽힌다.

판도라호는 반란자를 잡는 데는 성공했고 데려오는 데는 실패했다. 신화에서 이름을 딴 그 상자는, 결국 열려서 사람을 살렸다.

⑤ 1590 — 갯벌 옆의 낡은 성

에도 병풍에 그려진 에도성

에도 병풍에 그려진 에도성 일대. (위키미디어 커먼즈)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오다와라성을 포위해 호조씨를 무너뜨렸다. 그 직후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게 호조의 옛 땅인 간토 지방을 통째로 주겠다고 했다.

조건이 있었다. 이에야스가 갖고 있던 미카와·도토미·스루가·시나노·가이 다섯 지방을 내놓아야 했다.

숫자만 보면 영전이다. 약 150만 석에서 240만~250만 석으로, 전국 다이묘 가운데 가장 큰 영지가 된다.

그러나 조상 대대의 근거지를 통째로 떠나는 일이었고, 새 땅은 얼마 전까지 적의 땅이었다. 이 이봉을 좌천으로 볼지 영전으로 볼지는 지금도 갈린다. 최근 연구는 간토를 안정시키고 그 너머 도호쿠를 누르는 역할을 히데요시가 맡긴 것으로 본다.

본거지로는 오다와라성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방금 함락시킨 큰 성이 그대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히데요시는 그러지 말고 더 동쪽의 에도로 가라고 권했다.

덴쇼 18년 8월 1일, 양력으로 1590년 8월 30일에 이에야스가 에도성에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성은 15세기에 오타 도칸(太田道灌)이 쌓은 모습이 그대로 남은 작은 성이었다. 성 바로 아래, 지금의 니시노마루 자리까지는 히비야 입강이라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이에야스가 먼저 손댄 것은 성이 아니었다. 입성 보름 남짓 만에 다리 놓는 일을 허가했고, 한 달 뒤에는 상인과 장인이 살 구역을 계획했다. 성보다 도시를 먼저 그린 셈이다.

1603년 쇼군이 된 뒤 공사는 본격화된다. 다이묘들에게 공사를 나눠 맡기는 방식이었고, 이는 그들의 재정을 소진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천수각이 완성된 것은 1639년으로, 외관 5층·내부 7층에 높이 44m였다.

에도의 인구는 1650년경 30만 명, 1720년경에는 100만 명에 이른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다만 입성 날짜에는 이견이 있다. 가신 마쓰다이라 이에타다가 남긴 '가타다일기'에는 그해 7월 18일에 이미 에도성에 들어간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런데도 8월 1일이 남았다. 에도 시대 내내 팔삭(八朔)은 막부의 가장 큰 의례일이었다. 해마다 이날 다이묘들이 흰 홑옷 차림으로 쇼군을 뵈었다.

날짜가 사실이어서 기념일이 된 것이 아니라, 기념일이 되어서 날짜로 굳은 쪽에 가깝다. 히비야 입강은 뒤에 메워졌고, 지금 그 자리에는 공원과 관청가가 서 있다.


오늘의 단신

  • 1983: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새벽 2시 32분에 발사된다(STS-8) — 왕복선 계획의 첫 야간 발사였고, 9월 5일 에드워즈 공군기지 착륙은 첫 야간 착륙이었다. 이 비행에서 가이언 블루퍼드(Guion Bluford)가 우주에 간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됐다. 그가 궤도에서 한 주 임무는 인도 통신위성 INSAT-1B를 배치하는 것이었다
  • 1967: 미국 상원이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을 연방대법관으로 인준한다(찬성 69, 반대 11) — 흑인으로는 처음이다. 대법관이 되기 전 그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의 법률고문으로 대법원에 사건 32건을 가져가 29건을 이겼다. 그중 하나가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를 위헌으로 뒤집은 1954년 브라운 판결이다
  • 1962: 일본의 여객기 YS-11이 첫 비행을 한다 — 통상산업성 주도로 여러 항공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만든 쌍발 터보프롭기로, 1974년까지 182대가 나왔다. 일본이 자국에서 설계·생산한 유일한 상업용 여객기이며, 2015년 미쓰비시의 후속 계획이 끝내 취소되면서 이 기록은 그대로 남았다
  • 1945: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 아쓰기 비행장에 내린다 — 항복 방송 보름 뒤였고, 무장 병력을 앞세우지 않은 채였다. 옥수수속대 파이프를 문 이 장면은 뒤에 여러 번 재현됐다. 윈스턴 처칠은 전쟁 중의 온갖 대담한 행동 가운데 이 착륙을 으뜸으로 꼽았다
  • 1936: 영국 여객선 퀸메리호가 블루리밴드를 차지한다 — 대서양 횡단 최단 시간에 주는 기록으로, 이때 동향 평균 속도가 30.63노트였다. 상대는 프랑스의 노르망디호였다. 두 배는 1938년까지 기록을 주고받았고, 최종 승자는 퀸메리호였다
  • 1873: 오스트리아·헝가리 북극 탐험대가 프란츠요제프란트를 발견한다 — 탐험대가 목표로 삼은 것은 북동항로였다. 배 테게토프호가 노바야제믈랴 부근에서 유빙에 갇혀 표류하던 끝에 우연히 눈앞에 나타난 섬들이었다. 두 대장 율리우스 폰 파이어와 카를 바이프레히트는 자국 황제의 이름을 붙였다
  • 1836: 텍사스 공화국에서 휴스턴이 창건된다 — 정확히는 오거스터스 앨런과 존 앨런 형제가 신문 '텔레그래프 앤드 텍사스 레지스터'에 광고를 실은 날이다. 두 사람은 버펄로 바이유 강가 6,642에이커를 5,000달러에 사들인 뒤, 이곳이 텍사스 최대의 상업 중심이 될 것이며 뉴욕과 뉴올리언스에서 배가 문 앞까지 들어온다고 썼다. 도시는 광고 문구가 먼저 있었다
  • 1835: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멜버른이 창건된다 — 태즈메이니아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스쿠너 엔터프라이즈호를 타고 야라강 기슭에 자리를 잡은 날이다. 앞서 6월 존 배트먼이 쿨린 부족 지도자들과 토지 매매 문서를 맺었지만, 8월 26일 버크 총독이 그런 사적 계약은 왕실의 권리에 대해 무효라고 포고했다. 원주민과 직접 협상한 문서로 기록에 남은 사례는 이것이 거의 유일하다
  • 1721: 스웨덴과 러시아가 니스타드 조약을 맺으며 21년에 걸친 대북방전쟁이 끝난다 — 러시아는 리보니아·에스토니아·잉그리아와 카렐리야 일부를 얻고 은화 200만 에피목을 스웨덴에 지급했으며, 점령했던 핀란드는 돌려줬다. 발트해의 주도권이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문서로 꼽힌다
  • 1535: 교황 바오로 3세가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를 파문하는 교서를 낸다 — 국왕을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으로 규정한 수장령이 이유였다. 다만 교황청은 헨리가 마음을 바꾸기를 기대해 집행을 미뤄 뒀고, 교서가 실제로 발효된 것은 3년 뒤인 1538년 12월이다

 

자료 출처
- 사건 데이터: Wikimedia On This Day API · 각 사건의 상세는 위키백과 해당 문서 참조
- 워싱턴–모스크바 직통선: Smithsonian Magazine — There Never Was Such a Thing as a Red Phone in the White House · Electrospaces.net — The Washington-Moscow Hotline · Arms Control Association — Hotline Agreements · VOA — 'Hotline' Established Between US, Former Soviet Union
- 엘리펀트섬 구조: Tom Crean Discovery — On This Day, August 30th 1916 · Naval Historical Society of Australia — Centenary of Shackleton's Antarctic Rescue by the Chilean Navy · MercoPress — Chilean rescue of Shackleton's crew from Elephant Island · State Library of NSW — Marooned on Elephant Island
- 버제스 셰일: Royal Ontario Museum — The Burgess Shale: Discoveries · Wikipedia — Burgess Shale · Phil. Trans. R. Soc. B — Extraordinary fossils reveal the nature of Cambrian life: a commentary on Whittington (1975) · Smithsonian Magazine — The Burgess Shale: Evolution's Big Bang
- 판도라호: Wikipedia — HMS Pandora (1779) · Queensland Museum — HMS Pandora · The Conversation — HMS Pandora is Australia's most scientifically excavated shipwreck
- 이에야스의 에도 입성: nippon.com — 秀吉の策略か? 家康の慧眼か? · JBpress — 豊臣秀吉が徳川家康を関東に移したのは左遷なのか? · World History Encyclopedia — Edo Castle · SamuraiWiki — 1590
- 단신 보강: NASA — 40 Years Ago: STS-8 · NAACP — Thurgood Marshall · Vintage Aviation News — First Flight of the NAMC YS-11 · The American Spectator — MacArthur Lands at Atsugi Airfield · Wikipedia — Blue Riband · APRI — The discovery of Franz Josef Land 150 years ago · TSHA — Houston, TX · Melbourne Day — About our day · Wikipedia — Proclamation of Governor Bourke · historyofwar.org — Treaty of Nystad · The Tudor Society — 17 December: Henry VIII is excommunicated

태그: 오늘의역사, 8월30일, 핫라인, 섀클턴, 버제스셰일, 판도라호, 도쿠가와이에야스, 서굿마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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